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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번째 편지-어떤 행복포럼

어떤 행복포럼

 16명의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들이 만나면 주된 화제가 무엇일까요. 검찰에 있을 때 이런 자리가 마련되면 주로 검찰 운영과 중요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주종을 이루었습니다. 그 바탕을 흐르는 관념은 정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런 모임에 참석해 보니 화제가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좌장이신 정상명 전 총장님께서는 먼저 우리는 축복받은 사람들이라고 전제하시고 더더욱 고마운 것은 아파서 참석하지 못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 ‘아직 젊은데요.’ 라고 말하였지만 얼마 전 이경재 대구검사장이 타개하신 후라 건강하다는 사실이 큰 축복임에는 아무도 이의가 없었습니다.

 정 총장님께서는 퇴임 후 5년을 지내고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하시며 이 모임이 행복을 연구하는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아울러 이 모임의 명칭을 행복포럼이라고 이름 붙이고 가끔 만나면 어떨까 하고 발제성 의견을 내셨습니다. 모두가 동의하였습니다.

 공직에 있을 때는 정의를 고민하던 분들이 퇴직 후 가장 큰 관심사는 여느 일반인들과 다르지 않게 자연스럽게 행복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발언도 자연스럽게 행복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오고갔습니다.

 변호사를 몇 년간 하신 선배들께서는 돈은 적절하게 버는 것이 더 행복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는 말씀들을 공통적으로 주셨습니다. 돈과 행복은 그다지 연관이 없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조승식 선배님은 자신의 근황을 이렇게 전하셨습니다. “저는 사교춤을 17년간 추었습니다. 지금도 토요일이면 여전히 춤을 추고 있습니다. 이에 덧붙여 매주 월요일 색소폰을 배우고 있습니다. 배운지 제법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요일 오전에는 피아노을 배우기 시작한지 1년 쯤 되었습니다. 어렵기는 한 데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한 달에 40시간을 중국어 공부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수준급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러면 언제 변호사 업무를 하시냐고 묻고 싶었지만 너무도 환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이 말씀을 전하시는 선배님께 그런 질문은 이미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습니다.

 늘 자신을 민초라고 부르시는 김종인 선배님은 “술잔을 서로 권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있는 남자는 행복하여라. 아름다운 여자를 보면 눈동자가 따라 갈 수 있는 남자는 행복하여라. 서산에 해가 질 때 돌아갈 가정이 있는 남자는 행복하여라.” 라는 자작시를 구수한 목소리로 전해주었습니다.

 이 시에 화답을 하고 나선 분은 문효남 선배님이었습니다. 주부 시인 문숙의 ‘기울어짐에 대하여’의 일부분을 멋지게 암송하셨습니다.

 한 친구에게 세상 살 맛이 없다고 했더니 / 사는 일이 채우고 비우기 아니냐며 / 조금만 기울어져 살아 보란다 /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노처녀로만 지내던 그 친구도 폭탄주를 마시고 / 한 남자 어깨 위로 기울어져 얼마 전 남편을 만들었고 / 내가 두 아이 엄마가 된 사실도 / 어느 한 때 뻣뻣하던 내 몸이 남편에게 슬쩍 기울어져 생긴 일이다

 (중략)

 시도 안 되고 돈도 안 되고 연애도 안 되는 날에는 / 소주 한 병 마시고 그 도수만큼만 / 슬쩍 기울어져 볼 일이다

 이 시를 읊조리는 선배의 몸도 소주에 취해 몇 도 쯤은 기울어져 있었고 약간은 상기된 그의 표정에는 과거의 지위나 명예나 돈은 이미 자리 잡을 곳이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몇몇 선배들의 멋진 한 마디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광경은 정 총장님을 비롯하여 몇몇 분들이 수첩이나 스마트폰에 열심히 이 주옥같은 말이나 시를 받아 적고 계셨습니다.

 언제 이 분들이 이렇게 행복을 논하고 시를 암송하며 그것들을 적어내는 멋이 있었던가. 저는 서슬 시퍼런 검사들을 여유가 있는 풍류객으로 만들어 낸 세월의 힘이 위대하게 느껴졌습니다.

 세월은 우리의 스승이 되어 우리에게 성공보다 행복이 중요함을 가르쳤고, 풍요로움이 아닌 절제 속에서 행복을 찾는 법을 일깨워 주었으며, 폭탄주에 취하기보다는 시 한 수에 취할 수 있는 감성을 키워주었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저는 한시를 하나 소개하였습니다. ‘소취나하 당취나평’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주에 루가 즐겁고, 신에 생이 즐겁습니다.’ 오래전 어느 분에게 배운 엉터리 한시로 행복포럼에 해학을 덧붙였습니다.

 정상명 총장님 재직 2년간 같이 근무한 대검찰청 간부 모임의 분위기는 이렇게 익어갔습니다. 술보다 분위기에 취한 일행들은 헤어짐을 아쉬워하였지만 가까스로 다음 만날 날을 정한 후에야 자리를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선배님들과 헤어지면서 다음 번 모임에는 반드시 시 한수를 외워 가야겠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숙제처럼 시 한수를 외우는 것은 행복포럼과 걸맞지 않았습니다. 대신 시 한수를 외우고 싶은 감성이 저절로 우러나오는 행복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2.7.16.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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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그 동안 쓴 월요편지를 묶어 펴낸 ‘오늘의 행복을 오늘 알 수 있다면’(21세기 북스 출판)에 대해 여러분들이 큰 관심을 보이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세는 좋은 곳에 쓰려고 고민 중입니다. 계속 응원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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