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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8번째 편지 - 간절함은 기도가 됩니다

 

"어머님이 많이 안 좋으세요. 내려와 보셔야겠어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동생이 지난주 화요일 아침 일찍 전화를 하였습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아흔이 넘으신 어머님의 건강은 늘 걱정거리입니다.

어머님 상태는 한눈에 보아도 매우 안 좋았습니다. 기력이 하나도 없어 보였고 저를 보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셨습니다. 하루 전만 해도 보행 보조기를 잡고 걸어 다니시고 음식도 해서 직접 상을 차리던 분이 하루 만에 중환자가 되신 것입니다.

혼자 일어서시기는커녕 앉으시도록 부축을 하여도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바람 빠진 풍선 인형처럼 슬그머니 무너져 내리셨습니다. 이런 모습은 평생 처음이었습니다. 동생에게는 괜찮을 것이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겁이 났습니다. 과연 기력을 되찾으실 수 있을까.

동생 부부가 병원을 모시고 가겠다고 하여 회사에 급한 일이 있던 저는 일단 출근하였습니다. 동생과 전화 연락을 계속하였지만 마음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검사는 했는지, 입원은 했는지, 상태는 좀 호전되었는지 끝없이 질문을 계속해 대었습니다.

오후 5시경 간신히 입원을 하였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병원에 가보니 입구부터 전쟁터입니다. 코로나19때문에 가건물로 안심 진료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고 출입도 철저히 통제되고 있었습니다.

입구에서 설문지에 기재를 하고 들어가려 하였더니 보호자 출입증이 있어야 한답니다. 병실에 있는 동생이 내려와 보호자 출입증을 주고 교대하여야 출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병실에는 보호자 1명만 상주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처음 입원하여 사정에 어두우니 일단 병실에 가서 교대하겠다고 사정을 하고 간신히 입구를 통과하였습니다. 병실에 가보니 아침과 같은 상황입니다. 아직 피검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고 몇 가지 검사가 더 진행되어야 원인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전과 달리 병실에 한 명만 상주할 수 있게 되니 누가 간호를 할 것인지가 문제였습니다. 전에 입원하셨을 때는 상주 간병인을 두고 가족들이 자유롭게 병문안을 다녔는데 상황이 달라진 것입니다.

병원 룰대로 하면 상주 간병인을 두더라도 가족이 면회를 오면 상주 간병인과 교대하여야 입장이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상태가 나쁜 어머님을 낯모르는 간병인에게 맡기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일단 첫날은 동생이 자기로 하였습니다. 이 상황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위급한 상황은 넘기고 다시 생각하기로 하였습니다.

다음날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의사 선생님 설명으로는 염증 수치가 너무 높은 것이 문제라고 했습니다. 정상치는 0.5인데 28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패혈증이나 폐렴으로 갈 수 있어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또 혈전 수치가 높은데, 뇌 MRI 결과로는 뇌혈관에서 작은 경색과 출혈이 동시에 발견되었다고 했습니다. 경색을 해결하기 위해 약을 쓰면 출혈에 안 좋고, 출혈을 멈추기 위해 약을 쓰면 경색이 악화되는 딜레마 상황이라 조심스럽게 지켜보겠다고 하였습니다.

제 머리에는 경망스럽게도 불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님이 이번 고비를 잘 넘기실 수 있을까? 다시 집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까? 생각을 떨쳐 버리려 했지만 진드기처럼 뇌에 붙은 이 생각들은 좀처럼 떠나가지 않았습니다. 동생의 눈빛에서도 같은 생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첫 번째는 아버님 생각이었습니다. 1972년 중학교 2학년 때 아버님이 신장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어린 저로서는 얼마나 심각한지 잘 실감하지 못하였지만 아버님의 죽음을 떠 올리기에는 충분한 나이였습니다.

아버님은 명동성모병원에 입원하고 계셨습니다. 제 발길은 명동성당으로 향했고 엄숙한 분위기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살려 주세요. 살려주세요." 간절함이 기도로 이어졌습니다.

그 기도가 통했는지 아버님은 그 후 11년을 더 사시고 1983년 제가 검사가 되는 것을 보고 한 달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두 번째는 이어령 선생님이 쓰신 <지성에서 영성으로>의 한 대목입니다. 이 책은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 이어령 선생님이 크리스천이 되는 자전적 과정을 쓴 책입니다.

병이 들어 하와이에서 요양을 하고 있는 따님 이민아 변호사를 찾아갔습니다. 이 변호사가 무신론자 아버지에게 교회를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딸을 위해 따라나선 교회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원주민 교회입니다. 몇몇이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저들을 어이할꼬. 그 실망과 절망을 어이할꼬.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민아가 만약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된다면 무엇이 남을까. 나도 모르게 나는 땅바닥에 엎드려 기도를 드렸습니다. 제발 민아를 위해 저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꼭 하나님은 계셔야 한다고 황급히 무릎 꿇었지요.>

저는 이 대목을 수십 번 읽었습니다. 읽을 때마다 눈가에 눈물이 맺힙니다. 지금도 눈물을 훔치며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간절함은 기도가 됩니다.

지금 상황도 다를 바 없습니다. 어머님의 건강 회복을 위해 마음속으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어머님을 집으로 돌려 보내주세요. 다시 걸을 수 있게 해 주세요." 저는 급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 불량 신도입니다.

일주일이 지난 오늘 다행히 어머님 상태는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염증 수치도 4.5로 떨어졌고 혈전 수치도 안정되고 있다고 합니다. 보행 보조기에 의지하고 걸으시기도 합니다. 70%쯤 회복되었습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족들이 교대로 병실을 지킵니다. 어제는 제가 잤습니다. 어머님 곁에서 자는 시간이 저에게는 행복한 시간입니다. 아마 어머님도 저를 낳고 밤새 저를 돌보느라 힘드셨겠지만 그 시간이 어머님께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금주에는 어머님이 퇴원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0.7.20.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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