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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번째 편지 - 내 곁에 있어주

 

지난주 목요일 저녁, 매달 한 번 모이는 어느 모임에서 캘리그라피라는 새로운 분야를 체험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강의 분위기가 좋아서인지 다들 헤어질 생각을 하지 않더니 누군가 엉뚱한 제안을 하였습니다.

"이 장소에 노래방 시설이 최고로 되어 있으니 노래방 한번 하면 어떨까요." 노래에 젬병인 저는 그냥 집에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들 분위기가 업되어 즉석 노래방이 열렸습니다.

몇 사람이 노래를 부른 후 그 장소 주인인 여성 기업인이 대중의 강권에 못 이기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제 또래의 그 기업인이 고른 노래는 아주 옛날 노래였습니다. 1974년 발표된 이수미의 "내 곁에 있어주" 입니다.

저도 오랜만에 이 노래를 들었습니다. 가사 후반부는 이런 내용입니다. '내 곁에 있어주/ 내 곁에 있어주/ 할 말은 모두 이것 뿐이야/ 내 곁에 있어주/ 내 곁에 있어주/ 내 너를 위하여 미소를 보이잖니/ 손목을 잡으며 슬픔을 감추며/ 내 곁에 있어주'

'내 곁에 있어주' 대목에서는 무릎을 꿇고 오른손을 뻗으며 애절하게 호소하였습니다. 모두 박장대소하였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모두 일어나 환호하였습니다. 앵콜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앵콜 대신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기업을 38년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직원들의 이직이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미용 분야는 이직률이 높은 업종입니다. 그래서 직원들을 붙잡고 싶은 제 심정을 담아 이 곡을 애창곡으로 정하여 부르고 있습니다.'

그분이 노래를 부르며 꿇은 무릎에는 떠나가는 직원을 붙잡으려는 간절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모두 숙연해졌습니다. 저도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아마 모든 기업인들은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회사를 운영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매출 부진이 아니라 직원의 이직이었습니다. 직원이 사무실에 들어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하면 모두 사직이었습니다.

초기에는 직원이 사표를 내면 저 자신이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직원은 사정이 있어 사직을 하는 것이었겠지만 저는 제 자신의 인격에 문제가 있어 그 직원이 사표를 내는 것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입니다.

검찰에서의 사직은 스스로 사고를 내거나 아니면 승진에 탈락된 경우에만 존재하는 것이었기에 직원 사표에 대한 면역이 거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사표 철회를 호소하기도 하고, 더 좋은 근무 조건을 내걸기도 하였지만 한번 떠난 마음을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그 후로 직원이 사표를 내면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었고 철회를 권고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표는 저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특히 회사 실적이 좋고 직원들에게 잘 대우해 주고 있다고 생각할 때 사표가 제출되면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한 것이 사실입니다.

몇 년 전 송년회 자리에서 박재현 이사가 건배사를 하면서 이 멤버가 내년 송년회에도 그대로 참석한다면 자신이 한턱 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렇게만 된다면 당연히 제가 크게 한턱 쏘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두 달이 채 못 되어 이직자가 나왔습니다.

금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되었지만 지난 3년간 매년 봄에 전 직원 일본 여행을 갔었습니다. 다들 좋아하였고 저도 뿌듯하였습니다. 그런데 작년에는 그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팀장급 직원이 사표를 내었습니다. 정말 가슴 아팠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은 모든 것을 둔감하게 만듭니다. 10년 정도 회사를 운영하니 "대표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에도 무덤덤한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무덤덤한 것이 좋은 것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상처는 덜 받습니다.

CEO 리더십 연구소 소장 김성회가 쓴 [사장의 고독력]의 첫 챕터는 "직원의 사표는 사장에 대한 해고 통지서"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오래전 김 소장에게서 받은 그 책을 기억해 내고 다시 펼쳐 들었습니다.

이 챕터를 읽어보니 예전에 밑줄 쳐둔 부분이 있었습니다. 다시 읽어 보아도 공감이 가는 대목입니다. 큰 기업이든 작은 기업이든 사장직에 있는 사람은 모두 한번 읽어보고 새겨야 할 이야기들입니다.

첫 챕터는 어느 중소기업 사장의 넋두리로 시작합니다. "내가 꼭 붙잡고 싶은 유능한 직원이 다른 회사로 가겠다며 사표를 냈어요. 나와 더 이상 일하지 않겠다는 뜻이니, 사장으로선 해고 통보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간 내가 해온 사장 노릇을 떠올려보며 유능한 직원에게 해고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반성 중입니다."

"일개 직원의 사표를 우습게 여길 것인가, 무섭게 여길 것인가? 직원의 사표를 자신에 대한 해고 통지서로 받아들일 정도로 자신을 성찰하고 조직을 관찰하면서 나아갈 방향을 끊임없이 통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장의 마인드라고 할 수 있다."

"직원들이 연달아 이직하는 것은 잠수함에서 쓰러진 토끼가 보내는 신호인 것이다. 간과하거나 무시했다가는 남은 사람들 모두 질식사하기 십상이다." 그 책은 직원 사직 문제를 엄중하게 이야기합니다.

사장이 직원을 붙잡기 위해 "내 곁에 있어주"를 노래 부르는 것이나 직원이 사표를 내면 잠수함의 토끼 신호로 여기는 것이나 모두 회사가 건강하고 사장이 직원에게 애정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무서운 것은 사장이 직원 사표에 대해 무덤덤한 것입니다. 서서히 이렇게 변해가는 저 자신을 다잡을 필요를 느낍니다. 직원들에게 직간접 신호로 내 곁에 있어 달라고 수시로 외쳐야 하고, 그래도 떠난다면 잠수함에 산소가 부족해지고 있음을 깨달아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이번 주 다시 한번 김성회 소장의 [사장의 고독력]을 읽어보려 합니다. 그 책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고독, 그것은 사장의 숙명이다."

저도 그 숙명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0.7.13.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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