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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번째 편지 - 화를 다스리는 90초의 힘

 

지난주는 구정이라는 핑계를 대고 오랜만에 월요편지를 쉬었습니다. 매주 하는 습관을 한 주 쉬고 나니 마음이 불편합니다.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월요편지를 다시 씁니다.

어제저녁 가족들과 오랜만에 드라마를 보다가 뭔가 먹고 싶어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냉장고 문 낮은 칸에 넣어둔 키 큰 플라스틱 물병이 떨어져 발을 찍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눈에서 불이 나고 아팠습니다. 그 순간 물병을 넣어둔 아내에게 화가 나 험한 말을 내뱉었습니다.

이때 옆에 있던 딸아이가 외쳤습니다. "아빠 90초, 90초를 생각하세요." 저는 입을 다물고 딸아이가 이야기한 90초를 견뎠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격한 감정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보던 드라마를 계속 볼 수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또 90초는 무엇일까요?

얼마 전 '질 볼트 테일러'의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2018년 6월 25일 522번째 월요편지 '내가 명상에 참석하는 이유'에서 그녀를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TED 강연을 보고 감동을 받아 소개해 드렸는데 이번에 그녀의 책을 읽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뇌연구와 강의를 하던 뇌과학자였습니다. 37살이던 1996년 12월 10일 왼쪽 뇌의 선천성 혈관 기형이 터져 대출혈이 일어났습니다. 좌뇌가 기능을 상실한 것입니다.

"4시간 동안 나는 호기심 많은 뇌신경 해부학자의 시선으로 나의 뇌가 정보처리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점심때가 되자 걷거나 말할 수 없었고, 읽고 쓰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내 삶의 모든 기억이 사라졌다. 몸을 작게 움츠린 나는 정신이 죽음에 굴복하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을 묘사한 책 내용입니다.

대수술 끝에 다시 깨어난 그녀는 8년간 회복의 시간을 거치며 걷기, 말하기, 읽고 쓰기 등 한 단계씩 뇌의 기능을 되찾았습니다. 그로부터 10년 만인 2006년 자신이 겪은 일들을 [MY STROKE OF INSIGHT]라는 책으로 발표하고, 2008년 TED에서 감동적인 강연을 합니다.

제가 읽은 책은 그 책의 번역서입니다. 그 책에는 놀랄 내용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중 제 눈길을 끈 부분은 [뇌를 다스리는 법]입니다.

"가령 '분노'라는 감정은 자동으로 유발되도록 설계된 반응이다. 어떤 계기로 인해 내가 분비한 화학물질이 몸에 차오르고 우리는 생리적 반응을 겪게 된다. 최초의 자극이 있고 90초 안에 분노를 구성하는 화학성분이 혈류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면, 우리의 자동반응은 끝이 난다."

"그런데 90초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화가 나 있다면, 그것은 그 회로가 계속해서 돌도록 스스로 의식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우리는 신경회로에 다시 접속할지, 아니면 감정을 스쳐 지나가는 단순한 생리현상으로 사라지게 할지 선택하는 것이다."

저는 이 대목을 읽고 뇌 기능은 우리가 알던 상식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경험상 일단 화가 나면 그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상당 기간 지속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통증'이라는 [생리 현상]이 '화'라는 [감정 상태]를 만들고 이어 [과거 경험]과 연계되어 유사한 과거 사례가 생각나면서 우리는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을 향해 말의 따발총을 쏘아 대기 시작합니다.

질 볼트 테일러는 특정 사건, 예를 들면 어제 물병이 떨어져 발에 통증이 유발되는 사건이 화라는 감정을 유발하는 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자동반응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 자동반응은 지속기간이 90초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90초 후에는 자동반응이 사라지고 우리가 스스로 반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동 반응에 이어 과거 경험을 끄집어내어 아내에게 화풀이하는 반응을 보일지, 아니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90초 이전으로 돌아가는 반응을 보일지는 우리의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과거 무수히 많이 전자의 선택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별거 아닌 일이 부부싸움으로 확전 되고, 며칠 씩 냉전으로 이어졌지요. 저는 그 책임은 당연히 그런 상황을 유발한 쪽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질 볼트 테일러는 반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책임감이란 특정 순간 감각계로 들어오는 자극에 어떻게 반응할지 선택하는 능력이다. 즉, 책임감은 (responsibility) 반응하는 (response) 능력 (ability)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물병이 떨어져 통증이 유발된 사건"의 책임은 당연히 아내에게 있지만, 자동반응 90초의 지속기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화를 내고 있다면 그 반응은 저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그녀의 책에서 주목한 이 대목을 제 삶에 적용하도록 '90초 룰'이라는 것을 만들고 이를 가족들에게 설명하였습니다. 딸아이는 그래서 저에게 "아빠 90초, 90초를 생각하세요."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이 90초 룰은 제가 해 본 화를 가라앉히는 수많은 방법 중에 가장 효과가 있었습니다. 뇌의 작동방식을 알기 때문에 그 방법에 더 신뢰가 갑니다. 예전에도 화가 나면 1부터 100까지 세라는 말이 있었지만 왜 그런지 원리를 알 수 없었습니다. 단지 경험상 그렇다는 것 정도였습니다.

이번에 보니 그 100까지 세는 것이 바로 90초를 버티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감정에 불편한 일이 생기면 그것이 분노이든 공포이든 90초만 기다려 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에게 말하십시오. "나는 더 이상 90초의 자동반응을 확대재생산 하지 않을 거야.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하던 일을 계속하자."

그러면 분노나 공포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90초가 당신의 인생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0.2.3.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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