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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4번째 편지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사를 읽고 나서



지난 1월 20일 취임한 조 바이든 제46대 미국 대통령의 취임사를 읽어 보았습니다. 그동안 한 번도 미국 대통령의 취임사를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우연히 영어 전문을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취임사를 읽다가 특이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너무 짧은 것 같았습니다. 그냥 느낌인가 확인하고 싶어 트럼프 대통령 취임사와 오바마 대통령 2기 취임사를 위키피디아에서 찾아 비교해 보았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사는 총 2,514단어입니다. 이 분량은 레이건 대통령 2기 취임사(2,561단어) 다음으로 긴 취임사였습니다. 전임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는 상대적으로 1,433단어로 짧았습니다.

대통령들은 항상 특별한 상황에서 취임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 상황에서 취임한 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반대파의 의사당 점거라는 사상 유례없는 일이 있었으니 더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장들이 모두 짧았습니다. 1개 단어로 구성된 문장이 11개나 되었습니다. Unity(2번), Opportunity, Security, Liberty, Dignity, Respect, Honor, Amen, America(2번) 등이 그것입니다.

저는 호기심에 각 문장별 단어 수를 세어 보았습니다. 2개 단어로 구성된 문장이 6개, 3개 단어가 20개, 4개 단어가 21개, 5개 단어가 15개, 6개 단어가 17개 등 총 90개 문장이 6개 단어 이하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총 227개 문장 중 39.6%에 해당하는 90개 문장이 6개 단어 이하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특별한 것입니다. 연설 문장이 현저히 짧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바마 대통령 2기 취임사는 총 2,096개 단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문장 개수는 85개입니다. 한 문장이 평균 24.6개의 단어로 구성된 것입니다. 그 문장 중 6개 단어 이하인 문장은 고작 2개밖에 없었습니다. 전체 문장 85개의 2.4%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사는 총 1,433개 단어입니다. 그런데 문장 개수는 89개이니 평균 16.1개의 단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문장 중 6개 단어 이하인 문장은 16개로 오바마 2기 취임사 2개에 비해 많이 늘었습니다. 그 비율은 전체 문장 89개 중 17.9%에 해당합니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 취임사는 2,514개 단어이고 문장 개수는 227개입니다. 한 문장이 평균 11개의 단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오바마 2기 취임사(24.6개), 트럼프 취임사(16.1개)에 비해 문장 호흡이 대단히 짧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6개 단어 이하 문장의 비율도 급격히 증가하였습니다. 오바마 2기(2개, 2.4%), 트럼프(16개, 17.9%)에 비해 바이든은 6개 단어 이하 문장이 90개로 전체의 39.6%에 해당합니다. 이는 놀라운 수치입니다.

당대 영어권 연설 문장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미국 대통령 취임사가 이렇게 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사를 쓴 스피치 라이터는 비나이 레디(Vinay Reddy)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미국으로 이민 와 미국에서 태어난 인도계 미국인입니다.

저는 문장이 이렇게 짧아진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바이든 대통령과 스피치 라이터 비나이 레디의 문장 취향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무엇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둘째 트위터, 페이스북 등 단문 위주의 SNS 영향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트위터 광인 트럼프보다 훨씬 문장이 짧은 것은 특이했습니다.

셋째 시대 상황이 위중하여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국민과 세계인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주어야 할 필요성 때문에 문장이 짧아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넷째 바이든 대통령이 연로하여 이를 상쇄시키기 위해 젊은 층 취향인 단문 위주로 작성한 것 아닌가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이런 식의 문장은 향후 정치인의 연설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됩니다. 짧고 강한 메시지가 반복되는 식으로 연설문이 변화할 것 같습니다.

저는 미국 대통령 취임사를 읽으면서 공통점 두 가지를 읽어 낼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공통점은 어느 취임사나 성경을 인용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시편 30장 5절의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Weeping may endure for a night but joy cometh in the morning.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두 번째 공통점은 상당수의 취임사가 역대 대통령의 어록을 인용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번에는 링컨 대통령의 어록이 소환되었습니다. 링컨 대통령이 1863년 노예해방선언에 서명한 후 행한 연설의 한 대목입니다.

“If my name ever goes down into history it will be for this act and my whole soul is in it. (내 이름이 역사에 남으면 이 행위를 위한 것이고 내 영혼이 그 안에 있다.)"

미국 대통령 취임사는 그 자체가 미국 정신의 축적인 것 같습니다. 성경을 반복해서 인용하고, 전임 대통령의 연설을 계속해서 인용하는 등 성경과 전임 대통령 연설의 테두리 안에서 정신이 반복되며 발전하고 있습니다.

반면 대한민국 대통령의 취임사는 늘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의 대통령 취임사를 비교해 보면서 저는 대한민국의 정신적 뿌리는 무엇인지 궁금해졌고, 왜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사는 늘 새롭기만 하고 역대 대통령 연설과 연결되지 못하는지 안타까웠습니다.

보수는 경험의 축적이고, 진보는 이론의 축적이라고 합니다. 모두 축적이 공통점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사도 <축적>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1.1.25.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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