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서 기차가 멈춰 섰다.(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夜の底が白くなった. 信号所に汽車が止まった.)]
이 문장은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는 문장이지만 일본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유명한 문장입니다. [국경]이란 일본 동북부 지방에 있는 군마현과 니가타현을 가르는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에치코 산맥이고 [긴 터널]은 에치코 산맥을 뚫은 길이 11킬로미터의 시미즈 터널입니다. 도쿄에서 출발한 열차는 군마현을 거쳐 시미즈 터널을 통과해야 비로소 눈의 고장 니가타현의 에치코 유자와 역에 닿습니다. 이곳의 엄청난 눈은 동해의 습한 바람이 에치코 산맥에 부딪쳐 만들어진 것입니다.
196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2년에 걸쳐 소설을 씁니다. 아까 말씀드린 문장은 가와바타가 마지막에 퇴고한 이 소설의 첫 문장입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 모두가 이 문장을 외우고 이 문장에 매료되는 것입니다. 이 소설이 바로 그 유명한 [설국(雪國)]입니다. 눈의 고장, 눈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가와바타는 이처럼 소설 첫 대목에서 주인공 시마무라를 기차에 태우고 시미즈 터널을 통과하게 만듭니다. 시마무라는 터널을 통과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습니다. 터널을 통과하고 그가 만난 모습은 하얀 눈의 나라였습니다. 시마무라는 그 눈을 보고 무엇을 상상하였을까요? 아마 모든 것을 지우고 새로 시작하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동경에 있는 가족으로 대변되는 현실 세계는 이 터널을 통과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현실 세계를 터널 너머에 남기고 온 시마무라는 눈의 나라에서 새하얀 도화지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립니다. 그 그림의 여주인공은 동경에 있는 아내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게이샤 코마코입니다. 코마코의 첫인상을 가와바타는 이렇게 감각적으로 표현합니다. '여자의 인상은 이상하리만큼 청결했다. 발가락 사이의 오목한 부분까지도 깨끗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은 오늘 인천공항에서 니가타 공항으로 일본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니가타에서 버스를 타고 이곳 시마무라가 코마코를 만난 료칸,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3년 동안 소설 [설국]을 집필한 료칸 [다카한 료칸]에 도착하셨습니다. 설국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저는 이철구입니다."
이철구 사장의 멋진 멘트가 끝나자 버스는 정확하게 [다카한 료칸] 마당에 도착하였습니다. 26명의 행복마루 임직원은 2박 3일의 전 직원 해외여행의 첫날밤을 이곳에서 지내게 된 것입니다. 설국의 주인공 시마무라와는 다른 코스로 [다카한 료칸]에 도착하였고 계절도 4월이라 설국의 첫 문장의 감흥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노벨 문학상의 무대가 된 이곳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되었습니다.
[다카한 료칸] 직원들의 손 인사를 뒤로하고 버스는 동경을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창밖의 풍경은 설국 그 자체입니다. 직원들은 사진을 찍느라 손이 바쁩니다. 조금을 달리다 보니 함박눈이 진눈깨비로 바뀌었습니다. 밤사이에 내린 눈 때문에 산에는 설화가 피어있고 먼 산에는 설무가 피어오릅니다. 우리는 운이 좋게 4월에 설국의 구석구석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한참을 달리니 시미즈 터널이 나타납니다. 설국의 주인공 시마무라가 만난 터널은 기차용 터널이었지만 우리가 만난 터널은 후에 만들어진 고속도로용 터널입니다. 그러나 터널은 터널입니다. 시마무라는 터널을 두고 두 세계를 넘나들었습니다. 가족을 둔 결혼한 남자로 사는 동경의 시마무라와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게이샤와 사랑을 나누는 설국의 시마무라. 터널은 두 시마무라를 완벽하게 분리해 주었습니다. 시마무라는 터널을 통과할 때마다 다른 시마무라가 되었습니다.
우리 앞에 나타난 시미즈 터널은 우리에게 어떤 세계를 만나게 해줄까요. 버스는 설국을 뒤로하고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1분, 2분 ...... 10여 분이 지나갔습니다. 사람들에게 터널은 늘 묘한 존재입니다. 사후세계를 경험하였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터널을 경험하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터널은 전혀 다른 두 세상을 이어주는 통로입니다. 드디어 터널이 끝나고 환한 빛이 눈을 강하게 자극하였습니다. 살그머니 눈을 떠봅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반대 방향으로 터널을 통과한 우리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신록의 세상이었다." 터널을 통과한 우리도 시마무라처럼 새로운 세상을 꿈꾸어야 할 것만 같습니다. 설국이 몽환의 세상이라면 신록은 청춘의 세상입니다.
2박 3일의 꿈같은 행복마루 두 번째 해외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한 우리 26명 모두의 머리에는 찬란한 별이 뜨고, 가슴에는 산들바람이 불고, 푸른 하늘이 가득 차 있고, 마음에는 파란 풀이 자라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내년 해외여행을 기약하며 인천공항을 빠져나왔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추신 : 행복마루 전 직원 해외여행 때문에 월요편지가 화요편지가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2018.4.10.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