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638번째 편지 - 나훈아가 들려준 고향, 사랑, 인생 이야기

 

추석 연휴 최대의 화제는 나훈아였습니다. 나훈아의 <대한민국 어게인> 콘서트 충격은 너무나도 컸습니다. 저도 TV를 통해 그 공연을 보았습니다. 사실 나훈아 콘서트는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고향으로 가는 배> 노래와 함께 무대에 큰 배가 나타나고, <고향역> 노래와 함께 기차가 등장할 때는 다소 의아했습니다. 무대장치에 너무 힘을 주어 정작 노래는 죽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노래가 거듭되면 될수록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화면에 뿌려진 노랫말이 제 가슴을 쓰다듬고, 두드리고, 쑤시고, 상처를 내고, 결국 울게 만들었습니다.

눈앞의 화려한 무대는 사라지고, 귓전에 노랫말만 남아 서로 엉키고 설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나훈아가 전해주는 이야기, 가락을 떠올리지 말고 아래에 제가 쓴 글만 읽어 보십시오. 전혀 다른 맛이 있습니다.

글 쓴 노래 순서는 이번 콘서트에서 나훈아가 부른 노래 순서 대로입니다. <괄호안의 글>은 제가 나훈아의 생각을 추측하여 적어 본 글입니다. 이 글은 <따옴표 속 가사와 가사>를 이어주는 구름다리 역할을 해 줄 것입니다. 각 단락 마지막에는 <노래 제목>을 적어 여러분의 기억을 돕도록 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고향>입니다.

(추석입니다. 타향에서 산 세월이 얼마인가요. 고향이 그리워집니다.) "꿈을 잃은 사람아 고향으로 갑시다. 산과 산이 마주쳐 소곤대는 남촌에. 아침 햇살 다정히 풀잎마다 반기니. 고향으로 가는 배. 꿈을 실은 작은 배. 정을 잃은 사람아, 고향으로 갑시다." <고향으로 가는 배>

(가을입니다. 고향을 떠날 때 두고 온 고향역이 그리워집니다.) "코스모스 반겨주는 정든 고향역. 다정히 손잡고 고갯마루 넘어서 갈 때. 흰머리 날리면서 달려온 어머님을. 얼싸안고 바라보았네. 멀어진 나의 고향역." <고향역>

(어린 시절 부르던 '고향의 봄' 노래가 그립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고향의 봄>

(고향에는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세상은 바람 불고 덧없어라. 나, 어느 바다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모래 벌에 외로이 외로이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동백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모란 동백>

(다시 찾은 고향. 물레방아만이 나를 기억합니다.)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 번 보고, 징검다리 건너갈 때 뒤돌아보며, 서울로 떠나간 사람. 천리타향 멀리 가더니 새봄이 오기 전에 잊어버렸나. 고향의 물레방아. 오늘도 돌아가는데." <물레방아 도는데>

(그 옛날 같이 놀던 명자는 어찌 살까요?) "지금 얼마나 멋지게 변했을까. 자야 자야 명자야! 불러 샀던 아버지, 약심부름에 반 의사 됐고. 자야 자야 명자야! 찾아 샀던 어머니, 팔다리 허리 주무르다 졸고. 노을 저편에 뭉게구름 사이로 추억 별들이 반짝반짝 거리네. 눈물 너머로 반짝반짝 거리네." <명자>

(하루도 고향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머나먼 남쪽 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사랑하는 부모 형제, 이 몸을 기다려. 천리타향 낯선 거리 헤매는 발길. 한 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도, 마음은 고향 하늘을 달려갑니다." <머나먼 고향>

(언제나 그녀와 고향에서 사는 꿈을 꾸었습니다.) "미워도 한세상. 좋아도 한세상. 마음을 달래며 웃으며 살리라.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흘러온 사나이. 구름 머무는 고향땅에서 너와 함께 살리라." <너와 나의 고향>

(고향에 오니 엄마 생각뿐입니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회초리치고 돌아앉아 우시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바람 불면 감기들세라. 안 먹어서 약해질세라. 힘든 세상 뒤처질세라. 사랑 땜에 아파할세라. 그리워진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도는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홍시>

다음 이야기는 <사랑>입니다.

