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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8번째 편지 - 대한민국이 [하나] 되는 순간



혹시 농구선수 <신동파>를 기억하시나요.

1969년 11월 29일 아시안 농구대회 결승전이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열렸습니다. 상대는 아시아의 무적 필리핀이었습니다. TV가 아닌 라디오로 중계방송을 듣던 시절이었습니다.

한국팀의 최고의 슈터는 <신동파> 선수였습니다. 그는 이 경기에서 50득점을 합니다. 결과는 95대 86. 대한민국은 필리핀을 꺾고 우승하였습니다. 우승을 기대하던 필리핀 국민은 실망하였고 역설적으로 신동파는 필리핀의 신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신동파는 국민 영웅이 되었지요.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 드디어 대한민국이 승리하였습니다."

이광재 아나운서의 흥분한 목소리에 전 국민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 프로레슬러 <김일>을 기억하시나요.

1970년대 초 초등학교 시절이었을 것입니다. 이웃집 마당에 설치된 흑백텔레비전 앞에 10여 명이 모여 프로레슬링 경기를 구경하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모든 국민이 그 경기를 보았을 것입니다.

주인공은 단연 박치기왕 <김일>이었습니다. 그는 우리들의 영웅이었고 악당 레슬러와의 싸움은 늘 피투성이였습니다. <김일>이 머리로 악당 이마에 박치기를 할 때면 모두가 일어서 환호를 울렸습니다.

그 순간 전 국민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권투선수 <홍수환>의 4전 5기를 기억하시나요.

1977년 11월 27일 파나마에서 세계복싱협회 슈퍼밴텀급 초대 타이틀 결정전이 열렸습니다. 상대 선수는 11전 11 KO 승의 파나마 영웅 카라스키야입니다.

<홍수환>은 2회에 4번 다운됩니다. 그러나 다행히 공이 울리고 3회전이 되었습니다. <홍수환>은 기적처럼 파이팅을 보이며 카라스키야를 KO 시킵니다. 4전 5기의 기적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 우리 모두는 또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분데스리가를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요.

1978년 <차범근> 선수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에서 활약하던 1979년부터 1989년까지 10년 동안 우리 모두는 자발적으로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의 팬이 되었습니다.

<차범근>이 경기에서 골을 넣은 날은 우리 모두 기분이 좋았고, 부진한 날은 우리 모두 기운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차범근>의 슈팅 하나에 환호했고 또 속상했습니다. 그 시절 우리는 차범근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우리 모두 차붐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1981년 9월 30일 서독 바덴바덴에서 서울 52표, 나고야 27표로 서울이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었습니다. "세울"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이 한마디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그로부터 8년, 1988년 9월 17일 드디어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었습니다. 그날은 지역, 종교, 정치 성향과 관계없이 우리 모두,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우리도 올림픽을 개최한 국가가 된 것입니다.

10월 2일까지 16일 동안, 우리는 마치 올림픽이 끝나면 모두 사라질 사람들처럼 올림픽을 즐겼고, 올림픽에 중독되었습니다. 금메달을 따면 전 국민이 환호성을 하였고 흥분의 도가니였습니다.

매 순간마다 우리 모두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입니다.

축구 후진국인 우리나라가 월드컵을 개최하게 된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히딩크를 우리 모두 알게 된 것도 그 시절입니다. 우리는 국가의 운명을 축구에 거는 듯했습니다.

2002년 6월 18일 대한민국과 이탈리아의 16강전. 전반 3분 안정환의 페널티킥이 실패합니다. 모두 땅을 치며 아쉬워했습니다. 전후반을 1대 1로 비기고, 연장전에서 극적인 안정환의 골이 터지며 승리합니다.

그 순간 서로를 끌어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느꼈습니다. 모두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런 장면을 때때로 경험하였습니다. 그 장면에는 박찬호, 박세리, 김연아 등등 많은 스포츠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덕분에 국민 모두 <하나>가 되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고, 우리 모두 서로에 대한 신뢰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때도 정쟁은 치열했고, 경제는 늘 어려웠으며, 사회도 문제 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전 국민이 <하나>되던 그 힘으로 대한민국은 힘차게 전진하였습니다.

그 기쁨의 순간이 사라지면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머지않아 우리는 또 <하나>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래도록 그 <하나>됨의 순간을 맛보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진영의 골이 깊어져, <하나>가 불가능할 것만 같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우리는 점점 파편화되고, 파편화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언어 습관에서도 서로를 격려하고 감싸 안기보다는 짜증 내고 빈정대기 일쑤입니다. 가족들도 저더러 비아냥이 늘었다고 합니다. 정치 상황이 개인의 언어습관까지 바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됨의 순간이 반드시 다시 올 것입니다. 그 순간이 오면 우리는 언제 싸우고 미워했냐는 듯이 <하나>가 되어 손잡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순수한 민족입니다. 단순하기까지 한 사람들입니다.

그날 하루 빨리 오기를 기도해 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0.12.14.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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