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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번째 편지 - 드디어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다

 

지난 3월 6일 드디어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었습니다. 작년 5월 22일 결심을 하고 매일 근육운동을 1시간씩 한 지 9개월 보름 만에 제 벗은 바디에 포커스를 맞춘 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이 나이에 무슨 주책맞은 짓이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는 더 하기 힘들 것 같아 무모한 도전을 시작한 것입니다.

매일 운동을 하였지만 '그놈의 뱃살'은 잘 빠지지 않습니다. 체지방률도 18% 근처에서 더 내려가질 않습니다. 2월 초순부터 걱정이 많아집니다. 과연 이런 몸 상태로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운동할 때마다 피트니스 2.0 김용도 대표에게 물어봅니다. "사진 찍을 때까지 몸 만들어질까요?" 그의 대답이 분명치 않습니다. 아마도 가슴에 왕(王)자는 새겨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표님, 체지방 측정기기 인바디로 체지방률 측정 더이상 하지 마세요. 선수들도 잘 안 합니다. 대신 눈으로 측정하지요. 그것을 눈 바디라고 합니다." 그러나 눈 바디 보다는 인바디에 의존하게 됩니다.

걱정 끝에 프로필 사진을 찍은 적이 있는 후배 이상원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좀 만나자고 했습니다. 2월 13일에 만난 그에게 핸드폰으로 집에서 찍은 제 몸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습니다. "이런 상태인데 사진 찍을 수 있을까?" 그는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선배님 걱정하지 마세요. 좋은 사진 나올 겁니다." 그의 위로가 힘이 됩니다. 그래도 그처럼 왕자가 선명하게 새겨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김용도 대표는 식사량을 늘리라고 하지만 걱정이 되어 먹게 되지 않습니다. 한 끼에 닭가슴살과 야채만 100그램에서 150그램 정도 절제해서 먹고 있습니다. "이렇게 적게 드시면 근육이 만들어지지 않아 사진이 예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탄수화물 꼭 챙겨 드세요." 김 대표가 수없이 이야기하지만 탄수화물에 수저가 가지 않습니다. 이렇게 저만의 식사법을 고집하다가 촬영을 10일 앞두고 고집을 버리고 김 대표의 식사법을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탄수화물을 먹기 시작한 것입니다. 근육이 탄수화물을 저장한 것 때문인지 근육이 커진 것 같기도 합니다.

[수분 조절]과 [탄수화물 로딩]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 근육에는 글리코겐을 잔뜩 저장(로딩)하고, 체내 수분은 완전히 말라버리게(조절)하여 피부를 얇게 함으로써 근육의 선명도를 높이는 방법입니다. 3월 1일부터 이 과정에 돌입하였습니다. 3월 1일 물 4리터, 하루 5끼 매끼 탄수화물 100그램 총 500그램, 3월 2일 물 6리터, 하루 5끼 매끼 탄수화물 150그램 총 750그램을 마시고 먹어 체내에 수분을 충분히 채운 다음 수분을 조절해 나갑니다.

3월 3일 물 2리터, 하루 5끼 매끼 탄수화물 200그램 총 1,000그램, 3월 4일 물 1리터, 하루 5끼 매끼 탄수화물 200그램 총 1,000그램 이런 방식으로 수분을 조절하고 근육에 글리코겐을 저장합니다. 그리고 촬영 전날인 3월 5일은 물을 전혀 마시지 않고 한 끼에 초밥 10개씩, 5끼 총 초밥 50개를 먹습니다. 물을 마시지 않는 것은 촬영 당일까지 이어집니다. 이 과정이 무엇보다 고통이었습니다. 물을 많이 마시게 하는 것이 고문이 아니라 물을 못 마시게 하는 것이 고문이었습니다.

드디어 3월 6일 촬영일입니다. 이번 촬영은 개인 차원의 바디 프로필 사진이 아니라 맥스큐라는 피트니스 잡지의 인터뷰를 겸한 촬영이라 규모가 좀 되었습니다. 관계자 모두 성수동에 있는 사우나 스튜디오에 10시 집결하였습니다. 맥스큐 잡지, 피트니스 2.0, 사진작가, 메이크업 등 여러 명이 작업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온 의상과 신발이 한 보따리입니다. 집에 있던 것도 있고 이번 촬영을 위해 구입한 것도 있습니다. 메이크업을 마치고 거울을 보니 모델이 된 듯한 모습입니다. 촬영을 하기 전에 근육을 펌핑하여 키웁니다. 이 과정도 고난입니다. 펌핑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근육이 키워지질 않으니 사력을 다해 덤벨을 듭니다. 김용도 대표가 "한 번 더, 한 번 더"를 수없이 외칩니다. 힘들어도 있는 힘을 다해 펌핑을 하여야 합니다. 10개월의 노력이 바로 이 한순간을 위한 것이니까요.

