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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번째 편지 - 한 남자의 일과 인생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22살에 한 여자 A를 만납니다. 남자들을 단번에 사로잡는 파악하기 힘든 묘한 분위기를 가진 여자였습니다. 그녀와의 만남은 11년이나 이어졌지만 정작 그들이 같이 산 기간은 불과 3개월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가 하는 [일]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을 더 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11년간 그녀에게 흠모의 찬사를 보냈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에게로 홀연히 떠나버리고 이 남자는 원치 않는 이별을 당하였습니다.

그 후 이 남자는 자신 일생의 가장 중요한 여자 B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합니다. 그러나 이 남자에게 그녀는 애인이 아니라 아내였을 뿐입니다. 그녀는 그를 위해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여자로 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내인 그녀를 놔두고 매일 밤 술집을 서성이며 창녀들을 품에 안았습니다. 아내는 이런 남자의 일을 헌신적으로 도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내와 별거합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왜 대체 부부가 따로 살고 있습니까?" 그는 이렇게 답변하였습니다. "마음이 여린 남자는 자기 삶에서 여자를 억지로 밀어내지 않지만, 그 여자는 스스로 가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 그녀는 이런 모욕에도 더 헌신적으로 그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칩니다. 그는 훗날 이런 말을 남깁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아내를 얻는 일이며, 가장 어려운 일은 아내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이 필요하였지 가정주부인 아내는 필요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그에게 여인보다 더 중요한 남자가 나타납니다. 그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일에 결정적 도움을 줍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 친구에게 아내를 소개해주고 둘이 연인이 되도록 도와준 것입니다. "그녀가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알아?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데 기뻐해야 자연스럽지 않겠어?" 아내를 사랑해 다른 남자를 소개해 준 것인지 아내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자연스럽게 셋이 살았습니다.

오십 대 후반이던 어느 해, 술집에서 자신보다 마흔 살이나 어린 창녀인 여자 C를 만나 미친 듯이 사랑에 빠집니다. 아내에게는 한 번도 사주지 않았던 보석이나 스포츠카를 그녀가 원하면 무엇이든 사주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그녀와 공유하였습니다.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녀에 대한 집착은 병적이었습니다. 그녀는 외모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여자였습니다. 그녀가 사기 혐의로 교도소에 갇히자 엄청난 금액을 주고 빼내기도 합니다.

그에게 임종이 다가왔습니다. 아내가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때 여자 C가 병실에 들어섰습니다. 그는 여자 C의 이름을 부르며 아내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고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였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아내를 버리고 어린 창녀의 손을 잡은 그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요?

그를 세상은 어떻게 평가할까요. 아니 어떻게 평가하여야 할까요. 그가 정치인이면 대중은 그를 지도자로 받아들일까요? 그가 종교인이면 그를 사후에 어떻게 평가할까요. 그가 축구선수라면 대중이 그의 삶을 알고 난 후에도 그의 업적을 여전히 기릴까요. 그가 기업인이라면 사후 그의 삶을 낱낱이 알게 된 대중은 그가 설립한 회사를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가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도덕의 잣대로 이해할 수 없는 그의 삶도 전시의 일부가 됩니다.

이런 주제에 대해 지난 목요일 3월 29일 작은 토론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사로 있는 어느 재단에서 예술의 전당에서 지금 열리고 있는 자코메티 전시회를 함께 보고 저녁을 먹는 자리였습니다. 그날 저는 자코메티전을 두 번째 보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자코메티 전을 볼 때는 그의 작품만 열심히 보았습니다.

전시 작품을 거의 다 보았을 무렵 방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검은 커튼을 젖히고 방으로 들어서자 작품 하나가 묘한 아우라를 풍기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작품 주위에는 방석이 놓여있어 천천히 그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배려해 놓았습니다. 1미터 88센티미터의 자코메티의 대표작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경매가가 높아 유명한 작품이지만 오히려 그 경매가가 이 작품을 감상하는데 장애가 됩니다. 이 작품은 작품 자체로 엄청난 무게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이날 두 번째 관람에서는 자코메티의 인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토론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이를 지켜보던 재단 이사장께서 저에게 일어서서 일행들에게 한마디 하라고 권합니다. 마지못해 일어서 제 생각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저는 자코메티 전을 두 번째 보고 자코메티 작품에 대한 경이로움이 사라졌습니다.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예술 작품만 떼어내어 감상할 것이냐, 아니면 예술작품에 예술가의 인생, 그의 생각을 보태어 감상할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예술 작품을 보는 목적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예술작품을 평가하려 예술작품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술작품을 통해 제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술작품을 예술가를 떼어 놓고 바라보기 어렵습니다. 저는 자코메티의 임종할 때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그런 자코메티가 만든 작품에 대한 경이감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이런 견해에 반대하는 의견도 상당히 있었습니다. 이 논쟁은 요즘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미투 논쟁에서도 재연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옳은지는 의미가 없습니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작품만 눈에 들어오는지 아니면 그 작품과 함께 그의 인생이 어른거리는지의 문제 아닐까요? 저는 후자여서 경이감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도 그의 이해할 수 없는 삶마저 전시의 대상이 된 자코메티 전은 최고였습니다. 4월 중순 전시가 끝나기 전 다시 한번 가보렵니다. 세 번째 관람에서는 작품만 보이는지, 아니면 그의 인생이 오버랩되는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인간이 걸어 다닐 때면 자신의 몸무게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가볍게 걷는다." "거리의 사람들을 보라. 그들의 무게가 없다. 어떤 경우든 죽은 사람보다도, 의식이 없는 사람보다도 가볍다. 내가 보여주려는 건 바로 그것, 그 가벼움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말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8.4.2.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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