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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3번째 편지 - 모든 삶은 존엄하다



어제는 오랜만에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감사로 있는 재단에서 <인생연구원>을 발족시키기로 하고, 기반 연구를 여러 학자들이 하고 있는데 어제 그 중간발표가 있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연기를 거듭하다가 방역 기준을 준수하여 어제 발표회를 진행하였습니다. 원래는 재단 학술위원회와 7팀 연구자의 발표회였는데 제가 참석을 특청하였습니다. 제가 평생토록 관심이 있는 <인생연구>를 다른 학자들은 어떻게 접근하는지 궁금하였기 때문입니다.

7개 팀의 주제는 1. 신경 인문학에 기반한 인생 교육, 2. 좋은 삶을 찾아가는 '가치' 학교 운영, 3. 희망 수업 : 끈기 있는 삶을 위한 지혜, 4. 모바일 청년 인생 대학 연구, 5. '인(人)의 생(生)'에서 '생(生)의 인(人)'으로 인생(人生) 개념 대전환을 위한 인생연구원 설립 기반연구, 6. 나이 듦의 인문학적 연구, 7. 생애 주기에 따른 인생 연구 테마의 범주 구성 등이었습니다.

저는 7시간의 인생 공부를 하고 여러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서양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그리스 철학의 창시자들은 인생 문제에 대해 세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What is Life?, Who am I?, How to Live? 어제의 발표 주제도 이것들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모든 발표자는 우리들이 지향하는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삶>, <훌륭한 삶>, <행복한 삶>, <성공한 삶>으로 표현은 달리했지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표현들이 두 가지 의미로 읽혔습니다. 첫째 최고의 목표를 정하고 이를 추구하려는 삶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최고로 좋은, 최고로 훌륭한, 최고로 행복한, 최고로 성공한 삶을 추구하려는 의도입니다.

다분히 소크라테스의 <미덕을 추구하는 삶>을 계승한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개념적으로는 좋지만 실제로는 삶을 지나치게 힘들게 만들고, 영원히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해는 비교 우위입니다. 더 좋은, 더 훌륭한, 더 행복한, 더 성공한 삶을 추구하려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목표일 것입니다. 남보다 더, 남의 집보다 더, 남의 자식보다 더, 어제의 나보다 더. 물론 바람직한 삶의 태도입니다. 그러나 평생 비교하며 살게 됩니다.

저는 반대로 소위 성공하였다는 많은 분들을 보면서 과연 그들의 삶이 좋은 삶, 훌륭한 삶, 행복한 삶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대통령, 재벌, 정치인, 대학자, 유명 연예인들. 그러나 대부분 그 반대입니다.

저는 평범한 삶, 유명하지 않은 삶, 보통의 삶은 삶의 목표가 될 수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만약 제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물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이 "저는 평범하고 유명하지 않은 보통의 삶을 살겠습니다"라고 했다면 제 반응이 어떨까요. 분명 실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이런 삶을 살다 죽습니다. 평범한 삶을 구십 년 넘게 살고 계시는 저희 어머님의 삶을 감히 좋지 않은 삶, 훌륭하지 않은 삶, 행복하지 않은 삶, 성공하지 않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What is Life? 삶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그래서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좋은 삶, 훌륭한 삶, 행복한 삶, 성공한 삶이라는 표현을 쓰고 이를 위해 살아간다고 막연히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지하게 우리에게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고민하여야 합니다. 헤브라이즘 문명에서는 <사랑>을 삶의 목표로 삼았고 인도 문명에서는 <참 자아>를 삶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삶의 목표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습니다. 어느 시대에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관념적으로 모든 시대를 관통하고, 모든 국가를 뛰어넘는 지고지선의 삶의 목표가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조선 시대, 일제 시대, 해방 직후, 박정희 대통령 시대, 민주화와 산업화가 꽃을 피운 시기, 2천 년대 등 각 시대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삶의 목표는 다 다를 것입니다.

우리가 <삶이 무엇이냐>를 고민할 때 자동으로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우리는 소크라테스식 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저는 이번 연구가 이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어느 누구의 삶도 비난받거나 무시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존엄하듯, 그가 살아온 삶, 그 자체도 존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은 존엄하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삶이 존엄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인생연구가 좋은 삶의 특징을 추출하고 모델링하여 우리들에게 이를 목표로 삼아 열심히 살라고 훈계하는 꼰대의 역할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열심히 살려고 노력합니다. 삶을 포기하는 사람조차도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였기에 그런 결정을 내립니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삶을 진정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번 연구가 개개인의 삶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응원하는 메시지를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직진만 하는 삶, 달리기만 하는 삶은 없습니다. 돌아도 가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 있어 주는 친구입니다. 이번 연구가 그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늘 하는 말입니다만 오늘 다시 또 하고 싶습니다.

제가 비를 맞을 때 우산을 주는 친구가 있습니다. 고맙지요. 그러나 저에게 더 고마운 친구는 제가 비를 맞을 때 가던 길을 멈추고 옆에서 같이 비를 맞으며 저를 위로해 주는 친구입니다.

대부분의 인생 연구는 비 맞는 우리에게 우산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인생 연구는 비 맞는 우리와 같이 비를 맞는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늘 이 월요편지가 꼰대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걱정하곤 합니다. 제가 월요편지를 쓰는 이유는 혹시 인생길에 비를 맞는 분이 있다면 그분 곁에서 같이 비를 맞으며 친구가 되어 드리려는 마음에서 쓰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인생은 무엇인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1.1.18.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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