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587번째 편지 - 60년을 살고 배운 것, "덜 후회하는 삶을 살자."

 

어제 월요편지를 쓰지 않고, 오늘 월요편지를 쓰는 이유는 오늘이 저의 61번째 생일, 이름하여 환갑이기 때문입니다. 환갑날 아침에는 어떤 기분이 드는지 그 기분을 느껴보고, 그 기분을 글로 남겨 훗날 읽어보고 싶어 굳이 오늘 월요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지난 11년간 월요편지를 쓰면서 늘 인생에 대해 궁금해했습니다. "과연 인생은 무엇일까?" 처음 몇 년은 인생이 [마라톤]이나 [등산]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목적지를 정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늘 그 목적지가 잘 정해졌는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에는 속도에 대한 걱정이 있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가고 있는지, 더 빨리 갈 수는 없는지, 언제나 초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를 더 성가시게 한 것은 옆에서 저를 추월해 가는 경쟁자였습니다. 평생을 그 경쟁자 때문에 마음 앓이를 했습니다.

이렇게 살다가는 불안증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인생을 매일 반복되는 [복싱 경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홀가분했습니다. 오늘 라운드에서 KO패를 당하여도 내일 잘 싸우면 그뿐이라는 위안을 가지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60년을 살고 보니 인생은 어떤 때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이었다가, 어떤 때는 하루하루를 살아남아야 하는 복싱 경기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인생의 목적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그런 목적이 다 부질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은 무엇이 정답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 더 솔직한 대답일 것입니다.

늘 저에게 물었습니다. 인생에 목적이 있다면 [조근호의 인생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무엇을 위해 60년을 살아온 것일까 자문하였습니다. 검사 시절에는 [정의 실현]이 의심없는 저희 삶의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저희 삶에서 [정의]가 자리를 비킨지 오래되었습니다.

저는 검찰을 퇴직하고 다시 [인생의 목적]을 고민했습니다. 수년간의 공부 끝에 만난 답이 바로 [인격의 완성]이었습니다. 이룰 수 없는 이 답을 부여잡고, 몇 년을 씨름하였습니다. 오늘 아침, 과연 인격의 완성이 제 인생의 목적일까 의문을 가져 봅니다.

달성할 수 없는 목적은 허망할 뿐입니다. 우리를 지치게 만듭니다. 인격을 향상시키기 위해 고전도 보고 사색도 하였지만 조그만 돌발 상황에도 제 인격은 쉽게 바닥을 드러내고, 제 가슴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불같은 성격이 저를 지배하고 맙니다. 이런 일이 반복에 반복을 거듭합니다.

이러니 [인격의 완성]을 제 인생의 목표로 삼는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아가 인생의 목적이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 근본적인 의문이 듭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살다 보니 '결실'을 맺게 되고, 훗날 그것을 그의 인생 목적으로 '해석'하는 것 아닐까요.

저는 인생을 9가지 부문으로 나눠 자신을 성찰하고 경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건강입니다. 한때는 건강을 멋진 몸매로 착각하고 프로필 사진을 찍기 위해 밥을 굶고 닭 가슴살로 끼니를 때우며 몸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멋진 근육에 불과했습니다.

환갑이 되도록 과연 어떻게 해야 건강할지에 대해, 자신 있게 정립된 루틴이 없습니다. 도대체 저는 60년 동안 제 건강을 위해 무슨 일을 한 것일까요? 헬스클럽도 가고 건강식품도 먹고 병원도 다니고 책도 보았지만, 건강을 자신할 수 없고 보면 건강에 무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번째는 가족입니다. 아내와 자녀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말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섭섭함이 늘고, 그러다 보니 아무것도 아닌 일에 삐지기도 하고 짜증도 납니다. 소통에 점점 어려움을 겪습니다. 수십 년을 같이 살았으면 척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알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일이 여반장 같아야 하는데 저만 그러는지 그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자산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대표 직함을 두 개나 가지고 있고 외관상 자산도 좀 있는 듯하지만, 아직도 돈 문제에서 해방되지 못하였습니다. 욕심을 줄이면 돈 문제에서 해방이 될 수 있다고 책에도 쓰여 있고 강사들도 이야기하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언제쯤 숙제를 마쳤다고 손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요?

