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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5번째 편지 - 단풍을 바라보면서

 

올해도 어김없이 온 산에 단풍이 들었습니다. 단풍이 드는 계절이 되면 머리에 떠오르는 그림은 빨강, 노랑, 갈색으로 어우러진 만산홍엽입니다. 젊은 날 언젠가 가 보았던 내장산 단풍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금년에도 그런 단풍을 몇 번 보았습니다. 일부러 단풍 구경을 가지는 못하였지만 골프장에 가면 저절로 단풍을 만나게 되고, 특별히 단풍이 예쁜 골프장이 있어 그 단풍을 보면 핸드폰에 저절로 손이 가곤 했습니다.

그때는 새빨간 단풍나무와 샛노란 은행나무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래 단풍은 역시 이렇게 색깔이 짠하게 고와야지. 흐리멍덩하게 빨갛거나 애매하게 노란 색깔은 제맛이 나지 않아. 멋있다 멋있어."

지난주 화요일 새벽 6시 미국 출장을 마치고 인천공항을 빠져나오는데 몸이 오싹할 정도로 추위가 느껴졌습니다. "어허 다시 라스베가스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추워졌네. 열흘 사이에 완전히 겨울이 온 것 같아. 이제 단풍은 끝이겠네." 혼잣말을 하며 서울로 진입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부터 어제까지 만난 단풍은 저에게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찬바람 속에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는 단풍잎들은 따뜻한 날씨 속에 만난 그 단풍이 아니었습니다.

단풍은 빨간색, 노란색, 갈색이 어우러져 여전히 곱디 고왔지만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단풍은 더 이상 찬란하지 않았습니다. 단풍은 더 이상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단풍은 서늘하였고 처연하였습니다. 단풍은 가을을 붙잡고 겨울을 막으려는 단호한 의지를 몸으로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문득, 왜 단풍이 드는지 그 원리가 궁금해졌습니다. 육십 평생을 살며 한 번도 그 원리가 궁금한 적이 없었지만 올해는 달랐습니다. 처연해 보이는 단풍이 저를 그리로 이끌었는지도 모릅니다.

가을이 되면서 날씨가 추워지고 에너지 흡수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나무는 나뭇잎으로 가는 물과 영양분이 차단되어 엽록소 생산을 중단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나무는 엽록소의 푸른빛을 잃고 단풍이 들게 됩니다.

단풍은 계절의 흐름에 자신을 맞추는 나무의 몸부림입니다. 단풍이 계절과 맞서고 있어 '서늘'하게 느껴지고 계절에 순응하기 때문에 '처연'하게 보였나 봅니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를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도종환의 [단풍드는 날]입니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 바로 이 순간이 모든 종교의 기본이 되는 [케노시스(Kenosis), 자기 버리기]의 순간입니다. 그 순간 인간은 가장 아름다워집니다. 그래서 도종환은 그 순간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고 노래했습니다.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그런 것들을 아낌없이 버릴 수 있을 때, 그런 결심을 할 때, 한 사람의 인생은 전혀 다른 경지로 올라서게 됩니다. 우리는 그런 인물을 역사상 수많이 보았고 주위에서 그런 모습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도종환은 그런 순간, 나무가 낙엽을 준비하며 단풍으로 물드는 순간,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생의 절정을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누구는 돈에서, 어떤 이는 권력에서, 또 다른 그는 명예에서 절정에 서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경쟁합니다. 이 경쟁에서 이겨 생의 절정에 선 사람을 우리는 영웅이라 부릅니다. 우리 모두 간절히 이 영웅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카렌 암스트롱은 그의 명저 [축의 시대]에서 영웅시대의 전형인 그리스 영웅에 대해 비판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영웅은 명예와 지위의 문제에 시달리는 자기중심적인 인간이며, 시끄럽게 자신의 공적을 떠벌리고, 자신의 존엄을 높이기 위해 전체의 이익을 언제든지 희생한다. 케노시스, 자기 버리기는 없다."

저도 젊은 날 영웅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그 꿈을 버리지 않고 있을 것입니다. 영웅이 되는 순간이 생의 절정이라고 생각했고,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습니다. 계급이 올라갈 때마다 흥분되었고, 큰 보직을 맡을 때마다 짜릿했습니다. 영웅이 되는 생의 절정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단풍은 달리 말합니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는 순간이 '생의 절정'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배워오고 믿어온 생의 절정과는 전혀 다른 생의 절정입니다.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몸으로 느낍니다. 마음으로 깨닫습니다. 제 믿음에 금이 가고 있다는 것을.

단풍도 아는 사실을 저는 몰랐습니다. 단풍이 그토록 오래도록 몸으로 가르쳐 주고 있던 사실을 저는 몰랐습니다. 이 가을, 찬 서리 속에 처절하게 자신의 마지막 빛깔을 드러내고 단풍은 또 이야기합니다.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은 자기를 버리는 날이라고.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9.11.25.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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