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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9번째 편지 - [힘센 봄]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강제 칩거의 시간을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가요? 지난 주말에도 모든 약속이 취소되어 집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토요일은 그럭저럭 지냈는데 일요일이 되자 답답하여 아내에게 드라이브나 가자고 했습니다.

어제 아파트 화단에 개나리꽃이 핀 것을 보고 봄이 왔음을 직감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마 야외에는 더 많은 꽃들이 우리 몰래 피어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얼룩진 이 지긋지긋한 겨울을 떨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발길을 재촉합니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법무부 근무 시절 자주 갔던 의왕시에 있는 백운저수지를 찾기로 했습니다. 집에서 불과 15분. 그러나 정말 오랜만에 그곳을 찾았습니다. 백운저수지에 도착해 보니 예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코로나19 사태로 카페나 식당이 한가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주차할 공간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답답한 시민들이 더 이상 집에 있지 못하고 야외로 나온 모양입니다. 저수지 주변에 설치된 데크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의 모습도 꽤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주차장을 찾지 못하고 갔던 길을 다시 돌려 나오는데 이정표 하나가 눈에 띕니다. [바라산 자연휴양림 1.5Km]. 서울 근교에 자연휴양림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바라산이라는 이름도 처음 들었고요.

그러나 봄기운을 느끼려면 사람들이 북적대는 백운저수지보다는 바라산 자연휴양림이 제격일 것 같아 운전대를 그쪽으로 돌렸습니다. 한 3분쯤 달렸을까요. 산자락에 지어진 새 아파트 군락이 끝나는 곳에 떡하니 차량 정지 간판이 서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3월 1일부터 자연휴양림의 모든 시설을 폐쇄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더 이상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여 걸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200미터쯤 걸으니 산으로 진입하는 데크 산책로가 나옵니다. 여기저기 데크길을 많이 만들어 놓았네요. 산책하기에 적당한 길을 30분가량 걸었습니다.

야영장도 있고 자연학습장도 있고 이런저런 시설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러나 봄꽃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봄기운만 있을 뿐입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은 겨울 그 자체인데 공기가 봄입니다. 바람이 봄입니다. 느낌이 봄입니다.

어느 시인은 이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아직 춥다고 바스락거리며 모여드는 낙엽 비집고 빼꼼히 고개 내미는 힘센 봄." 우리 모두가 지난겨울 그토록 기다린 것은 바로 이 [힘센 봄]입니다.

코로나19도 물리치고, 우리네 얼은 가슴도 녹이고, 절단난 서민 경제도 부활시키는 그 [힘센 봄]을 어제 만난 것입니다. 이제 그 [힘센 봄]은 더 이상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싹을 틔우고 꽃봉오리를 머금을 것입니다.

데크 산책로를 벗어나 자연휴양림을 내려오는 아스팔트 길에서는 [힘센 봄]이 햇살을 타고 뺨에 와닿습니다. 완연한 봄입니다. 목도리, 마스크, 겉옷, 하나하나 [힘센 봄]은 벗겨 버립니다.

봄 햇살은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더니 몇 년 전 찾았던 구례 산수유 축제의 추억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얼른 월요편지를 찾아봅니다. 추억을 반추하기에는 월요편지가 제격입니다. 2016년 3월 21일 자 월요편지는 그때의 모습을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산수유 마을 입구에 다다랐습니다. 마을 전체가 산수유나무 천지입니다. 반기는 사람은 없고 노란 산수유만 객을 맞이합니다. 여기도 산수유 저기도 산수유. 산수유나무는 더디게 자란다고 했습니다. 키도 크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 키 한길 반 정도. 눈높이가 죄다 노란색입니다.

마을의 집들은 낡고 초라했지만 노란 산수유가 리모델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계절 이 마을은 자연의 축복입니다. 산비탈 마을 안에 산수유 밭이 있습니다. 그 밭 속에 들어서니 보이는 것은 온통 산수유꽃뿐입니다.

집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동백꽃 나무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산수유의 노란색에 비하면 그저 그렇습니다. 동백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립니다. 워낙 산수유가 떼 지어 있어 동백 한 그루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산수유를 오래 보고 있으니 병아리도 생각나고 노란색 교복, 노란색 가방, 노란색 모자를 갖춰 입은 유치원생도 생각납니다. 모두 이런 느낌입니다. 앳되고 여리고 보호해 주고 싶은 그런 느낌말입니다. 산수유에 취해 얼마를 있었는지 모릅니다. 선경을 다녀온 것 같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노란 산수유를 한반도 천지에 뿌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코로나19로 힘든 대한민국에 희망과 미소를 보내 주고 싶습니다.

비록 아직은 봄기운뿐이지만 얼마 되지 않아 대한민국 전역은 봄꽃들로 뒤덮일 것입니다. 우리네 마음은 강퍅하여도 계절은 어김없이 겨울을 밀어내고 봄으로 온 땅을 채울 것입니다. [힘센 봄]은 남도의 봄을 서울로 끌어올려 서울의 봄을 만들어 주겠지요. 꽃은 비록 못 만났지만 [힘센 봄]을 만나고 일요 나들이는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조선일보를 펼쳐 드니 매화꽃이 핀 마을 전경 사진이 [무심한 듯 꽃은 피고… 마스크 쓴 춘심]이라는 제목과 함께 1면에 커다랗게 실려 있었습니다.

"8일 전남 광양시 다압면 매화마을에서 시민들이 꽃 구경하고 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하며 한 달 이상 시민들의 야외 활동이 끊겼으나 봄기운이 찾아오며 밖으로 나서는 이가 많아지고 있다."

남도에는 봄이 정말 찾아온 모양입니다. 서울에도 봄은 멀지 않았습니다. 기지개를 펴고 봄 맞을 준비를 하고 싶은 기분 좋은 월요일 아침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0.3.9.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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