네 번째는 인생의 목표로 내걸었던 인격입니다. 인격에 관해서는 이미 그 완성이 쉽지 않은 일임을 말씀드린 바 있어 다시 반복하지는 않겠습니다.

다섯 번째는 교양입니다. 저는 교양이란, 책 좀 보고 음악회 가고 전시회 가는 문화 활동 비슷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읽고 듣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때뿐이었습니다. 책을 덮으면 무엇을 읽었는지 머리가 하얘지고, 음악회는 홀을 벗어나면 무슨 곡을 들었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전시회도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나이가 드니 교양은 그런 것이 아니라 인격이라는 나무에 핀 [꽃]과 [열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나무가 잘 자라도 꽃이 피지 않고 열매가 맺지 않으면 무엇인가 부족합니다. 인격이라는 나무에 피어 나무를 아름답게 만들고 벌과 나비가 무수히 모이게 만드는 [꽃]과 세월이 흘러 풍성한 결실로 남는 [열매], 바로 그것이 교양이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교양은 [사람의 향기]였습니다. 그저 아무 이유 없이 만나고 싶고 몇 시간을 이야기해도 또 만나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이 교양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저는 교양인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감성보다는 논리가 앞서고, 따뜻하기보다는 냉철한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저의 모습일 것입니다. 저는 그 반대로 살고 싶어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별로 바뀐 것이 없습니다. 환갑이 되도록 헛고생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섯 번째는 인간관계를 인생의 한 부문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좋은 인간관계를 가지기는 희망했지만, 제가 과연 그분들에게 좋은 친구였는지는 자신할 수 없습니다. 친구들이 인생의 비를 맞을 때 그저 옆에서 비를 같이 맞아주는 사람이 되고자 했지만 그리 살지 못했습니다.

일곱 번째는 신앙입니다. 가족의 평화를 위해 다닌다던 일요일 교회도 발길이 끊어진지 제법 오래되었습니다. 수십 년간 교회를 다녔지만 죄책감만 쌓이고 신앙은 좀처럼 쌓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고 멀리서 분석하고 따지기만 하지 선뜻 그의 품에 뛰어들지 못합니다.

조만간 운명의 무게에 눌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되리라는 것을 알지만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무대포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종교가 무엇이든 종교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상례인데 저는 그 반대로 가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듭니다.

여덟 번째는 봉사와 기부입니다. 한때는 열심히 했습니다. 모든 일에는 전성기와 쇠퇴기가 있듯이 제 봉사와 기부도 쇠퇴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환갑 때 뚜렷이 내놓을 봉사와 기부가 없습니다. 환갑을 봉사와 기부와 함께 하는 계획을 세울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은 여행입니다. 행복의 종합 선물 세트, 행복의 뷔페라 일컬어지는 여행, 그 여행은 제법 다녔습니다. 그러나 갔다 오면 그뿐 또 가고 싶어지고 그런 일은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이제 여행이 너무 흔한 다반사가 되어 감흥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여행 전문 기자를 했던 제 친구는 인생에 대한 질문이 없으면 여행을 떠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질문을 붙잡고 여행을 떠나, 그 질문이 작은 질문으로 쪼개지고, 그 질문마다 힌트를 얻어 돌아오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이라 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여행에서 돌아와 여행에서 만난 힌트를 토대로 하나하나 풀어나갈 때 얻을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제 여행은 헛된 것이었습니다.

환갑날 아침 인생을 돌이켜 보니 그 뭐 하나 번듯하게 축적된 것은 없고 그저 조각이나 쭉정이뿐입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왜 기분이 불편하였는지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지난 60년을 정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저를 불편하게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새로운 희망이 생겨납니다. 우리네 인생이 드라마틱한 영화나 소설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난 60년의 세월 곳곳에 사랑도 있었고 행복도 있었으며 환희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미움도 불행도 슬픔도 함께했습니다. 그곳에서 배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덜 후회하는 삶을 살자."

만족하기는 어렵지만 덜 후회하는 일은 보다 쉬운 일입니다. 그러다 보면 만족하는 일도 더러는 생길 것입니다. 육십 평생이 그저 그렇다고 생각되지만 92세 노모에게서 환갑날 아침 생일상을 받은 제 인생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행복한 삶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9.10.1. 조근호 드림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이전글 목록으로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