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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번째 편지 - 우리는 타인을 제대로 판단하고 있는가?

 

주말에 무엇을 할까 궁리하다가 얼마 전 김영사 고세규 대표가 보내 준 [말콤 글래드웰]의 [타인의 해석]을 집어 들었습니다. 저자가 베스트셀러 [블링크]와 [아웃라이어]를 쓴 작가이고 주제가 타인을 다루었기에 호기심에 몇 장을 읽다가 다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낯선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쉽게 알 수 없다."라는 명제를 여러 가지 사례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30년을 검사 생활, 10년을 변호사 생활을 한 저는 매일 낯선 사람을 만나 왔습니다.

검사 시절 제 하루 일과는 낯선 사람들이 진실을 이야기하는지 거짓을 이야기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일을 [판단력]으로 잘 해낼 수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 위에서 그 직책을 수행하였습니다. 많은 판사, 검사들이 오늘도 같은 입장에서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를 하면서는 검사 시절과는 달리 당사자가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솔직하게 다 털어놓을 것이라는 [믿음] 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저는 한편이니까요. 검사 시절 [판단력]과 변호사 시절 [믿음]은 얼마나 확실한 것일까요? 말콤 글래드웰은 이 문제에 의문을 던집니다.

"하버드 경제학자 센딜 멀레이너선 팀은 2008년~2013년 뉴욕 법원 형사사건에 출두한 피의자 55만 4,689명의 기록을 취합했다. 그 가운데 판사들이 보석 석방한 수는 40만 명이 넘었다.

그들은 AI 시스템을 만들어 그 사건들의 피고인 인적 사항과 범죄사실을 집어넣은 후 보석 석방 대상자 40만 명을 추출하였다. 어느 명단이 보석 기간 중 더 적은 범죄를 저지르고 재판에 출석할 확률이 높았을까?

컴퓨터가 뽑은 40만 명이 판사들이 선택한 40만 명 보다 보석 기간에 범죄를 저지른 확률이 25%나 낮았다. 기계가 인간을 압도한 것이다."

판사는 기록도 보고 피고인을 직접 만나 질문도 하고 그의 표정도 읽었습니다. 컴퓨터는 인적 사항과 범죄사실만 가지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어떻게 AI 알고리즘에서 고위험군으로 표시된 피의자의 다수를 판사는 저위험군으로 간주한 것일까요?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낯선 이를 직접 만나면 만나지 않는 것보다 그 사람을 파악하는데 오히려 방해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라는 우리 상식에 반하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심리학자 팀 러바인은 거짓말쟁이 22명과 진실을 말하는 사람 22명의 동영상 44편을 보고 거짓말쟁이를 맞추는 실험을 하였다. 참석자의 평균 56%가 거짓말쟁이를 맞혔다. 다른 심리학자들도 비슷한 실험을 하였다. 그들 전부의 평균은 54%에 불과하였다. 경찰관, 판사, 심리치료사, CIA 간부들까지도. 모두가 다. 왜 그럴까?"

저는 당황스러웠습니다. 검사 시절 매일 제 앞의 사람이 [거짓말쟁이] 인지, [진실을 말하는 사람]인지 가려냈습니다. 저는 그 업무를 잘 수행하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정확도는 불과 54%였다는 말인가요. 팀 러바인의 답은 "진실 기본값 이론 Truth-Default Theory"입니다.

"우리는 진실을 말하는 학생을 맞히는 데는 [우연]보다 유능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학생을 제대로 맞히는 데는 [우연]보다 훨씬 무능하다. 무슨 말이냐 하면 면담 시에 진실을 말하는 이를 잘 알아보고 거짓말하는 이를 몰라본다는 것이다. 우리는 [진실을 기본값]으로 갖고 있다. 우리의 가정은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들이 정직하다는 것이다."

그는 진실 기본값 모드에서 벗어나려면 [계기]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처음 품은 가정에 어긋나는 증거가 결정적인 것으로 밝혀질 때만 비로소 진실 기본값 모드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우리는 과학자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사실인지 허위인지 증거를 모은 뒤에 결론에 이르지 않는다. 우리는 정반대로 행동한다. 일단 믿고 본다. 그리고 의심과 걱정이 점점 커져서 해명되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믿는 것을 멈춘다."

왜 인간은 이렇게 어리석게 행동할까요?

"팀 러바인은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은 거짓말을 탐지하는 복잡하고 정확한 기술을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자기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꼼꼼히 살펴보느라 시간을 들이는 것은 아무 이점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이점은 낯선 이가 진실하다고 가정하는 데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믿지 못할 때까지 언제나 그들을 믿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이 책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특별한 처방을 내놓지는 못합니다. 그저 이렇게 이 책을 마무리합니다.

"우리 보통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의 심중을 투시력으로 꿰뚫어 보는 완벽한 기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제]와 [겸손]이다. 낯선 이를 파악하기 위한 단서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단서들을 제대로 처리하려면 [관심]과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지난 몇십 년간 훗날 거짓말로 밝혀진 수많은 괴담에 소용돌이쳐왔습니다. 지금도 각 진영이 만든 아젠다에 맹목적으로 열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과연 낯선 이가 만든 그 아젠다를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판별할 능력이 있는 것일까요?

우리 인간은 안타깝게도 그 판별 능력이 매우 떨어집니다. 4월 15일 대한민국 국민은 또다시 국가의 운명을 가를 [타인]에 대한 판별을 하여야 합니다. 국회의원 후보자인 [타인]이 과연 거짓말쟁이인지 진실을 말하는 사람인지 가려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정확도는 54%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선출하고는 늘 후회한 것입니다.

54%를 60%, 70%, 80%로 끌어올리려면 러시아 민담에 나오는 바보 성자, 유로지비 [Yurodivy]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 성자는 불편한 진실을 거리낌 없이 내뱉고 우리가 당연시하는 것들에 의문을 던집니다.

바보 성자는 성모마리아 성화를 보고 악마의 작품이라고 단언합니다. 이단적 주장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그림에 돌멩이를 던지자 겉면이 갈라지면서 사탄의 얼굴이 드러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0.3.16.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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