첫 촬영은 승마복을 입고 상의를 탈의한 사진입니다. 표정이 굳어있나 봅니다. 이파란 사진작가가 "웃으세요. 편하게 표정 지으세요."를 수없이 외칩니다. 쉽지 않습니다. 여러 차례 포즈를 바꿔가며 사진을 찍습니다. 다음은 청바지를 입고 상의는 흰 와이셔츠만 입은 채 가슴을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사진을 찍기 전에 다시 펌핑을 합니다. 펌핑을 하러 온 것인지 사진을 찍으러 온 것인지 잘 구분이 안 될 정도입니다. 이번에는 표정을 잡기가 좀 전보다 쉽습니다. 이파란 작가도 잘한다는 격려를 해 줍니다. 다 같이 찍은 사진을 모니터링하고 다시 찍습니다. 이러기를 수차례. 이번 씬이 끝났습니다.

이번에는 야외촬영입니다. 청바지에 흰 와이셔츠만 입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엄청 춥습니다. 트럭 보닛 위에 앉아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해 봅니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구경을 합니다. 선글라스를 끼고 허공을 바라볼 때는 홍콩 영화배우가 된 듯한 기분입니다. 점점 추워지자 사진이고 뭐고 빨리 끝나기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됐습니다."하는 이파란 작가의 멘트가 그리 반가울 수 없습니다. 스튜디오로 뛰어들어가 난로 앞에 옹기종기 모입니다. 사진 그 자체보다도 이런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기다리던 점심시간입니다. 도시락을 나눠 먹기 시작하지만 저는 물을 먹지 못하니 식사가 고욕입니다.

점심을 마치고는 실내 촬영입니다. 정장 슈트를 입고 전통적인 조근호로 돌아왔습니다. 콘셉트는 대부의 알파치노입니다. 저로서는 자세 취하기도 표정 연기하기도 이 장면이 제일 편안합니다. 다양한 장면을 찍습니다. 그리고 다시 펌핑에 들어갑니다. 이번 장면은 운동 장면입니다. 그러니 펌핑이 중요합니다. 이제 다 끝나 갑니다. 마지막 장면이라는 말에 기운이 솟습니다. 서서 덤벨을 들기도 하고 엎드려서 덤벨을 들기도 합니다. 이 장면의 핵심은 진정성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 대여섯 번 덤벨을 들 때는 연기를 하는 것 같았는데 열댓 번 들고 보니 힘이 듭니다. 안간힘을 써서 덤벨을 계속 듭니다. 이를 악물고 덤벨을 들어 올리는 장면을 이 작가가 잘 포착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 사진이 진정성이 있어 좋았습니다.

이제 모두 끝이 났습니다. 오후 5시입니다. 정리하고 고생한 스텝들과 같이 성수동 시장통에 있는 고깃집에 저녁을 하러 갔습니다. 고기가 맛있지만 너무 긴장한 탓인지 많이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서로들 고생하였다며 위로하며 촬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주인아주머니가 저를 유심히 바라보는 것이 의식되었습니다. 몇 번을 바라보더니 저희 테이블로 다가왔습니다. 촬영용 정장을 입고 있는 저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습니다. "저 탤런트시죠.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맞죠. 탤런트 맞으시죠."

모두들 깔깔대었습니다. 제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지만 그 아주머니는 자신의 확신을 바꿀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저는 졸지에 고된 촬영을 마치고 성수동 시장통에서 스텝들과 고기를 먹는 탤런트가 된 것입니다. 살을 빼고 근육을 운동을 한 효과가 뜻하지 않은 경험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이래서 니체는 "자신이라는 인간을 체험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라고 말했나 봅니다. 저는 그날 바디 프로필 사진 촬영을 한 조근호라는 자신을 체험하였습니다. 2018년 3월 6일은 조근호 인생에 특별한 체험을 한 날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날 찍은 사진 몇 장을 공개합니다. 그저 재미로 봐주십시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8.3.26.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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