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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4번째 편지 - 고대 그리스인이 찾은 [필수 거리] 개념

 

며칠 전, 9월 19일 <행복의 비브라토>행사를 총지휘하는 오충근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조 변호사님, 조심스럽게 걱정하던 일이 결국 발생하였습니다. 부산시에도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2주 연장되어 9월 20일까지 다중이용 공공시설이 폐쇄되었습니다. 그 바람에 9월 19일 공연은 부득불 연기되었습니다."

불안 불안하였던 상황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오 선생님과 저는 여러 차례 통화한 끝에 공연장 일정이 비어 있는 시간 중에 10월 16일 금요일로 행사를 연기하였습니다. 오 선생님 설명에 따르면 어떤 오페라는 공연 전날 공연장이 폐쇄되는 바람에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고 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면서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새로운 개념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거리>라는 표현은 공간과 관련된 개념인데 이제는 인간관계와 관련된 개념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침 요즘 읽고 있는 '주인과 심부름꾼(The Master and his Emissary)'이라는 책에 <거리>에 관한 특별한 설명이 있어 오늘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이 책은 이언 맥길크리스트라는 분이 쓴 책입니다.

저자의 이력을 보면 이 책이 어떤 내용을 언급할지 짐작이 됩니다. 저자는 영국 사람으로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철학과 영문학을 전공한 후 뒤늦게 의학을 공부하여 존스 홉킨스에서 뇌영상을 연구하고, 런던 베들렘 및 모즐리 왕립병원의 정신과 의사와 원장을 역임한 분입니다.

이 책의 부제는 <두뇌 속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배신과 정복의 스토리>입니다. 이 책은 서양 지성사를 우뇌와 좌뇌가 벌인 투쟁의 역사로 보고 하나하나 논거를 대며 이를 입증해 내고 있습니다. 저자는 인간은 두뇌에 있는 전두엽(frontal lobe) 기능이 발전하면서 <거리>개념이 생겼다고 주장합니다.

"전두엽은 우리가 우리 자신과 세계에서 물러설 수 있게 해 준다. 이 물러서는 과정을 맨 처음 시작한 사람들은 그리스인이다. 전두엽을 통해 만들어진 이 <필수 거리>는 우리 자신을 다른 자아처럼 볼 수 있게 해 준다. 한 걸음 물러서서 인간의 얼굴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자세하고 아름다운 초상을 그릴 수 있게 해 준다."

그리스 조각이 그처럼 아름다운 이유는 그리스 사람들이 <필수 거리>라는 개념을 발견하고, 사람을 필수 거리에서 관찰하고 그들의 특징을 잘 포착하여 재현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책을 좀 더 읽어 봅니다.

"우리는 세계와 필수 거리를 갖게 되었고 이 거리를 통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사물에 대한 통찰이 생기고 세계 전체와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보여주는 최고의 보기가 그리스 연극이다. 연극에서는 우리 자신과 타인들의 생각과 감정이 객관화되면서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돌아온다."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 표현입니다. 제 나름대로 해석을 하면 이렇습니다. 연극 공연장에는 무대와 객석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배우와 관객은 다른 공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공간적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 공간적 거리가 <필수 거리>의 역할을 하여 연극 처음에는 관객이 배우의 연기를 일정한 심리적 거리를 두고 감상합니다. 그러다가 연극이 클라이맥스로 다가가면 그 거리가 좁혀져 거의 거리감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이 순간 관객은 배우의 연기에 공감(compassion)하는 것입니다.

연극이 끝나면 그 거리가 <필수 거리>로 회복되면서 관객은 주인공의 비참한 운명에 대해 두려움과 연민을 공감하고 그 공감으로부터 정신적 승화작용이라는 통찰(insight)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카타르시스(katharsis)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람은 그리스인들이 찾은 <필수 거리>를 유지해야 우뇌로는 <공감 능력>을, 좌뇌로는 <통찰 능력>을 획득하여 인생을 균형 있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플라톤이 천상의 이데아를 주장하여 우리와 세계의 거리를 천상으로까지 늘리는 바람에 우리는 2천 년간 <필수 거리>를 잃어버렸다고 진단합니다.

저는 이 <필수 거리>개념을 통해 코로나 세상을 살펴보고 싶습니다. 사회적 거리 1.5미터는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필수 거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회적 거리 1.5미터 때문에 우리는 그동안 정신없이 달려온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매일 저녁 외식하는 삶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고민하게 된 것입니다. 생계를 위해 그렇게 살았다고 주장하였지만 그런 삶이 사라진 지금도 생계는 유지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필수 거리가 주는 공감과 통찰을 무시한 채 본능에 이끌려 인생을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남자들은 세상과는 지나치게 거리를 좁히며 살았지만 가정과는 거리를 멀리하며 살아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동안 남자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정 일을 거론하면 약간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 가정과 <필수 거리>보다 더 가깝게 지내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대한민국 남편들은 어쩌면 불편을 느끼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아내들도 남편이 집에 오래 있는 지금 상황이 거추장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적정한 <필수 거리>는 과연 얼마일까요?

얼마 전 몇몇이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 젊은 후배는 아내와 터치를 하며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에게 필수 거리는 <촉각>이 느껴지는 거리인 모양입니다.

다른 선배는 부부는 서로 눈에 안 띄어야 말썽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시각>으로 감지할 수 있으면 시빗거리가 생겨 부부싸움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부부생활을 오래 하면 저절로 이해가 되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떤 거리가 부부 사이의 가장 바람직한 필수 거리일까요? 사람에 따라 다 다를 것이고 결혼 햇수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오감을 기준으로 설명하면 <미각 거리>가 좋은 시기가 있습니다. 키스 말입니다. 그다음은 <후각 거리>가 좋은 시절이 있습니다. 그녀의 냄새가 너무나도 좋은 시기이죠. 향수 산업은 이 때문에 발전한 것입니다. <촉각 거리>가 좋은 시절도 있습니다. 그저 껴안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던 부부가 <시각 거리>밖으로 멀어져 버리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날 한 선배가 이런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바람직한 부부의 거리는 보이지는 않지만 들리는 거리, 때로 큰 소리로 부르지만 안 들리는 척해도 익스큐즈가 되는 거리 아닐까?"

<시각 거리>에서는 벗어나지만 <청각 거리>의 경계선 내에 머무는 거리.

여러분에게 세상과의 필수 거리, 부부간의 필수 거리는 얼마이신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0.9.7.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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