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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번째 편지-질문하는 학생이십니까, 설명하는 선생님이십니까?

질문하는 학생이십니까, 설명하는 선생님이십니까?

 저는 두 가지 조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법률사무소 행복마루이고 또 하나는 컨설팅 그룹 H&KOO입니다. 이 두 개는 모두 작년 10월 6일 오픈을 하였습니다. 지난 10월 6일 자로 첫돌을 맞이하였습니다. 첫돌을 어떻게 축하할까 고민하다가 아내와 상의한 끝에 저희 집에서 간단한 축하파티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20명의 저희 사무실 식구가 집에서 파티를 한다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지만 저희 사무실 식구들에게 제가 어떻게 살고 있는 사람인지 알려주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집에서 파티를 한다는 것은 모두가 가족이 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어 불편하고 번잡스럽지만 지난 금요일 집에서 1주년 축하파티를 하였습니다. 다행히 행사는 잘 진행되어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저는 직원들에게 ‘행복마루가 꿈꾸는 세상’이라는 주제로 설명회를 가졌습니다. 저는 왜 기존 로펌에 들어가지 않고 작은 부티크 로펌을 만들었는지 저의 꿈을 설명하고 지난 1년을 회고하였습니다. 이어 제가 꿈꾸는 행복경영, 행복변호, 행복컨설팅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특히 행복경영 5대 법칙의 구체적 내용인 존중, 비전, 칭찬, 교육, 경청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하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 계획도 이야기하였습니다.

 마지막 ‘경청’ 대목에서는 1주년 파티에 앞서 직원들로부터 설문조사한 건의사항을 취합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설문을 취합한 이용훈 상무님은 저에게 설문조사 결과를 전해주며 이런 부탁을 하였습니다. “대표님, 직원들과 개별적인 면담 시간을 가져주십시오. 직원들이 평소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십시오. 그런데 반드시 직원이 가슴에 있는 이야기 할 수 있게 직원이 종이에 건의사항을 적어와 읽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저는 반문하였습니다. “왜 그냥 말로 하면 안 되나요.” “대표님 직원들이 대표님과 이야기하다보면 대표님의 권위와 달변에 눌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저는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 것 같았습니다. 검찰에 있을 때부터 소통을 강조하고 직원들을 위해 행복경영을 하겠다고 배치표도 뒤집고 별 짓을 다하였는데 정작 직원을 만나도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고 저의 장광설만 남았다니. 이 이야기는 저 자신을 뒤돌아보게 하였습니다. 제가 직원들에게 이야기를 많이 한 것은 직원들에게 저의 뜻을 알게 해주려는 순수한 의도에서 한 것인데 이것이 저와 직원들 간의 소통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검찰에서 검찰총장과의 간담회에서 누가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그저 총장님의 용안이나 뵙고 그분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사주시는 밥이나 한 끼 얻어먹고 오는 것이지요. 애시 당초 소통은 존재하지 않고 일방적 훈시만 있는 것이지요. 대통령과의 대화나 CEO와의 대화라는 것도 성격은 마찬가지입니다. 질문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답변을 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지 질문자의 가슴 속 이야기를 듣기 위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돌이켜 보면 늘 설명을 하고 살아왔습니다. 제가 꿈꾸는 세상, 제가 만든 세상, 제가 바라본 세상, 제가 느낀 세상. 저는 설명하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집에도 사무실에도 늘 제 곁에는 칠판이 있습니다. 걸핏하면 일어나 씁니다. 사건 상담을 하면서도 질문하기보다는 제가 이해한 것을 설명하고 싶어 안달이 납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그들이 꿈꾼 세상, 그들이 만든 세상, 그들이 바라본 세상, 그들이 느낀 세상을 진지하게 물어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을 텐데도 말입니다.

 사람은 질문을 하는 학생으로 살아갈 수도 있고 설명을 하는 선생님으로 살아갈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학창시절부터 질문하기 보다는 질문에 답하기를 좋아하였습니다. 선생님이 어려운 질문을 하시면 그 질문에 답변을 하며 희열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습관이 들다보니 어른이 되어서는 당연히 질문하는 학생의 삶이 아닌 설명하는 선생님의 삶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새로운 것들은 질문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왜, Why라는 것에서 궁금증이 생기고 이것을 설명하고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사상과 발명품이 만들어 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개인의 삶에서는 이와 반대로 살고 있습니다. 특히 나이가 들면 더더욱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줄어 질문은 줄고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한 설명만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나이가 들면 마우스를 Shut up 하라는 말까지 나오겠습니까?

 그런데 근본적으로 질문하는 학생으로서의 삶을 살 것인가 설명하는 선생님의 삶으로 살 것인가의 문제는 관심을 타인에게 두는 삶을 살 것인지 관심을 자신에게 두는 삶을 살 것인지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두려면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를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에 대해 궁금해져서 그에게 자꾸 묻습니다. 어제 무엇을 하였는지 무슨 영화를 좋아하는지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지 별거 아닌 것을 끊임없이 묻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사랑이 식으면 묻기를 그치고 지시하거나 설명하려 듭니다.

 저의 직원들에 대한 태도도 아마도 이런 일들과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직원들을 사랑하면 그에 대해 궁금해 질 것이고 그러면 그가 어디에 사는지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 아이들은 지금 몇 학년인지 지금 무슨 고민을 하고 사는지 등등 그에 대한 모든 것을 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수시로 다시 확인하고 그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질문을 하더라도 그것은 형식이거나 자신의 설명을 하기 위한 기회 포착에 불과하게 됩니다.

 요즘 국정감사의 계절입니다. 국회의원이 피감기관에 대해 애정이 있는지 아니면 자신에 대해 애정이 많은지는 질의 시간을 피감기관에 대한 질문에 할애하는지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는데 할애하는지를 보면 대충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설명을 즐기며 살아온 삶의 방식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바꾸어지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저 자신이 아니라 세상에 대해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가지는 것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희 부부는 다음 주 토요일 결혼을 하는 저의 비서 이주선 양의 부부를 불러 오늘 저녁을 대접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오늘 저 자신을 지켜 볼 것입니다. 제가 얼마나 이 신혼부부에 대해 많이 궁금해 하고 어떻게 질문하는지 말입니다. 그래야 오늘 저녁이 이 부부에게 좋은 저녁 자리가 될 것이지 제가 일방적으로 결혼은 이런 것이야 라고 훈시를 하는 자리가 되면 그들에게 오늘 저녁은 고통스러운 자리가 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저녁이 무척 기다려집니다. 저희 부부는 이주선양 부부와 과연 진정한 소통을 이룰 수 있을까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2.10.15.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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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그 동안 쓴 월요편지를 묶어 펴낸 ‘오늘의 행복을 오늘 알 수 있다면’(21세기 북스 출판)에 대해 여러분들이 큰 관심을 보이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세는 좋은 곳에 쓰려고 고민 중입니다. 계속 응원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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