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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번째 편지 - 영화 [기생충]을 보셨나요?

 

요즘 최고의 화제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4개 부문 아카데미상을 받은 사실일 것입니다. 저는 사실 [기생충]을 보지 않았습니다. [기생충]이 상영된 지 꽤 되었는데, 보아야 한다는 문화적 의무감과 보기 두려워하는 마음이 매번 충돌하여 후자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희소식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우연히 지난주 작은 모임에서 [기생충]에 대한 짧은 평론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모임에 유명한 영화평론가 심영섭 교수가 계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심 교수께서 [기생충]을 어떻게 해설하는지 몹시 궁금하였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은 저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심 교수께서 작은 모임에서 너무 편안하게 즉석에서 한 평론이라 이를 공개하는 것이 적절한지 다소 고민하였지만 너무 감동적이라 심 교수의 양해를 얻어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그 평론을 녹음한 분이 있어 녹취가 가능했습니다.

“멀리 뛸수록 두려움은 우리를 찾기 위해 더 빨리 뛴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의 사회적 현상을 보고 제가 느낀 개념이에요. 사람들이 너무 두려워해요. 두려움은 중요한 감정이죠. 저는 [기생충]에도 그것이 있다고 봐요.

빈부격차는 어떤 두려움을 일으켜요. 사람들은 사회 계층의 꼬리 칸에 있을까 봐 두렵고, 맨 앞 칸에 있는 사람은 다시 꼬리로 떨어질까 봐 두렵죠. 기생충은 바로 그런 것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어필하고 있는 거예요.

마케팅적 관점에서 보면 영화는 천재들의 놀이터예요. 많은 평범한 감독들이 돈이 되는 영화를 만들 때, 아주 특별한 몇몇 천재 감독들은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고 또 돈도 벌죠. 모든 감독들의 꿈이기도 해요. 하지만 그것은 이룰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것들은 굉장히 기괴하면서도 현실적이어야 돼요. 이것이 중요해요. [기생충] 안에 있는 판타지는 섬뜩하지만 분량은 적어요. 오히려 많이 다루고 있는 건, 어떤 현실의 기괴한 조합이죠. 짜파구리 같은 것이 대표적이에요.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합치지만 그 안에 한우라는 요소를 집어넣으면 되게 기이해지는 거죠.

이런 식으로 우리 안에 있는 어떤 일상들을 기이하게 조합하는 뛰어난 능력이 봉준호 감독한테는 있어요. 여러 감독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점점 자기를 드러내지만 결국 봉준호 감독만이 점점 더 발전해 가고 있는 그런 특징이 있어요.

그는 흡수적이고 균형감각이 있고 그러면서 판타지 한 스푼도 갖고 있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왜 이 영화가 상을 받고 난리이냐고 이야기를 하는데요.

첫째 스토리 게임에서 완벽히 완승을 한 거예요. 영화의 가장 큰 흡입력은 스토리에 있어요. 일반 사람들은 영화를 문학이라고 생각하거나 연극으로 생각해요. 영화로 잘 생각을 못 해요. 영화의 비극이기도 하거든요.

어찌 됐든 스토리에서 일단은 완승을 해야 돼요. 이 얘기는 무슨 뜻이냐 하면, 수천 년 동안 만들어지고 있는 각종 스토리와 비교해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야 되는 거예요. 그것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예요. 그런데 봉준호 감독이 그걸 해낸 거죠.

이번 스토리의 가장 중요한 건, 부자와 빈자의 게임이 아니에요. 가난한 자와 더 가난한 자의 더 치열한 생존 게임이죠. [기생충]은 부자에 기생하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의 자괴적 감정을 반영하지만 또한 부자가 대단히 똑똑하지만 순진한 구석이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요.

그리고 우리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안도감을 제공하죠. 사실은 부자와 빈자의 게임보다는 더 치열한 것은 빈자와 더 빈자의 게임이죠. 그런 것들이 우리를 훨씬 더 슬프게 하고 또 그러면서도 세계를 조금 더 정확하게 비추는 거울같이 느끼게 하죠.

진짜 웃긴 건 뭐냐 면요. 한국의 많은 영화배우들이 글로벌 스타가 되려고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하는데 결국은 대한민국에 있겠다고 결심한 송강호가 글로벌 스타가 되었다는 거예요.

무슨 얘기인지 아시죠? 우리는 대한민국을 떠나서는 안 돼요. 로컬 한 것은 글로벌한 것이에요. 글로벌한 것은 진부해질 수 있고 전형적이에요. 하지만 로컬과 글로벌이 멋스럽게 만나면 정말 전 세계를 휘어잡을 수 있게 되죠.

그러면서도 영화는 건축이에요. 정말 좋은 감독은 시간과 공간에 능하죠. 이 영화 속에는 한국 영화의 위대한 전통이 숨어 있어요. 예를 들어 지하실에 들어간 가정부가 자기 남편을 발견하고 갑자기 젖병을 꺼내서 남편을 먹이는 장면이 있죠? 그것은 김기영 감독의 [육식동물]에 그대로 나와요.

봉준호 감독은 좋은 의미에서 음흉하고 변태적이에요. 상상력을 잘못 발휘하여 현실과 판타지를 혼동하면 범죄자가 되지만, 봉준호 감독은 한국 영화의 전통 안에서 그 변태성을 가지고 더 기괴하고 멋들어진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어요.

영화평론가는 자신이 발견하는 영화의 역사가 있어요. 시사회 때 딱 앉아서 두 시간을 딱 보면 ‘아! 이 사람은 역사가 되겠구나’ 하는 순간이 있어요.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를 봤을 때는 그냥 특별하다는 생각을 했고, [살인의 추억]은 잘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지만, [기생충]을 봤을 때는 이제 거장이고, 이 거장은 압도적인 것이고 전 세계 영화 역사에 남겠구나 하는 어떤 그런 대단한 전율 같은 것이 있었는데 결국 그것이 맞았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죠.

그런 식의 어떤 황홀한 예감을 안겨준 한국 영화의 저력과 봉준호 감독에게 감사드립니다.”

기생충에 대한 영화 평론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저는 [기생충]의 예고편은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기생충]은 보지 못했습니다. 무엇이 저를 주저하게 만드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막연한 두려움이 심리적 저항선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멀리 뛸수록 두려움은 우리를 찾기 위해 더 빨리 뛴다.”라는 영화평론가의 말처럼 두려움은 도망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조만간 [기생충]과 마주할 것입니다. 그때는 위 평론을 곱씹으며 영화를 감상하게 되겠지요. 어느 영화 하나를 보는데 이리 주저해 보기는 처음입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어떤 마력을 지니고 있는 것 아닐까요?

영화 [기생충]을 보셨나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0.2.17.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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