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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번째 편지 - "이번 일도 언젠가는 추억이 될 것이오."

 

저는 인생연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월요편지를 10년간 쓰고 얻은 것이 있다면 "인생연구가 취미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공부하는 학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살아가고 있는 [인생]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왜 저는 이렇게 살고 그는 저렇게 사는지. 인생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인지, 앞으로 수십 년을 더 산다면 나는 그 기간 동안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그렇게 산 인생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혹은 아무 소용도 없는지 그렇다면 왜 그렇게 오래 살려고 기를 쓰는 것인지. 궁금한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인생에 대해 저만 궁금해하는 것일까요.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도 인생에 대해 궁금해요." 빙긋이 웃기만 합니다. "다른 사람도 인생에 대해 궁금해할까요." 제 질문에 아내는 이렇게 답합니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당신 같이 그렇게 궁금해하지는 않을 거예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튼 저는 북미대화보다 제 인생이 궁금합니다.

제가 본받아야 하는 인생은 누구의 인생인지. 좋은 인생에는 어떤 요소가 필요한지. 근본적으로 잘 산 인생과 그렇지 않은 인생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다들 사는 것이 힘들다고 하면서도 아등바등 살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아이들에게는 어떤 인생을 살라고 이야기하여야 하는지 과연 그 말은 맞는 것인지.

이렇게 수많은 의문을 품고 매일매일 살고 있습니다. 책도 읽고 강의도 듣고, 주말이면 교회에서 목사님 설교도 듣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하나 시원하게 답을 일러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부분부분은 다 맞는 말이지만 결국 인생에 대한 종합적인 생각은 자신이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인생연구를 위해 고전을 공부합니다. 최소 몇백 년은 검증이 된 책이니까요. 연세대 김상근 교수님과 같이 고전을 공부한 지 2년이 되었습니다. 40번 이상 강의를 들었지만 과연 머리에 남은 것은 얼마나 될까요. 강의를 들을 때마다 남은 아쉬움입니다. 나중에 다시 강의를 들어보겠다고 강의 녹음도 받아 두지만 다시 들은 것은 몇 번 되지 않습니다. 또다시 들어도 그때뿐입니다.

고민하다가 강의 파워포인트 중에 제가 꼭 기억했으면 하는 페이지를 별도로 모아 [인생잠언]이라는 파워포인트를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한 달 가까이 틈나는 대로 만들었더니 얼마 전 [인생잠언-기본고전편]과 [인생잠언-로마고전편] 두 개가 완성되었습니다. 한 강좌가 파워포인트 100장 정도였는데 그중 10장 내외를 골라 기본 고전 12강과 로마 고전 10강 각각 100장 내외의 파워포인트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혼자 생각해도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 헛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것을 만드는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합니다. 2,800년 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부터 600년 된 카스틸리오네의 궁정론에 이르기까지 그 주옥같은 고전의 글귀를 다시 읽고 그중 제 인생에 지침이 될만한 것을 골라내는 일은 텔레비전에서 예능 프로를 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장엄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제 가끔 이 파워포인트를 다시 읽어보면 됩니다. 그래도 여러 번 읽었더니 몇몇 페이지는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대화하거나 글을 쓸 때 인용할 정도인 구절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또 엉뚱한 짓을 하였습니다. 그 파워포인트를 제 목소리로 녹음을 한 다음 파워포인트 페이지에 해당 녹음을 입혀 동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병적이거나 광적입니다. 그 어느 쪽이라도 정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누구는 골프가 좋아 내내 필드에서 살고, 누구는 낚시가 좋아 주말 내내 저수지에서 찌만 바라보고 있을 것입니다. 요즘처럼 월드컵 기간이면 축구들 좋아하는 광팬은 잠을 설쳐가며 중계방송을 볼 것입니다. 제가 하는 짓은 이런 일과 비슷한 취미 활동입니다. 인생연구가 취미라고 했으니 이 정도는 취미의 차원에서 이해해 줄 만하지 않을까요.

저는 가끔 이 동영상을 틀어 봅니다. 약 25분 걸리는 이 동영상을 듣고 있노라면 마키아벨리의 표현한 '나는 그 옛 지혜의 음식을 먹으며 다시 태어난다네. 나는 옛 시대를 사셨던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지'라는 구절이 몸으로 이해됩니다. 그 지혜의 음식 중 가장 맛있었던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이미 너울과 전쟁터에서 많은 것을 겪었고, 많은 고생을 했소. 그러니 이들 고난들에 이번 고난이 추가될 테면 되라지요."(호메로스 [오디세이아] 5권 223-224절)

저도 인생을 60년 살았습니다. 그동안에 많은 세파가 있었고 전쟁터 같은 날들도 있었습니다. 남은 인생에도 반드시 고난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것도 여러 번 아니 수십 번 찾아올 것입니다. 그때 그 고난에 허둥지둥하지 않으려면 호메로스가 2,800년 전에 한 말을 가슴에 꼭 새겨두었다가 그 고난의 순간 담대하게 이렇게 이야기하여야 합니다.

"생각하건대 이번 일도 언젠가는 우리에게 추억이 될 것이오."(호메로스 [오디세이아] 12권 212절)

반대로 편안한 시간도 있습니다. 이 순간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그런 순간 말입니다. 그 순간에 대해 아이스퀼로스는 [아가멤논]에서 이렇게 경고합니다.

“순풍에 돛 단 인간의 행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암초에 걸리는 법! 하나 재물을 구하고자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지나친 부분을 알맞게 재서 물속에 던져 버린다면, 과중한 풍요로 말미암아 집 전체가 침몰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선장도 배를 바닷속에 가라앉히는 일은 없으리라.” (아이스퀼로스 [아가멤논] 1006-1014행)

기가 막힌 조언입니다. 이런 조언을 가슴에 새긴다면 암초에 덜 걸릴 것입니다. 고난에는 고난대로 순풍에는 순풍대로, 고전은 저에게 인생 잠언을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다시 그 동영상을 틀어 보렵니다. 월요일 아침 저는 다시 전쟁터로 나가 파도와 싸워야 하니까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8.6.18.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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