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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번째 편지-‘부정적 상황 설정’ 을 아십니까?

‘부정적 상황 설정’ 을 아십니까?

 지난주 제 아들이 스탠퍼드 대학교에 합격하였다는 월요편지에 많은 분들이 답장도 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일일이 답장 드리지 못한 점 이 편지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축하를 받고 아들 자랑을 하느라 붕 떠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쯤 지나니 어느 정도 적응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한 달이 지나면 아들이 스탠퍼드 대학교에 들어간 사실이 너무도 당연히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 덤덤해 지고 말 것입니다. 제가 1977년 서울대에 합격한 일이나 198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일에 대해 더 이상 흥분하거나 감격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토록 간절히 원한 일이지만 막상 성취하고 나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덤덤해 지고 흥미를 잃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또 다른 욕망, 전에 보다 더 큰 욕망을 갈구하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한계입니다. 심리학자 셰인 프레더릭과 조지 로웬스타인은 이를 가리켜 쾌락적응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시간이 흐르면 그 흥분이 적응되고 더 행복해지지지 않더라는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듣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전자제품을 좋아합니다. 아이패드가 처음 나왔을 때 미국 출장길에 뉴욕 맨해튼 센트럴 파크 부근에 있는 애플 매장에 줄을 서서 아이패드, 그것도 3G 타입이 나오기 전이라 와이파이 전용을 사고는 좋아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감흥은 불과 한 달을 가지 못하였습니다. 여자들이 핸드백을 여러 개 가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가지고 싶어 샀건만 한 달이 채 되지 못하여 다른 핸드백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다 이 쾌락적응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쾌락적응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아무런 방법이 없는 것일까요? 2012년이 저물고 있는 지금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보고 싶습니다. 작년 이맘때쯤 새해가 오면 이런 저런 것을 많이 하겠다고 목표를 세우고 실제로 그중 상당부분은 목표를 성취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취한 순간, 적건 크건 쾌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뒤돌아보십시오. 그 쾌감 중 지금 이 순간까지 남아 있는 것은 얼마 없을 것입니다.

 저도 많은 성취가 있었습니다. 집을 리모델링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고민 끝에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서 리모델링을 하고 들어와 살고 있지만 입주 첫 날의 흥분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어머님을 위해 ‘엄마 김영순’ 이라는 일종의 자서전을 출간하였지만 그것도 ‘아 옛날이여’ 가 되고 말았습니다. 변호사를 하면서 많은 사건을 수임하였고 그 사건을 의뢰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호하여 상당부분의 사건을 성공하였지만 그 때의 감흥도 추억이 되고 말았습니다. 컨설팅 회사를 경영하면서도 많이 흥분된 순간이 있었습니다. 큰 계약이 성사되었을 때, 우리가 원하는 컨설팅 결과가 나왔을 때 그러나 지금 어떤 것들은 흥분은커녕 기억에서 조차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이미 손에 넣은 행운을 즐기며 사는 것이 아니라 새롭고 더 근사한 꿈을 꾸는데 시간과 정열을 바칩니다. 저는 가족들이나 직원들에게 늘 꿈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그 ‘꿈 이야기가 오히려 현재를 즐기는데 방해가 된다는 사실’ 을 깨달은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꿈을 가지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쾌락적응의 이론에 의하면 그 꿈을 성취하여도 다시 곧 무덤덤해지고 다시 새로운 꿈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삶은 만족스러워 지지 않습니다. 마치 갈증이 나서 바닷물을 마셨더니 더 갈증이 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저는 많은 철학서를 읽다가 그리스 스토아 철학자들에게서 그 해답을 얻었습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상상을 해보라고 권합니다.

 자신이 그토록 가지고 싶어 큰돈을 주고 산 자동차가 쾌락적응으로 자신에게 무덤덤한 존재로 바뀌었다면 갑자기 누군가가 자동차를 훔쳐갔다고 상상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동차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자와 이러저런 갈등이 있는 경우에도 배우자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상상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배우자가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라는 겁니다. 동의하지 않으신다구요. 오히려 속 시원하게 느껴지신다구요. 어제 배우자와 부부싸움을 하신 분은 일시적으로 그렇게도 느끼실 수 있지만 막상 현실이 되면 달라질 것입니다. 직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에 대해, 상사에 대해, 부하에 대해 불만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회사가 파산을 하여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평소에 그렇게 투덜거리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이 방법은 스토아학파의 세 번째 수장이었던 크리시포스(Chrysippos BC280-BC207)가 고안한 ‘부정적 상황 설정’이라는 방법입니다. 스토아학파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하루에 몇 번 또는 일주일에 몇 차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 전부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상상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다만 ‘가정’ 만 해보라는 것입니다. ‘염려’ 를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가정’ 만 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사람이나 사물의 가치를 달리 볼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과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 자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입니다. 공부를 좀 못하거나 말썽을 부려도 아무 상관이 없게 느껴질 것입니다. 이런 깨달음이 있으면 무엇을 하더라도 예전과 달리 의미 있고 강렬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쾌락적응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지요.

 맞는 말입니다. 스토아학파가 찾은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주기적으로 부정적 상황 설정을 해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슴에 와 닿으십니까? 이 스토아 철학을 더 공부해 보고 싶으십니까? 저에게 ‘부정적 상황 설정’ 이라는 개념을 알게 한 책은 바로 윌리엄 B. 어빈이 쓴 ‘직언(A guide to the good life : The ancient art of stoic joy)’이라는 책입니다.

 검찰 선배이신 박영수 변호사께서 추천해 주셨는데 읽는 내내 추천해 주신데 대해 마음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2012년을 마무리하는 이번 주, 인생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해서 이 편지를 드렸습니다. 한해 잘 마무리하십시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2.12.24.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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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그 동안 쓴 월요편지를 묶어 펴낸 ‘오늘의 행복을 오늘 알 수 있다면’(21세기 북스 출판)에 대해 여러분들이 큰 관심을 보이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세는 좋은 곳에 쓰려고 고민 중입니다. 계속 응원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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