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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번째 편지-지적 당뇨병에 걸리지 않는 법, 思考

지적 당뇨병에 걸리지 않는 법, 思考

 대한민국 인구가 얼마나 될까요. 행정안전부에서 주민 등록된 인구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11년 말 기준으로 50,734,284명입니다. 그러니 대한민국 인구가 5천 만 명이라고 하면 거의 정확한 숫자입니다.

 그런데 카카오톡이 2012년 6월초 기준으로 가입자가 53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전 국민이 다 가입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85세이신 저희 어머니는 카카오톡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시고, 이제 갓 태어난 아이들도 가입대상이 아니고, 실제로 한사람이 2개 이상씩 가입한 경우도 적지 않은 듯합니다. 저만해도 카카오톡 계정이 두 개 있습니다. 핸드폰용과 갤럭시탭 용으로 하나씩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어마어마한 커뮤니티가 지금 전 국민을 대상으로 도덕 강의에 나선 듯합니다. 카카오톡에는 시도 때도 없이 좋은 글들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물론 야한 글이나 동영상도 들어오고 유머도 들어오지만 그에 비해 훨씬 압도적으로 많이 들어오는 것이 좋은 글, 좋은 동영상입니다. 모두가 다 경쟁적으로 퍼 나르기를 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해 안달입니다.

 저의 아내도 걸핏하면 핸드폰을 저에게 들이밀며 이 동영상 한번 보라고 합니다. 보고나면 어찌 그리 잘 만들었는지 보면서 눈물을 훔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제가 금년에 카카오톡으로 받은 글 중에 가장 감동을 준 글은 바로 이것입니다. ‘금이 간 항아리’ 라는 짧은 글입니다.

 어떤 사람이 양 어깨에 지게를 지고 물을 날랐다.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하나씩의 항아리가 있었다. 그런데 왼쪽 항아리는 금이 간 항아리였다. 물을 가득 채워서 출발했지만, 집에 오면 왼쪽 항아리의 물은 반쯤 비어있었다. 금이 갔기 때문이다. 반면에 오른쪽 항아리는 가득 찬 모습 그대로였다. 왼쪽 항아리는 주인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주인에게 요청했다. "주인님, 나 때문에 항상 일을 두 번씩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금이 간 나 같은 항아리는 버리고 새 것으로 쓰세요." 그때 주인이 금이 간 항아리에게 말했다. "나도 네가 금이 간 항아리라는 것을 알고 있단다. 네가 금이 간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바꾸지 않는단다. 우리가 지나온 길 양쪽을 바라보아라. 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오른쪽 길에는 아무 생명도 자라지 못하는 황무지이지만, 왼쪽에는 아름다운 꽃과 풀이 무성하게 자리지 않니? 너는 금이 갔지만, 너로 인해서 많은 생명이 자라나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니? 나는 그 생명을 보며 즐긴단다." 많은 사람들이 완벽함을 추구한다. 자신의 금이 간 모습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어떤 때는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로 여겨 낙심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세상이 삭막하게 되는 것은 금이 간 인생 때문이 아니라 너무 완벽한사람들 때문이다. 당신은 금이 가지 않은 아내인가? 그래서 남편이 죽는 것이다. 당신은 금이 가지 않은 남편인가? 그래서 아내가 죽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는 금 가지 않은 인생으로 살려고 발버둥치는 저 자신을 돌아보고 그로 인해 힘들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아내를 떠 올렸습니다.

 이처럼 몇 달이 지난 후에도 오랜 감동이 남아 있는 글이 있는가 하면 읽을 당시에는 달고 맛있지만 금방 잊혀 버리는 글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모두 이렇게 짧은 글에만 중독된다면 언제 두툼한 책을 읽을 생각이 들까요? 월요편지를 쓰고 있는 이 순간, 뒤를 돌아 책장을 살펴봅니다. 눈에 먼저 들어오는 두꺼운 책이 있습니다. 언젠가 보려고 샀지만 몇 장 읽어보지 못한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 입니다. 책 내용은 대충 알지만 정작 읽어보지는 못하였습니다.

 얼마 전 조찬강의 때 연세대학교 김상근 교수님께서 ''인문학이 밥 먹여 주나'' 라는 강의를 하시면서 오딧세이아를 소개하셨습니다. 그때 교수님이 300여명의 청중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오딧세이아를 읽어보신 분 있으신가요.’ 그 교수님의 예상대로 한 분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 교수님은 이런 농담을 하셨습니다. ‘이러시니 앞으로도 제가 강의해 먹고 살 수 있겠군요.’ 저도 그날 강의의 핵심만 기억해 두었습니다.

 “당신은 고통받을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 고통마저도 사랑해라.” “Amor fati(운명을 사랑하라.)” “당신은 목표를 달성한 후에도 또 다른 도전을 하여야 한다.”

 그러나 카카오톡을 통해 전해지는 짧은 글이나 고전을 요약 정리하여 들려주는 강의만으로는 저의 허기진 정신을 채우기에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배가 고프고 기운이 없을 때 체내에 빨리 흡수되는 초콜릿이나 사탕이 순간적으로 기운을 차리게 해 줄지는 몰라도 그것만으로는 육체가 건강해 질 수는 없습니다. 천천히 흡수되는 밥이 필요합니다. 

 지식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사탕 같은 짧은 글은 들어올 때는 달콤하지만 너무 급히 에너지가 되어버려 체내에 축적되지 못합니다. 지식이 체내에 축적되어 정신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각하는 행위’를 거쳐야 합니다. 밥이 천천히 흡수되듯 지식도 천천히 흡수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시간을 들여가며 두꺼운 책을 읽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 어떤 때는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기도 하고, 좋은 구절은 메모도 하고, 진한 감동에 한참을 눈감고 그 장면을 회상하기도 하며 ‘생각’ 이라는 축적의 과정을 거칩니다.

 짧은 좋은 글, 좋은 동영상이 초콜릿처럼 때때로 필요하기도 하지만 늘 입에 달고 살면 당뇨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때때로 지적 허기가 질 때 짧은 글을 읽는 것이 필요하지만, 늘 짧은 글에만 심취되면 어쩌면 지적 당뇨병에 걸려 ‘생각하는 능력’ 을 잃어버릴 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번 여름휴가 정신 건강을 살찌우기 위해 두터운 고전을 읽으며 마음껏 ‘생각하는 능력’ 을 키워 볼까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2.7.30.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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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그 동안 쓴 월요편지를 묶어 펴낸 ‘오늘의 행복을 오늘 알 수 있다면’(21세기 북스 출판)에 대해 여러분들이 큰 관심을 보이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세는 좋은 곳에 쓰려고 고민 중입니다. 계속 응원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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