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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번째 편지 - 존경하는 A 후배님께

존경하는 A 후배님께

 언론을 통해 후배님이 검찰에 사표를 내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고검장이나 검사장이던 후배 여러분이 함께 사표를 내셨더군요. 처음에는 그 소식을 듣고 일순간 놀랐지만 어찌보면 예정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아직 젊고 국가와 우리 사회를 위해 기여할 것이 많은데 이렇게 떠내보내야 하는가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사랑하는 후배님

 아마도 막막하고 허전하실 것입니다. 검찰에서는 승승장구하고 고위직까지 올라갔지만 민간세상에서 잘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적지 않으실 것입니다. 저도 그런 시절을 거쳤습니다. 그때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약 30여분의 검찰 출신 변호사님들께 일부는 만나서 일부는 전화로 자문을 구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때 훗날 저와 같은 처지의 후배들에게 사표를 내고 변호사로 변신하여 사는 초기 3개월동안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어떤 고민을 하게 되는지 꼭 알려 드리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2011.8.3 제가 민간인이 된 첫날 가장 궁금하였던 것이 그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 고민의 기록을 월요편지에 남기기로 하였습니다. 저도 세월이 지나면 아프고 괴로웠던 기억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바꾸고 말테니까요.

 후배님께 정확한 조언을 드리려면 제가 퇴임한 이후 쓴 월요편지를 다시 읽고 오늘의 관점에서 그 글을 촌평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이런 방식을 몇가지 조언을 드리려 합니다.

 2011.8.8자 월요편지 ‘퇴직으로 얻은 자유와 잃은 안정 사이에’의 한 대목입니다. “어떤 분들은 장기 해외여행을 갔다 오라고 권하시기도 하고 국내의 조용한 곳에 가서 쉬다가 오라고도 하십니다. 맞는 말씀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살아보렵니다. 여행은 그 후에도 가능하니까요.”

 이 편지에 대해 저보다 2년 전에 퇴직하신 박철준 전 검사장님께서는 댓글을 통해 ‘경험에 의하면 변호사 활동이 시작되면 의뢰인등과 관계에서 해외여행이 쉽지 않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털어 버리고 오늘까지 묵묵히 함께 해온 가족과 오붓하게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정말 좋았던 것 같습니다.’라고 상당기간의 여행을 추천하셨는데 저는 하지 못하였습니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가면 최소한 한달은 해외여행을 하 겠습니다. 아니 하고야 말 것입니다. 가능하면 2개월쯤 하고 싶습니다. 공직 30년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새로운 마음과 육체로 민간세상에 들어서야 하는데 저는 하지 못하였습니다. 후배님, 앞으로 수십년을 살게 될 민간 세상에 들어서면서 목욕재계를 꼭 하시기 바랍니다. 방법으로는 낯선 곳에서 새로운 체험을 하는 여행이 가장 좋습니다.

 2012.8.16자 월요편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고 지내시나요.’의 한 대목입니다. “지난 13일간 한 번도 법무연수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너무할 정도로 잊어버리고 지냈습니다. 저는 속으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법무연수원의 추억에 사로잡혀 계속 과거를 그리워한다면 앞으로 나갈 수 없었을 테니까요.”

