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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번째 편지 - 누가 happiness를 행복으로 최초 번역하였는가?

 

저는 요즘 <행복>에 대해 많은 책을 읽고 자료도 찾고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토크 콘서트 <행복의 비브라토> 준비를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은 매일 <행복>을 이야기합니다. '행복하세요'가 인사말이니까요. 저도 행복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제 서가에는 행복에 대한 책이 수십 권도 넘을 것입니다.

행복의 어원을 따지면 그리스어 'eudaimonia'가 영어에서 'happiness'가 되고 일본어에서는 '幸福'이 되었다가 한국어에서 '행복'이 되었습니다. 저는 누가 언제 happiness를 幸福으로 번역하였는지가 늘 궁금했습니다.

영어 happiness를 일본어의 幸福으로 번역한 사람은 과연 무슨 생각을 가지고 전혀 다른 문화권의 두 단어인 happiness와 幸福을 같은 뜻을 가진 단어라고 생각하여 연결 지었을까요.

상당히 오랜 시간 추적하였지만 우리나라 자료에는 제 궁금증을 풀어줄 자료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philosophy를 철학으로 번역한 사람은 니시 아마네(西周, 1829년 3월 7일~1897년 1월 31일)입니다.

이처럼 happiness를 幸福으로 번역한 최초의 누군가를 찾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philosophy가 哲學으로 정착하기까지는 일본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처럼 happiness가 幸福으로 번역되는데도 여러 논의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 것입니다.

<幸福>이라는 개념은 현대에 와서 '인생의 목표'이자 '국가경영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개념이면 당연히 happiness를 일본에서 번역할 때 어떤 한자어로 번역할지 학자들 간에 광범위한 논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면, 일본에서 누가 happiness를 幸福으로 처음 번역하였을까요? 최근에 행복을 다시 공부하면서 일본 자료를 찾아 알게 된 사실입니다.

일본에 영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08년 10월 4일입니다. 영국 해군 군함 페이튼호가 네덜란드 배를 수색하러 나가사키항에 들어온 날입니다. 그전까지 일본 사람들은 영어의 ABC도 몰랐습니다.

이 사건으로 일본인은 영국을 위험한 국가로 생각하게 되었고 막부는 영국학 공부를 지시합니다. 그 결과 1811년 일본 최초의 영일사전 <암액리아흥학(諳厄利亜興学)> 10권이 완성되고, 1814년 본격적인 사전 <암액리아어림대성(諳厄利亜語林大成)> 15권이 완성됩니다.

같은 시기인 1811년 초등학교용 영어 교과서인 <암액리아국어화해 (諳厄利亜国語和解)> 10권이 발간됩니다. <암액리아>는 영국을 뜻하는 라틴어 Anglia의 일본어식 표기입니다. 이 책에 <幸福>이 최초로 등장합니다.

<諳厄利亜国語和解> 제3권에 happiness를 설명하면서 발음은 ヘピネス(헤삐네츠)로 표기하고 뜻은 <幸福>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같은 책 제10권에서 "Sir, i Thank you an Eternal friendship and wish you always to simply Fortune, fare well."를 "我汝に生前の交誼恩沢を謝し 常に君の幸福加倍して健在せんことを 祝するなり"로 번역합니다.

일본어를 몰라도 <幸福>이라는 단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어 단어 무엇을 행복으로 번역하였을까요? 바로 fortune입니다.

1814년 집대성한 영일사전 <諳厄利亜国語林大成>에는 <happiness ヘピネス 幸福 サイワイ><Fortune ホルテュン 幸福 サイワイ><Luck リュフク 幸 サイワヒ>으로 나타납니다.

즉, 일본인들은 영어 happiness를 번역하는 초기인 1811년부터 한자어 幸福이라고 번역하였고, 幸福은 happiness뿐만 아니라 fortune과 luck에도 함께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들은 일본에서 사라집니다. 막부가 쇄국정책을 채택하면서 유일한 교역항 나카시마에서 사용되는 네덜란드어만 통용됩니다. 반면, 영어는 쇄국체제 유지 수단으로만 사용하고 교역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아 이 책들은 네덜란드어 통역사들만 학습용으로 소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happiness를 幸福이라고 번역한 것은 꾸준히 이어져 1854년 미국 페리 제독에 의한 일본의 강제 개항 이후 봇물 터지듯 쏟아진 영어책에도 happiness는 幸福으로 번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언제 행복이라는 단어가 들어왔을까요? 이한섭 교수가 펴낸 <일본어에서 온 우리말 사전>에 의하면 1895년 <국민소학독본> 제3과에 처음 등장한다고 합니다. 현대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가족과 같이 상쾌한 집에 사는 것이 참 幸福이라. 다만 그 幸福으로 만족하지 말고 더욱 상쾌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소개된 것으로만 따지면 일본은 1811년, 우리나라는 1895년, 84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 역사 공부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영어 단어 happiness를 幸福이라고 번역한 최초의 일본 사람이 누군지 찾고 싶었고, 그는 어떤 생각으로 happiness를 幸福이라고 번역하였는지 알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신기루나 파랑새처럼 찾고 있는 행복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테니까요.

살펴본 대로 happiness를 幸福이라고 번역한 것은 1808년 영국 페이튼호 사건 이후 막부가 추진하였던 영국학 연구의 결과였습니다. 영어 교과서와 영어사전에 공히 happiness를 幸福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번역은 개인 작업이 아니라 공동작업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떤 사유 과정을 거쳐 happiness를 행복이라고 번역하였는지, 그 번역 배경에는 happiness를 논의하는 어떤 철학의 사상이 개입하였는지. 혹시 다른 경쟁 번역어는 없었는지 등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수확이 있다면 행복으로 번역된 것이 happiness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큰 재산이나 행운'을 뜻하는 fortune과 '운'을 뜻하는 luck 모두 행복으로 번역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최초 번역자들은 happiness란 다분히 '운'에 의해 좌우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행복은 우리가 열심히 살면 하늘에서 내려주는 축복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축복이 내려질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저 운에 달린 것이지요.

우리는 행복을 추구한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씁니다.

그러나 일본의 최초 번역자들이 생각했듯이 행복이 운에 의해 좌우된다면 행복을 추구하는 우리 노력이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요? 나이가 들면서 점점 행복은 추구하는 대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스 사람들에게 삶은 뭔가를 추구해 나가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견디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성공적으로 잘 견디어 낸 사람만이 운 좋고, 축복받은, 행복한 사람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소크라테스에 의해 부정되었고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선언되었습니다. 바로 행복을 권리로 본 것입니다. 행복추구권입니다.

저도 이를 믿고 젊음을 불살랐고 지금도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그러나 수많은 형사사건을 접하다 보면 행복을 권리로 생각하여 추구한다는 생각은 너무나도 오만한 생각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삶 앞에 겸손하게 하루를 잘 견딘다는 생각으로 살아갈 때 다행히 운이 좋다면 축복이 내려지는 것, 바로 우리는 그것을 <행복>이라 부르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우리나라 책에 최초로 등장한 幸福은 '가족과 같이 상쾌하게 사는 것'입니다. 이처럼 행복에 대한 분명한 설명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두고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0.9.21.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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