(타향살이 힘들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견딜 만했습니다.) "난 그냥 네가 정말 좋아. 이유도 없이 그냥 좋아. 난 너를 사랑하고 싶어. 사랑에 빠지고 싶어. 난 너를 모두 알고 싶어. 벗어버린 아담과 이브처럼. 그래 난 널 정말 사랑하나 봐." <아담과 이브처럼>

(시간이 흘러 그녀는 내 여인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 보고 또 보고 또 쳐다봐도 싫지 않은 내 사람아. 온 세상을 다 준대도 바꿀 수 없는 내 여인아. 잠시라도 떨어져서는 못 살 것 같은 내 사람아." <사랑>

(그러나 그 사랑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매일매일 가슴으로 울었습니다.) "이미 돌아선 님이라면 미워도 미워 말아요. 이미 약속된 이별인데 아무 말 하지 말아요. 눈물을 감추어요. 눈물을 아껴요. 이별보다 더 아픈 게 외로움인데. 무시로. 무시로. 그리울 때 그때 울어요." <무시로>

(울어도 울어도 또 눈물이 나왔습니다.) "울지마. 울긴 왜 울어. 그까짓 것 사랑 때문에. 비속을 거닐며 추억일랑 씻어버리고 한잔 술로 잊어버려요. 어차피 인생이란 이별이 아니더냐. 울긴 왜 울어. 바보처럼 울긴 왜 울어." <울긴 왜 울어>

(그런데 하늘은 정녕 무심치 않았습니다.) "내게 애인이 생겼어요. 난생처음으로 무스도 바르고, 물방울 넥타이로 멋도 부리고요. 상상도 못 했던 깜짝 이벤트로 멋지게 프러포즈 하려고요. 내가 사랑에 빠졌어요. 결혼까지 하려고요. 올가을에 하려고요. 결혼식에 꼭 오세요." <내게 애인이 생겼어요>

(나는 그녀를 위해 노래했습니다.) "오소서 님이여. 님이시여. 촉촉이 젖은 입술로 바람에 업히여 구름에 실려 살짝이 오소서. 낙숫물에 머리를 감고, 달빛에 머리를 빗고, 님이 오시는 길목에 서서 사모하는 가슴앓이 아신다면은. 오소서 님이여. 님이시여." <사모>

(그러나 인생은 제 바람과 달랐지요. 그 사랑도 얼마 못 갔습니다.) "어차피 가는 사람. 웃으며 보내고 돌아서는 어깨 위엔 주르륵 비까지 내리네. 내가 좋아 사랑한 사람. 후회 같은 건 없는데. 왜 이럴까. 왜 아픈 걸까. 바보처럼 왜 이러는 걸까. 딱 한 가지. 딱 한 마디. 딱 한 글자. 정. 정이 웬수야." <웬수>

(이럴 때면 늘 생각나는 고향의 첫사랑이 있습니다.) "살구꽃이 필 때면 돌아온다던 내 사랑 순이는 돌아올 줄 모르고. 서쪽 하늘 문틈 새로 새어드는 바람에 떨어진 꽃 냄새가 나를 울리네. 가야 해. 가야 해. 나는 나는 가야 해. 순이 찾아가야 해. 누가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나이는 18세, 이름은 순이." <18세 순이>

(어찌해도 그 사랑들은 쉬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내가 왜 이런지 몰라. 도대체 왜 이런지 몰라. 꼬집어 말할 순 없어도 서러운 맘 나도 몰라. 잊어야 하는 줄은 알아. 이제는 남인 줄도 알아. 알면서 왜 이런지 몰라. 두 눈에 눈물 고였잖아. 이러는 내가 정말 싫어. 이러는 내가 정말 미워. 이제는 정말 잊어야지. 오늘도 사랑 갈무리." (갈무리)

