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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6번째 편지 - 한국 남자 럭비가 만든 기적

 

여러분 혹시 럭비를 아시나요? 럭비가 7인제라는 사실도 아시나요? 지난 11월 24일 남자 7인제 럭비팀이 올림픽 사상 첫 본선 진출권을 획득하여 2020년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다는 뉴스 들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준결승전에서 중국에 0:7로 지고 있다가 7:7 동점을 만들고 연장전에서 12:7로 역전승한 사실과 결승전에서도 홍콩을 상대로 중국전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져 우승했다는 가슴 벅찬 뉴스는 이미 들으셨겠죠.

더러 잘 모르시거나 뉴스를 들었어도 건성으로 들으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저도 이 친구가 없었으면 그랬을 것입니다. 그는 대한럭비협회 회장인 세방그룹 회장 이상웅입니다. 저는 그가 대한럭비협회 회장이라고 해서 기업인들이 쓰는 그저 흔한 감투 중 하나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콧수염을 기르고 다닙니다. 몇 년 전 물었습니다. "콧수염을 기르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 "2015년 우연히 대한럭비협회장을 맡고 외국 럭비 관계자들을 만나 대한럭비협회장이라고 소개하면 번번이 럭비를 했냐고 물어보는 거야.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그들은 하나같이 수염을 기르고 있더라고. 그래서 나도 콧수염을 길렀더니 더 이상 묻지 않더군."

대한럭비협회장 때문에 자신의 스타일까지 바꾸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특이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 정도뿐이었습니다. 그 후 가끔 카톡으로 럭비 소식을 전하곤 하였지만 저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1월 1일 동갑내기 친구들 단톡방에 이상웅 회장이 옛날 유명 골프선수 닉팔도와 같이 찍은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럭비장에서 닉팔도도 만나고]라는 댓글이 붙어 있었습니다.

10월 20일부터 11월 2일까지 일본 12개 도시에서 열린 2019 럭비 월드컵에 참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월드컵에는 한국 남자팀은 출전하지 못했지만, 이 회장은 월드컵 상황을 중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친구들은 강제로 2019 럭비 월드컵에 빨려 들고 있었습니다. 아마 저처럼 럭비에 별 관심이 없는 친구들도 있었겠지만, 이 회장의 럭비 뉴스 카톡 폭탄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첫 번째 사진은 95년 남아공팀이 럭비 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때 주장이었던 프랜시스와 찍은 사진이고, 두 번째 사진은 이번 도쿄 월드컵에서 우승한 남아공팀의 역사상 최초 흑인 주장을 럭비 어워드 행사에서 만나 찍은 사진]

그러고 보니 왕년의 세계적인 럭비 스타나 현재의 세계적인 럭비 스타나 모두 수염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가 콧수염을 기르는 이유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2019 럭비월드컵에서 남아공이 우승한 사실도 그의 중계방송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그가 왜 럭비 소식을 집요하게 전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럭비 소식은 이어졌습니다. 11월 7일 [하나가 되는 순간 우리는 정점으로 간다]라는 슬로건이 적힌 사진을 단톡방에 올렸습니다.

[오늘 진천 국가대표팀 훈련장에 격려 방문을 하였는데 선수들이 이 슬로건을 만들어 붙이고 전의를 불태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 달 11월 23일 24일, 인천에서 2020 도쿄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이 열립니다. 우승국 한나라만 출전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이 카톡부터 예선전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까지 이 회장은 단톡방에 럭비 소식 카톡 폭탄을 집중적으로 투하하였습니다. 친구들을 인천 남동 아시아드 럭비 경기장으로 초대하였지만 다들 사정상 가지 못하고 친구 한 사람만 11월 24일 응원을 하러 가서 경기를 카톡 중계하였습니다. 럭비 뉴스 카톡 폭탄을 투하하는 인간 비행기가 한 대 더 늘어난 셈입니다.

[0:7로 지고 있다가 종료 1분 전 동점, 연장전에서 먼저 득점. 완전 흥미진진. 이 회장 지옥 갔다 옴.] 중국과의 준결승전이 끝나고 응원 간 친구가 보내온 카톡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결승전을 기대하였습니다.

잠시 단톡방이 잠잠하더니 오후 5시 58분 [한국 우승. 7:7에서 연장전 트라이 성공. 지금 막.] 이라는 카톡이 올라왔습니다. 경기장에 간 친구는 이런 카톡도 보내왔습니다. [완전 드라마, 럭비 처음 보는 내 처는 막 울고.] 한 시간이 지나고 이 회장의 카톡이 올라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럭비인들이 하나로 단결하고 혼신의 노력을 해준 데다가 비인기 종목이지만 많은 성원을 해주신 주변의 친구들과 서포터들의 작은 정성 하나하나가 모여 실낱같은 기적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한국국가대표팀 선수들은 영원히 이 감격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카톡을 보고 왜 그가 그토록 단톡방에 럭비 소식을 자주 전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비인기 종목.]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한국 럭비를 보듬고 살피고 아끼는 일은 이 회장의 몫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카톡 한 줄이 팬 한 명을 만들 수 있다는 신념으로 단톡방에 수많은 카톡을 날린 것 같습니다. 그의 이런 정성이 통하여 기적을 만든 것입니다. 우승 이후로 친구들의 축하 메시지가 줄을 이었습니다.

저는 이 회장에게 진심으로 미안했습니다. 그가 외롭게 비인기 종목 럭비에 관심 가져 달라고 외칠 때, 친구로서 동참해 주지 못한 것이 못내 가슴에 걸렸습니다. 이 미안한 마음을 담아 카톡을 보냈습니다.

[럭비 경기장의 텅 빈 관중석을 꽉 채우는 일이 이 회장의 다음 과업인 것 같네. 지금의 열정으로 파이팅하면 조만간 그 꿈도 이루어질 거야. 박세리로 시작한 여자골프, 김은정으로 기억되는 여자 컬링, 이제 이상웅이 기적을 만드는 남자 럭비. 모두 우리 시대의 레전드야. 축하해.]

한국 남자 럭비의 올림픽 진출은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상웅'이라는 사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가 돌파구를 열고, 그의 집요함이 불가능을 기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래서 세상살이가 살만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여 꿈을 꾸고, 미친 듯이 노력하면, 기적이 일어나니까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9.12.2.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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