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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3번째 편지 - '고전5미닛'에서 만난 [사랑의 힘]

 

매일 아침 반복적으로 하는 일이 있으신가요? 예전부터 매일 아침 일어나면 무슨 일인가를 해 오고 있지만 그때그때 달랐습니다. 그런데 금년 1월 1일부터 한 가지 습관이 생겼습니다.

매일 아침 2편의 '고전5미닛'을 읽고 그중 기억에 남기고 싶은 장면을 캡처하여 정리합니다. '고전5미닛'이란 2015년 8월 10자 월요편지에서 소개 드린 바 있는 고전을 5분간의 영상으로 요약해 놓은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우리가 모두 잘 아는 소설 [데미안]에서 작가 헤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너무나도 유명한 구절입니다.

그러나 [데미안] 소설의 주인공이 '징클라르'라는 모범생임은 이번에 알았습니다. 밝은 세계에서만 살던 그는 어두운 세계를 만나 충격에 빠집니다. 그때 나타난 전학생 데미안, 학창 시절부터 군대 시절까지 오랜 기간 그와 우정을 나누고 징클라르는 깨닫습니다.

"때로는 두려워하고 한때는 부정했지만 결국은 갈구하고 그리워한 내 삶의 중력,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바로 데미안이었다는 것을..."

고전5미닛의 고전 소설들은 '나'의 여러 가지 면을 만화경처럼 보여줍니다. 그 다양한 모습에 저는 어느 날 좌절하기도 하고 어느 날 생기를 얻기도 합니다. 헤세는 이야기합니다. "모든 인간의 삶은 저마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착해야 하고 열심히 일해야 하고 책임을 다해야 하고,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직장인으로 해야 할 역할들을 끊임없이 완수하지만 정작 잊히는 '나'"입니다. 벌레로 변신한 후에도 벌레가 된 자신보다 출장 기차를 놓칠까 봐 걱정합니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나'다운 삶을 개척하려다 사형을 당합니다. "뫼르소가 사형을 당한 이유는 아랍사람을 죽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카뮈의 말을 빌리자면 이 사회가 정한 '게임의 룰'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전5미닛의 해설입니다.

고전 소설의 작가들은 '나'의 추락을 더 극한으로 밀어붙여 끔찍하게 묘사합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일깨운다." 유명한 시, 엘리엇의 [황무지]입니다. 그는 섬뜩한 현실을 잔인하게 묘사합니다.

"현대인들은 하나같이 '삶 속의 죽음'을 살아가고 있는 정신적 불구자들. 조각난 파편을 불완전하게 이은 느낌을 주는 이 시 자체가 불안한 현대 문명 속의 병든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다."

"너무 일찍 세상에 온 비운의 천재"라는 평을 받는 보들레르에 오면 이 탐구는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추악하게 드러납니다.

"우리 뇌수 속엔 '악귀'의 무리가 백만 마리 기생충처럼 와글와글 엉겨 붙어 난리를 치니, 숨 쉴 때마다 '죽음'이 보이지 않는 강물처럼 폐 속으로 콸콸 흘러내린다." 보들레르의 시 [독자에게] 중 한 대목입니다.

"하지만 보들레르는 더러운 흙탕물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듯 존재의 불안과 분열과 비참함에서 삶의 본질을 발견한 것이다."

문명 속의 병든 인간은 어찌하여야 할까요. 고전 소설은 문명을 탈출한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 가지 모습은 문명을 탈출하여 야성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잭 런던은 문명을 벗어나라고 소설 [야성의 부름]에서 외칩니다. 주인공 늑대개 벅은 관습이라는 쇠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 핏속의 야성을 일깨웁니다.

"숲속 깊은 곳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상하리만큼 전율적이고 매혹적인 그 소리를 들으며 그는 모닥불에서 등을 돌리고 숲속으로 달려가야만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는 지금 시간의 자궁 속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정반대로 영화 묵시록의 모티브를 제공한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연]은 문명의 탈출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는 다를 수도 있음을 경고합니다.

"상아 수집은 물론 원주민을 교화시키겠다는 신념으로 밀림에 간 주인공 증기선 선장 '말로'는 기괴한 독재자로 변해 있었다. 아무리 문명인을 자처해도 자제력을 상실하는 순간, 인간은 언제라도 야만과 광기의 존재로 돌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악에 대항할 수 있는 저항력을 타고나지 않았다. 원칙이나 도덕은 한번 세게 흔들면 벗겨질 '누더기'나 바람에 날리는 '왕겨'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는 어찌 살아야 할까요. 고전 소설의 작가들은 그 해답으로 하나같이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의 주인공들은 하루 종일 방황합니다. 율리시스는 호메로스의 소설 오딧세이아의 주인공 오딧세우스의 라틴어 이름입니다.

"오딧세우스가 돌아가려는 집이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는 고향이라면 주인공 블룸이 돌아가는 집은 사랑의 추억만이 쓸쓸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오딧세우스, 블룸 그리고 우리는 모두 '진정한 사랑'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길고 긴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랑 여행자'일지 모른다."

도스토옙스키는 소설 [백야]를 통해 현재의 사랑 못지않게 지나간 사랑도 소중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꼭 함께한 시간에 비례하지는 않는 것, 또 반드시 이루어진 사랑만이 가치 있는 것도 아니다. 청년은 다시 혼자가 되었지만 앞으로의 삶은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를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는 몽상이 아닌 사랑의 기억으로 삶의 고독과 소외를 이겨낼 것이기 때문이다."

헤밍웨이도 소설 [무기여 잘 있어라]에서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죽었지만 그가 이제부터 살아갈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시련과 사랑 속에서 그는 더 깊고 단단해졌기 때문이다."

그간 '고전5미닛'을 읽고 가장 간직하고 싶은 글귀는 바로 [백야]에 대한 해설 일부분입니다.

"사랑의 승자는 '더 많이' 사랑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보석처럼 귀한 사랑의 주인입니다."

고전5미닛을 읽는 아침 습관은 늘 [사랑의 힘]을 깨닫게 해 줍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0.1.20.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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