(그녀들과의 첫 만남이 생각납니다.) "예기치 못했던 운명의 그 시간, 당신을 만나던 날. 드러난 내 상처 어느새 싸매졌네. 나만을 사랑하면 안 될까요. 마음만 달아올라. 오늘도 애타는 나의 몸짓들. 생각하면 허무한 꿈일지도 몰라. 꿈일지도 몰라. 하늘이여, 저 사람 영원히 사랑하게 해줘요." <비나리>

(이렇게 제 사랑은 모두 이별로 끝났지만, 영원히 어느 사랑 하나도 잊지는 못할 것입니다.) "잊으라 했는데, 잊어 달라 했는데. 어떻게 잊을까. 어찌하면 좋을까. 아직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나 봐. 아마 나는 너를 잊을 수가 없나 봐. 영원히 영원히 네가 사는 날까지. 아니 내가 죽어도 영영 못 잊을 거야." <영영>

마지막 이야기는 <인생>입니다.

(인생이 뭐 별건가요.) "한 번 딱 한 번 인생인데 무엇을 주저하는가. 사랑 또 이별 아픔 행복. 흔해 빠진 세상 얘기. 우지 마라. 세월 간다. 아까운 청춘 간다. 돌고 또 도는 인생인데 무엇을 걱정하는가. 타고난 팔자 상관 말고 너나 그냥 잘하세요." <딱 한 번 인생>

(아는 것이 많다는 테스형, 소크라테스 형에게 인생을 물어보았습니다.)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먼저 가 본 저세상 어떤가요. 테스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형." <테스형>

(그런데 나이 드니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있더군요.) "살다 보면 알게 돼. 알면 이미 늦어도. 그런대로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잠시 스쳐 가는 청춘. 훌쩍 가버린 세월. 백 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 살다 보면 알게 돼. 비운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꿈이었다는 것을." <공>

(청춘이 그립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돌려놓고 싶습니다.)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흐르는 내 인생의 애원이란다. 지나간 그 옛날이 어제 같은데. 가는 세월 막을 수는 없지 않으냐. 청춘아! 내 청춘아! 어딜 갔느냐." <청춘을 돌려다오>

(남자로 산 인생, 남편으로 산 인생.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냥저냥 사는 것이 똑같은 하루하루. 출근하고 퇴근하고 그리고 캔 맥주 한 잔. 홍대에서 버스 타고 쌍문동까지 서른아홉 정거장. 운 좋으면 앉아가고 아니면 서고. 지쳐서 집에 간다. 남편이란 그 이름은. 그 이름은 남자의 인생." <남자의 인생>

(그 힘든 세월, 술 한 잔으로 달랬지요.)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비 내리는 이 밤도 애절쿠려. 능수버들 태질하는 창살에 기대어. 울던 사람아." <번지 없는 주막>

(주막의 벽시계를 바라보고, 애꿎은 세월만 원망했습니다.) "세월아! 너는 어찌 돌아도 보지 않느냐? 나를 속인 사랑보다 네가 더욱 야속하더라. 한두 번 사랑 땜에 울고 났더니, 저만큼 가버린 세월.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고장 난 벽시계>

(인생은 진정 팔자소관인가 봅니다.) "사랑을 묻거들랑 말해주시게. 후회하더라도 한번 해보라고. 이별을 묻거들랑 거짓말하시게. 아프긴 하여도 참을 만하다고. 노을이 진다고 슬퍼 마시게. 그래야 또 다른 내일이 온다네. 자네는 아는가. 진정 아는가. 8자는 뒤집어도 8자인 것을." <자네>

(내세울 건 없어도 칠십 평생 돌아보니 사내답게 살았습니다.) "벌거벗은 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자랑할 것 없어도 부끄럽지도 않아. 한때 철없던 시절, 방황한 적 있지만, 소주 한 잔 마시고 사내답게 잊었다. 미련 같은 건 없다. 후회 역시도 없다. 사내답게 살다가 사내답게 갈 거다. 사내답게 갈 거다." <사내>

나훈아의 노랫말은 엮어 엮어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가 들려준 세 가지 이야기. 고향, 사랑, 인생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정녕 그를 현자라 부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20년 추석은 그가 있어 행복했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0.10.05. 조근호 드림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이전글 목록으로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