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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번째 편지 - 다시 찾은 미황사 음악회

 

시간은 2018년 4월 14일 낮 12시 14분, 장소는 전남 해남군 송지면 미황사길 164 미황사 입구. 분명 이 날은 처음 살아보는 날이지만 몇 년 전 그 어느 날과 똑같아 그날이 데자뷔처럼 머리에 떠오릅니다. 2015년 4월 6일 자 월요편지는 그 데자뷔를 생생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2015년 4월 4일 KTX는 10시 27분 목포역에 도착하였습니다. 일행들은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미황사로 향했습니다. 버스에 내려 서자 날씨가 만만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지 스님보다 매서운 바람이 먼저 우리를 영접하였습니다. 소풍 나온 학생들 같은 마음이었지만 봄을 시샘하는 바람에는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리도 똑같을까요? 3년 만에 찾은 미황사는 그때처럼 봄을 시샘하는 찬비를 뿌려 우리를 움츠리게 하고, 안개는 자신의 치맛자락으로 미황사 뒷산 달마산을 우리에게서 감추어 버렸습니다. 미황사는 한두 번 방문으로는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싫은 모양입니다.

3년 전과 똑같이 먼저 식사를 하고, 방에서 잠깐 쉬었습니다. 따뜻한 커피 한 잔과 남자들의 수다에 밖에 나가기 싫어졌을 때, 이 모임을 인솔한 최창원 부회장이 산책을 나가자고 재촉합니다. 일행 중 일부 10여 명이 주지 금강 스님의 안내를 받아 달마 고도를 천천히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달마 고도는 2017년 11월 개통한 17.7km 트레킹 코스입니다. 미황사에서 시작하여 달마산의 고즈넉함과 해안 파도의 철썩거림을 두루 즐기다 다시 미황사로 돌아오는 6시간짜리 길입니다.

"달마 고도는 6시간 이내에 걸으면 안 되는 길입니다. 달마 고도에서는 마음보다 몸이 먼저 걸으면 안 됩니다. 마음이 앞서면 중간의 모든 것을 놓치게 됩니다. 나뭇잎도, 들풀도, 간간이 핀 꽃도 다 우리에게 의미를 주려 하지만 우리가 스치고 마는 것이지요." 금강 스님의 말씀입니다.

스님을 따라 걷는 달마 고도는 안개가 적당히 끼어 있어 깊음을 더해 줍니다. 조금만 뒤처지면 앞에 가는 일행을 잃기 십상입니다. 카메라에 이것저것 담다 보니 발걸음이 계속 느려집니다. "조 변호사님, 여기 동백이 있네요." 제가 산책을 나서며 3년 전에 보았던 동백을 보고 싶다고 하였더니 그 말을 기억하고 최 부회장이 알려 준 것입니다.

3년 전에는 사찰 뒤편 길을 걸었습니다. 월요편지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사찰 뒤편 길을 따라가다 보니 동백꽃을 일부러 뿌려 놓은 듯 예쁜 동백꽃 카펫이 나타납니다. 동백이 이제는 진달래에 자리를 내어주고 자신은 아름다운 카펫이 되었습니다. 감히 그 카펫 위를 밟지 못합니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밖에 그 동백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다시금 옷깃을 여밉니다."

이번에는 동백꽃이 나뭇가지에 자신의 몸을 동여매고 저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자! 저를 찍어 주세요. 아니, 저를 찍어 보세요. 저 어때요." 이렇게 교태를 부립니다. 여린 녹색의 세상에 빨간 화장을 한 동백의 얼굴이 유난히 고혹적입니다. 그녀에게 혼 줄을 잃고 맙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일행들과 거리를 두었습니다. 한참을 있었을까요. 이제 일행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안개가 감싸 안은 산중에 소리라고는 간혹 떨어지는 빗소리와 성가시지 않은 바람소리뿐입니다. 얼마를 들었을까요. 저 자신이 오래전부터 이곳에 서있던 나무같이 느껴집니다.

3시 반 자하루에서 3년 전 그때처럼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 드롭박스에 있는 3년 전 사진을 꺼내 보았습니다. 장소와 무대 장치는 3년 전과 똑같습니다. 어쩌면 창밖의 빗소리마저 같을까요. 그러나 음악회는 전혀 다른 색깔이었습니다. 3년 전에는 이경선 선생님이 사회를 보았는데 이번에는 유시연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천천히 읊조리는 목소리에 실린 맛깔스러운 멘트는 중독성이 있습니다.

바로크 음악인 파체벨의 캐논으로 음악회의 문을 열었습니다. 늘 듣던 귀에 익은 음악입니다. 왜 이 곡을 첫머리에 넣었을까 궁금해하며 팸플릿을 보았더니 이번 미황사 콘서트의 주제가 [그리움]입니다. 모두가 캐논을 들으면 그리워지는 그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수년 전 홋카이도에 산 오르골에서 끝도 없이 나오던 캐논 곡이 기억났습니다.

이어지는 곡은 [그리움]에 너무나도 딱 들어맞는 동요 모음곡입니다. [동대문을 열어라], [어머니 마음], [우리 집에 왜 왔니?] 세 곡입니다. 이런 동요가 멋진 연주곡으로 편곡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습니다.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 남남 남대문을 열어라"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음악을 들으니 가사가 저절로 가슴 속에서 밀려듭니다.

"우리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정겨운 노래지만 아마도 우리 아이들은 이런 동요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구닥다리 20세기 유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유시연 선생님의 해설에 마음이 더 아려옵니다.

몇 곡이 더 연주되고 이날의 하이라이트 곡 [엄마야 누나야 주제에 의한 변주적 환상곡]이 이어졌습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이 노래를 들으면 왠지 울컥하고 엄마 품으로 달려 들어가야만 할 것 같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60이 되는 이 나이에도 이 노래의 [엄마]는 늘 [엄마]입니다. 결코 [어머니]나 [어머님]이 될 수 없습니다.

앙코르곡까지 모두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음악회 동안, 자신의 마음속 그리운 공간에 머문 탓인지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다과 시간에 최 부회장이 이번에 새 책 [수련]을 발간한 배철현 교수에게 한마디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리움이 무엇일까요? 저는 귀향, 자신의 본분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에서 귀향을 찬양합니다. 귀향은 고대 그리스어로 '노스토스'라고 부릅니다. 둥지를 의미하는 '네스트',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인 '노스탤지어'와 어원이 같습니다. 노스토스는 인생이라는 여정의 시발점인 동시에 종착점입니다."

그래서 그리움을 떠올릴 때 고향과 어머니가 생각나는 모양입니다. 최 부회장은 저에게도 한마디 부탁하였습니다. 저는 한마디 대신 2015년 4월 6일 자 월요편지의 한 대목을 낭독하였습니다.

"앙코르 연주는 우리 모두가 아는 멜로디로 이어졌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바로 [고향의 봄]이었습니다. 저는 그 곡조를 들으며 저도 모르게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고향이 어디라도 상관없습니다. 고향의 봄에 나오는 그 '고향'은 대한민국 지도 그 어디에 있는 곳이 아니라 우리의 어린 시절 마음에 있는 바로 그곳이지요."

제 낭독이 끝나자 유시연 선생님이 이렇게 요청하셨습니다. "조 변호사님 오늘 음악회도 월요편지로 써주실 거죠." 2015년 4월 4일과 2018년 4월 14일은 어쩌면 이리도 똑같을까요. 장소, 날씨, 참석자, 감동. 이런 데자뷔라면 몇 번이나 되풀이되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의 월요편지는 유시연 선생님의 요청에 대한 답변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8.4.16.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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