 정말 지금 와서 생각하여도 이런 자세는 옳은 것 같습니다. ‘1루에 발을 붙이고는 2루로 도루할 수 없다.’는 버크 헤지스가 쓴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과거의 영화에서 빨리 벗어나는 일 후배님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님들의 사무실을 가보면 검찰 시절의 명패를 쭉 진열해 놓은 것을 가끔 봅니다. 향후 20년간의 비지니스를 위해서는 우리들의 화려하였던 과거를 말해주는 자랑스러운 명패를 다락방에 넣어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2011.8.22자 월요편지 ‘슈퍼 갑이 을이 되면서 깨달은 것’의 한 대목입니다. “저는 며칠을 지내며 네 가지를 생각해 냈습니다. 첫째 모든 연락에 대해 바로 응답을 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둘째 누군가가 연락을 주셔서 언제 한번 만나자고 하시면 바로 날짜를 잡기로 하였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셋째 모임에 가서 자리를 앉을 때 상석을 포기하고 끄트머리에 앉기로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약속은 15분전에 도착하기로 마음을 정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이 네가지 ‘을’의 법칙은 잘 정한 것 같습니다. 슈퍼 갑이었던 제가 을이 된지 불과 20일 만에 어떻게 ‘을’의 법칙을 만들었는지 신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네가지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살아보시면 세상이 꼭 그렇게 냉혹하고 쌀쌀맞은 것만은 아닙니다. 좋은 분들이 많고 재미난 일이 무수히 많습니다.

 2011.9.5자 월요편지 ‘여러분은 착륙을 준비하시나요? 이륙을 꿈꾸시나요?’의 한 대목입니다. “저는 홀로서기를 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일상을 제 스스로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먼저 주민센터를 방문하였습니다. (중략) 이번에는 은행을 가보았습니다. (중략) 그러나 이런 모든 일들이 생활 속의 평범한 일들이었습니다. 젊은 날에는 잘하던 것들을 세월이 흐르며 더 이상 할 필요성이 없어 잊어버리고 퇴화된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만 고쳐먹으면 별로 어렵지 않은 일들이었습니다. 압축적응을 해나가고 있는 셈입니다.”

 후배님 지금 드리고 있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으시나요. 저는 1년 반이 지난 지금 읽어 보아도 너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옳고 그름을 너무 따지지 마시고 제가 권하는 것을 속는 셈치고 따라 해보십시오. 하루 빨리 민간인이 됩니다. 당장 오늘 은행부터 가보십시오. 우리는 그 동안 현장에서 너무 떨어져 살고 있었습니다. 모든 해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2011.10.10자 월요편지 ‘창업한 사람에게 필요한 이런저런 이야기’의 한 대목입니다. “저의 창업을 축하하기 위해 들러주신 많은 분들 중에 기업을 하시는 분들이 저를 위해 여러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첫째 절약에 대해 말씀을 주셨습니다. 법률사무소나 법무법인이 힘들어지는 이유가 고정비용이 많아지고 인력이 지나치게 많다보니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곤경에 처하고 만다고 하시면서 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고언 하여 주셨습니다. (중략) 두 번째는 열정에 대해 이야기들 하셨습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열정이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흐려지고 무덤덤해지니 이를 경계하라고들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사건 하나 사건 당사자 한 명에게 모든 정성을 쏟지만 사건이 늘고 시간이 지나면 그것을 유지하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말도 같이 해 주셨습니다.”

 이 두가지 조언은 오늘 다시 읽어도 명언입니다. 이 편지를 다시 읽으며 제 가슴이 뜨끔하였습니다. 절약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고검장까지 지낸 사람이 조잡하게 어떻게 천원 만원을 따지냐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런 경향이 일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저에게 이런 고언을 해 주시더군요. ‘꽃피는 봄날이 생각만큼 길지 않음을 늘 기억하라.’ 열정은 아직까지 식지 않은 듯하지만 열정을 부하들에게 전하는 일에는 다소 소홀하였던 것 같습니다. 저 혼자 원맨쇼를 할 수는 없으니까요?

 오늘의 편지는 이쯤에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이제 퇴임식을 하고 민간인이 된지 며칠 되지도 않은 분에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해드릴 말씀이 너무나도 많지만 차차 만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직은 많은 이야기를 소화하기에는 여전히 검사장, 고검장이실테니까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3.4.8.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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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동안 쓴 월요편지를 묶어 펴낸 오늘의 행복을 오늘 알 수 있다면’(21세기 북스 출판)에 대해 여러분들이 큰 관심을 보이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세는 좋은 곳에 쓰려고 고민 중입니다. 계속 응원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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