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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번째 편지-산사에서 만난 대형 탄노이 웨스트민스터 스피커

산사에서 만난 대형 탄노이 웨스트민스터 스피커

 얼마 전 한 월간지 선임기자로 있는 후배로부터 원고청탁이 들어왔습니다. 제가 월요편지를 쓰는 관계로 이곳저곳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왔지만 필화에 휘말리기 싫어 가급적 외부에는 글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사정을 아는 후배가 이번 글은 전혀 정치적 성향이 없는 단순한 에세이이니 써 달라고 부탁을 하여 덜컥 약속을 하였습니다. 주제는 이번 여름휴가 때 가볼만한 휴식과 힐링의 장소를 추천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부탁을 할 때는 국내외를 막론한다고 하여 남태평양의 팔라우를 염두에 두고 글을 써내려가다가 며칠 후 국내 여행지로 한정한다고 하여 급히 장소를 변경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장소를 국내로 한정하니 딱히 떠오른 곳이 없어 며칠을 끙끙 앓다가 지난번 남도 여행 때 인상적이었던 진도를 추천하기로 하였습니다. 글자 수는 약 2,000자 내외로 해달라고 하여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MS WORD를 이용하여 글자 수까지 세면서 꼬박 하루를 할애하여 탈고를 하고 원고 마감일 오후에 글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후배에게 전화하여 글이 어떤지 물어보았더니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선배님 왜 이렇게 많은 분량의 글을 쓰셨나요. 전부 8,900자쯤 되던데요.” “그럴 리가 내가 분명히 확인하고 보냈는데.” 컴퓨터에서 보낸 글을 열고 확인해보니 아뿔싸 2,000자를 써서 보낸다는 것이 2,000단어를 써서 보낸 것입니다. 어쩐지 좀 시간이 걸린다 했더니 이런 실수를 한 것입니다. 아무튼 이번 원고를 쓰기 위해 제법 많은 양의 글을 썼습니다. 그 중 아주 일부가 월간중앙 7월호에 실렸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심리란 묘해서 막상 글이 월간지에 실리고 보니 초의선사가 지내신 일지암 이야기를 할 걸 하는 아쉬움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오늘은 월간지에 기고하지 못한 이야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2004년 쯤 일입니다. 제가 광주고검에 근무하고 있을 때 해남지청장으로 있는 후배가 한번 관내에 놀러오라고 성화를 부려 주말에 해남 대흥사에 들렀습니다. 후배는 객지에 근무하고 있는 선배의 시름을 잊게 해주려는 배려로 하루를 대흥사 일지암에서 머물 수 있게 조치해두었습니다.

 일지암은 우리나라의 다도를 정립해 다성으로 일컬어지는 초의선사가 1826년부터 40년간 머문 곳입니다. 중국 당나라의 시승 한산의 시 “뱁새는 언제나 한 마음이기에 나무 끝 한 가지(一枝)에 살아도 편안하다.”에서 일지를 따와 일지암이라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초의선사는 이곳에서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와 교류하였고 진도 운림산방의 주인공 소치 허련을 가르쳐 추사에게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일지암 바로 옆에는 초의선사의 살림채로 연못에 네 개의 돌기둥을 쌓아 만든 누마루 건물이 있으니 자우홍련사입니다.

 저녁을 외부에서 먹고 느지막하게 일지암을 찾은 우리 일행은 자우홍련사 툇마루에 앉아 당대 최고의 다도 전문가인 여연 스님이 직접 만드신 차를 마시며 차에 관한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산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 한치 앞도 분간할 수가 없게 되었고 산새나 산짐승들도 잠자리에 들어 우리들의 이야기를 방해하는 것은 그 무엇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장대비가 우리들의 이야기를 끊어 버렸습니다.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비는 퍼붓기 시작하였고 산사의 밤은 신묘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모두들 불빛에 반사되는 빗물을 바라보며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삶의 전쟁터에서 부대끼며 살다가 시간이 멈추고 공간이 비어버린 이곳에 옮겨 앉아 우리네 인생이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우리는 그 무엇을 위해 이리도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묻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스님은 방을 어떻게 해 놓고 사시는지 궁금하다며 방을 보여주기를 간청하였습니다. 자우홍련사 방 한 칸에서 기거하시는 스님은 다소 겸연쩍은 표정으로 비밀의 방을 공개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방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높이 1미터는 되어 보이는 탄노이 웨스트민스터 스피커에 압도되었습니다. 청빈한 스님의 방에 초호화판 스피커라니 잘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원하는 곡이 있으면 신청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일행은 클래식에서 재즈, 팝송, 가요까지 우리가 듣고 싶은 곡을 무던히도 신청하여 검은 산의 적막을 깨트렸습니다.

 1시간의 분에 넘치는 음악의 향연이 끝난 후 스님은 그 스피커의 사연을 전해 주셨습니다. 대학교 때 출가하신 스님은 원래 오디오 광이셨답니다. 그러나 가난한 스님의 신분에 오디오를 구입하기 어려워 예전에 듣던 오디오를 한 동안 듣고 지내다가 스님이 다도로 유명해진 후 기고와 강연으로 들어오는 수입은 오디오에 투자하시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큰마음을 먹고 작은 크기의 탄노이 스피커를 한 조 구입하여 감상을 하고 지냈는데 외부 강연 때문에 며칠을 산사를 비웠다가 돌아와 보니 누군가가 훔쳐가 버리고 말았더랍니다.

 이에 스님은 도저히 사람이 훔쳐갈 수 없는 무게의 제품을 사기로 마음먹고 오랜 기간 돈을 모아 탄노이 웨스트민스터 대형 스피커를 구입하시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스피커가 크다보니 그 스피커를 산 아래에서 일지암까지 옮기는 것이 큰 행사였습니다. 인부 여럿이서 조심조심 손으로 들어 한 발짝 한 발짝 씩 옮겨 몇 시간에 걸쳐 운반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스님의 지인 한 분이 기념으로 이 과정을 캠코더에 찍으셨답니다. 그런데 그 영상을 보니 매우 특이하여 재미로 탄노이 사에 보내주었더니 그 회사에서 산악지방인 스코틀랜드 지역 광고에 사용하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승낙하여 광고에 활용되었답니다. 우리 귀를 호사스럽게 만들어 준 이 스피커가 퍽 유래가 있는 스피커였습니다. 그 사연을 접하고 들으니 음색이 더욱 처연하게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날 밤은 이렇게 깊어갔고 제 생애 잊지 못할 밤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제가 쓰고 싶었던 글을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이번 여름휴가에 이런 아름다운 밤을 만나고 싶습니다. 아마도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운이 좋으면 어디 또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이야기로 색다른 감동을 맞이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여름휴가 계획은 어떠신가요. 아직 이르다 구요. 유럽 사람들은 일 년을 여름휴가를 위해 산다고 합니다. 그러지는 못할망정 한 달 정도는 고민해도 좋지 않을까요. 여행은 가는 것 보다 가기위해 고민할 때가 더 재미있으니까요. 그 즐거움을 한 달여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2.6.25.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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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그 동안 쓴 월요편지를 묶어 펴낸 ‘오늘의 행복을 오늘 알 수 있다면’(21세기 북스 출판)에 대해 여러분들이 큰 관심을 보이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세는 좋은 곳에 쓰려고 고민 중입니다. 계속 응원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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