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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번째 편지 - 어머님 옆에 꼭 붙어 있어라

 

다행히도 어머님은 7월 14일 입원하신 지 13일만인 어제 7월 27일 오후 퇴원하셨습니다. 그동안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머님을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는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입원하고 상태가 많이 좋아지셔 퇴원해도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던 7월 22일 어머님이 갑자기 상당한 양의 혈변을 누시며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장내 출혈이 발생한 것입니다.

주치의 선생님은 혈관 내 경색을 해결하기 위해 혈전용해제를 썼는데 하루 만에 장 출혈이 일어난 것으로 보아 장내 어느 부위에서 약의 부작용으로 작은 출혈이 자연 지혈되지 못하고 출혈로 이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수혈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어머님을 중환자실로 이송하였습니다. 중환자실은 가족 면회도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있어 가족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침 8시경 의사의 면담이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어느 부위에서 출혈이 있었는지 찾는 것이었습니다. 연세 때문에 수면제를 쓸 수 없어 장 내시경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무수면으로 직장 내시경과 위내시경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 검사에서는 출혈 부위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의사는 소장 내 어디에선가 출혈이 있는 것 같다며 그 부위를 찾아야 약을 쓰든지 지지는 시술을 하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어느 부위에서 출혈이 있는지 찾는 일이 급선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검사 순서는 1. 장내 CT 촬영, 2. 캡슐 내시경, 3. 장 내시경 순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CT 촬영은 조영제를 사용해야 하는데 어머님이 신장이 안 좋으셔서 조영제가 신장을 급격히 나쁘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가족들은 상의 끝에 캡슐 내시경을 먼저 하면 어떠냐고 말씀드렸고 의사 선생님도 좋다고 하셔서 캡슐 내시경을 하였습니다. 다행히도 소장 내 작은 궤양 여러 개를 발견하였고 출혈의 원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는 사이 어머님은 안정되셨고 7월 24일 오후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겼습니다. 중환자실만 벗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족들은 안심이 되었습니다. 중환자실에 있는 모든 환자들은 몸에 관을 여러 개 꼽고 있어 한눈에 보아도 심상치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주치의는 혈전 용해제를 끊고 점막 보호제를 쓰면 치료될 것으로 전망하였습니다. 그 전망대로 어머님은 상태가 점점 호전되셨고 퇴원 전날은 배가 고파 잠이 안 온다고 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안심할 수는 없는 것이 세상사인 모양입니다. 어제 아침 간호사가 와서 헤모글로빈 수치가 좀 떨어져 혈액 한 팩을 수혈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퇴원 결정까지 받았는데 이 무슨 일인가?

그러나 다행히도 오전 퇴원이 오후로 늦추어졌을 뿐 퇴원하실 수 있었습니다. 13일의 입원. 가족 모두에게 비상시기였지만 다들 고생한 덕분에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13일을 간병인 없이 가족들이 입원 뒷바라지를 하였지만 얼마나 더 가능할지는 모릅니다. 장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가족들도 지치게 될 것입니다.

지난주 월요편지에 이 상황을 적었더니 많은 분들이 위로와 격려의 글을 보내 주시고 만날 때마다 걱정해 주셨습니다. 월요편지를 통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장황하게 월요편지에 적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지난주 월요편지를 받아 본 후배 한 분이 이런 카톡을 보내왔습니다.

"오늘 아침 어머니를 퇴원시키면서 집에 가고 있는데 월요편지를 보며 저도 속으로 울었습니다. 88세이시라 오래 못 사실 것 같은 예감이 들지만 그래도 집으로 모시고 가니 차 안에서 좋아하십니다. 지난 9일간 어머님을 입원시켜 드리고 인생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검찰 선배 한 분은 이런 이메일을 보내 주셨습니다.

"저희 집이 요즘 전쟁터입니다. 집에는 파킨슨을 앓고 계시는 어머님이 계시는데, 2분 거리에 혼자 사시는 장모님이 지난주 지병인 심장질환으로 발작을 일으켜 응급실을 다녀왔습니다. 두 어머님을 모시고 있으니 바람 잘 날이 없겠죠."

그렇습니다. 인생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마지막을 지켜드려야 하는 과정이 각 집안마다 구체적으로 다르긴 해도 큰 모습에서 보면 다 한 가지입니다.

누군가가 늙고 병들어 죽음을 맞이하고, 그 과정에 자식이 관여하여 수발을 들고 병원 간호를 하고 임종을 맞이하게 됩니다. 자연의 섭리이죠. 누구도 거역할 수 없고 도망칠 수도 없습니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힘듭니다. 과정 중에 가족 간의 다툼도 생기고 환자가 짐이 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분이 돌아가시면 효자나 불효자나 장례식장에서 오열하며 후회하지요. 살아계실 때 좀 더 잘할 것 그랬다며 좀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낼 것 그랬다며 안타까워하지요.

우리는 장례식장을 갈 때마다 그 장면을 수없이 보고 그 장례식장을 빠져 나 올 때는 늙으신 부모님과 시간을 같이 보내고 밥 한 끼 따뜻하게 먹어야겠다는 결심을 하지만 세상사는 우리가 그리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늘 무엇인가 일이 벌어지고 무엇 때문인지 바쁩니다.

저는 이번 과정에 며칠을 어머님과 같이 잤습니다. 그저 잠만 잤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너무 편했습니다. 적어도 이만큼은 훗날 덜 후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머님 옆에서 잘 수 있었을까요.

친구가 보내 준 카톡 하나가 가슴을 따뜻하게 해 줍니다. "어머님 옆에 꼭 붙어 있어라. 바쁜데 뭐하러 왔냐고 하시지만 어머님은 네가 옆에 있으면 안심하시잖아." 이 카톡에 이렇게 답장을 썼습니다. "정말 똑같은 상황이야. 고마워."

인생은 이렇게 흘러가는 모양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0.7.28. 조근호 드림

추신) 어머님 퇴원 때문에 월요편지가 하루 늦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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