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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3번째 편지 - 기업의 환갑 자축 행사에서 느낀 것들

 

대한민국에서 개인의 환갑잔치는 이미 자취를 감춘지 오래됐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대부분 환갑을 맞은 사람들이 "에이 무슨 환갑잔치야. 요새 누가 환갑잔치를 하나."하고 환갑을 평가절하해 버립니다.

그러면 기업은 환갑잔치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사실 어떤 기업이 창업한 후, 60년 동안 살아남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얼마 전 친구 회사가 창업 6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 기념으로 음악회를 연다고 해서 당일치기로 부산을 다녀왔습니다.

친구 백정호 회장의 동성 그룹이 창사 60주년을 맞이한 것입니다. 1959년 동성화학공업사로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동성 그룹은 환갑을 맞아 두 가지 일을 하였습니다.

하나는 [DONGSUNG FESTA, 영웅이 부르는 신세계]라는 음악회를 개최하였고, [CHORD BOOK, 코드북]이라는 브랜드 북을 제작하여 배포하였습니다. 기업은 환갑을 이런 식으로 '자축'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11월 7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있었던 음악회는 베토벤의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서곡 작품 43]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모든 곡을 백 회장이 골랐다는 사회자 멘트를 듣고, 그 의미를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흙과 물로 아름다운 인형 두 개를 만들어, 이것을 신들이 사는 올림포스 산으로 데려가 인간의 혼을 불어넣습니다.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은 인간인 것이지요. 그 인간들 중에서도 도전의식을 가진 인간이 기업을 만들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동성화학공업사였을 것이고요.

그렇다면 동성 그룹도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곡을 타이틀곡으로 고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감상했습니다.

음악회는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제9번 작품 95 '신세계로부터' 4악장]을 마지막 곡으로 삼았습니다. 환갑을 맞은 동성 그룹이 새로운 60년을 향해 미지의 신세계로 나가는 용기, 그리고 끊임없는 도전 의식을 동성 그룹 가족 전원이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곡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서울 가는 KTX 시간에 쫓겨 앙코르곡은 듣지 못하고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을 빠져나왔습니다. 음악회로 기업의 환갑잔치를 '자축'하는 것은 퍽 의미가 있었습니다.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되고 성악가에 의해 불리는 각 곡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 회사도 올해 60주년이었는데 별다른 행사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동성그룹 음악회에 참석하고 보니 그냥 지나간 것이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드네요." 음악회에 참석하신 어느 기업인이 하신 말씀입니다.

환갑을 '자축'한다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60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다짐하는 행사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과거의 환갑잔치는 자식들이 해주는 '타축'의 행사였습니다. 60년이나 오래 산 것을 축하하는 의미가 강했습니다.

그러나 수명이 길어진 오늘날에는 장수하였다는 의미에서 자식들이 차려주는 환갑잔치는 그 의미가 퇴색하여 모두 환갑잔치를 생략하고 그저 환갑 당일에 가까운 가족끼리 외식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가까운 고등학교 동창들과 환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나같이 환갑 당일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모두 환갑잔치를 하지 않기에 환갑잔치를 하지 말자고 했지만 막상 당일이 되니 무엇인가 허전하고 성에 차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저도 그런 느낌을 받아 과연 그 '불편함의 실체'가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날 음악회를 보고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 인간이 태어나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될까요. 아마도 돌을 제외하면 결혼식과 환갑 정도 아닐까요. 칠순과 팔순도 있지만 동양권에서는 환갑만 같지 않습니다. 결혼식은 스스로 결정하여 행사를 치릅니다. 그런데 환갑은 자식들이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공식행사가 한국 사회에서 사라지자 환갑 당일에 당사자는 어정쩡해진 것입니다. 환갑은 '자축'하는 것이 아니라 '타축'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타축'이 사라지자 축하 자체가 평가절하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기업은 환갑을 누가 축하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방식으로 자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의미도 책을 만들어 당당히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지난 60년간 무엇을 하였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동성그룹은 [Chord Book, 코드북]에서 멋지게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Chord'는 우리말로 화음입니다. 어떤 음과 음이 만나는지에 따라 수많은 곡이 탄생되듯, 화학반응 과정 역시 어떤 원료들이 어떻게 결합하는지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이 열립니다. 동성그룹의 역사 역시 차곡차곡 화음을 쌓아 하나의 마스터피스를 완성하는 과정이었는지 모릅니다."

"화학 산업은 변화도 없고 보수적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화학이 가지고 있는 기본 성질은 '변화'입니다. 화학은 성질이 다른 물질이 만나 반응하면서 벌어지는 변화를 기본으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화음]과 [변화]라는 두 단어로 동성 그룹의 지난 60년을 표현하였습니다. 기업은 이렇게 환갑을 당당하게 자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데 왜 개인은 환갑을 자식들이 축하해 주기 만을 바라고 있을까요. 환갑 [타축]의 시대가 지났으면 환갑 [자축]의 시대를 열면 어떨까요.

얼마 전 컴패션 한국 대표를 맡고 있는 서정인 목사님을 만나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환갑 때 어떻게 자축할지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환갑을 위한 컴패션 여행을 만들면 어떨까요. 환갑은 새로운 육십갑자의 시작입니다. 지난 60년은 경쟁, 성취, 축적의 시간이었다면 새로운 시간은 화해, 봉사, 기부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환갑 무렵에 빈민국 어린이를 돕고 있는 컴패션의 현장을 둘러보고 자신의 현주소를 되새겨보는 여행을 하면 좋겠습니다. 저도 과테말라 컴패션 비전트립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되었으니까요."

서 목사님은 좋은 생각이라며 한번 추진해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비전트립이든 그 무엇이든 환갑을 당당히 자축하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기업은 하는데 개인이 못 할 것이 무엇일까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9.11.11.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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