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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번째 편지 - 운을 읽는 변호사

 

작년 말 친구가 책 한 권을 보내 왔습니다. 책 제목이 "운을 읽는 변호사"입니다. 일본인 변호사가 쓴 수필집이었습니다. 변호사가 수많은 사건을 경험하며 얻은 지혜려니 생각하고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연초에 만난 그 친구가 혹시 읽어 보았냐고 물었습니다. 건성으로 '응'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친구는 "조 대표는 변호사이니까 읽으면서 많은 것을 느꼈을 거야."라고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그 한마디가 부담이 되어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인간에게 운명이 있을까요? 이 주제는 동서양의 현인들이 수천 년간 해답을 찾기 위해 갈구한 주제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비극이라는 장르를 탄생시키며 인간은 정해진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로 보았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사주라는 개념을 만들어 운명은 주어진 사주대로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문화권이든 인간을 운명에 굴복하는 존재로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운명을 극복할 수 있는 존재로 본 것입니다.

사주에는 개운(開運) 법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운명 중 흉(兇)한 것은 피(避)하고 길(吉)한 것은 취(就)하는(나아갈 취) 것입니다. 사주를 다른 술법을 활용하여 흉화를 길복으로 바꾼다는 개념입니다. 개운 법에 따라 여러 가지 술법을 사용하고 나면 운이 열립니다. 즉, 바뀌는 것입니다. 목욕만 해도 개운(開運)이 된다고 옛사람들은 믿었습니다. 그래서 '목욕하면 개운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초지식을 토대로 니시나카 쓰토무라는 일본 변호사가 쓴 "운을 읽는 변호사"라는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정확하게는 제목이 "1만 명 의뢰인의 삶을 분석한 결과, 운을 읽는 변호사"였습니다.

첫 번째 주제가 [오만의 덫]입니다. "‘나 칭찬받을 만큼 고생했어.’라고 생색내면 인간관계가 나빠져 운이 달아난다. 힘든 일, 훌륭한 일에는 오만의 덫이 있다. 노력, 고생이 불행을 부르지 않게 주의하라."

살다 보면 생색내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남들이 내가 잘한 일을 잘 몰라 줄까 걱정이 되어 말로 자신이 한 일을 공치사하게 됩니다. 생색을 내는 것이지요. 영어로는 show off 라고 합니다. 자신을 드러낸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그가 한 행위에 고마워하다가 그의 공치사에 바로 기분이 상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생색내기를 그만두기가 쉽지 않습니다.

"‘모두를 위해 내가 일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거만함이 묻어나 주변 사람들의 반감을 산다. 거만하면 좋은 일을 해도 모두의 미움을 받는다. ‘제가 맡아 하겠습니다.’라고 겸손해야 한다." 저자는 겸손을 강조합니다. 살아오면서 수만 번도 더 들은 말입니다. [겸손하라] 그 당연한 말을 왜 실천하지 못해 또 들어야 할까요. 결국 인격이 부족한 탓입니다.

다음으로 [운이 좋아지는 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운이 좋아지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인격을 갈고닦는 것이다. 훌륭한 인격을 갖추면 좋은 사람이 모인다. 좋은 친구가 늘면 좋은 운을 부르게 된다." 황무지를 쓴 TS 엘리엇은 인생의 목표를 인격의 완성이라고 했습니다. 인격이 완성되면 개운(開運)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교활하게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합니다. "악행으로 교활하게 얻은 성공은 오래가지 못하고 곧 불행해진다. ‘하늘의 법망은 너무 크고 넓어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만 같지만 악인들을 빠짐없이 걸러낸다." 세상을 살다 보면 착한 사람이 복을 받지 못하고 반대로 악한 사람이 잘사는 경우를 수없이 많이 봅니다. 그런 경우 곱씹어 볼 말입니다.

저자는 운의 공통 요소로 우리가 너무나도 잘하는 단어들을 나열합니다. [감사] [보은] [이타] [자비] [겸손] [인덕] [천명]. 이런 표현에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다만 이를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의 부덕을 한탄할 뿐이지요.

책이 깊어지면서 저자만의 독특한 생각이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도덕적 과실(잘못)과 도덕적 부채(빚)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도덕적 과실]이란 법을 어기지는 않았으나 남에게 손해를 끼친 일을 뜻하고 [도덕적 부채]란 인간으로 살면서 입은 다른 사람의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유교문화권 사람답게 도덕적 부채를 세 가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 나라의 은혜, 둘째 조상의 은혜, 셋째 스승의 은혜를 들고 있습니다. 군(君) 사(師) 부(父) 를 하나로 보는 사상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꼭 유교 문화를 들먹이지 않아도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의 여러 가지 은혜를 입고 있음은 틀림없습니다.

저자는 특히 조상의 은혜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싶어 했습니다. 내가 있으려면 부모님 2분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은 각 부모님, 즉 2X2= 4분이 있어야 합니다. 3대조는 4X2=8, 4대조는 8X2=16, 5대조는 16X2=32, 6대조는 32X2=64, 7대조는 64X2=128, 8대조는 128X2=256, 9대조는 256X2=512, 10대조는 512X2=1024. 이 모든 분들 중에 어느 한 분이라도 다른 생각을 가져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자식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제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10대조만 거슬러 올라가도 2046명에게 감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 제가 도덕적 부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으로 직원으로서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직원이 득실만 따지면 고용주는 쓸쓸해지나, 직원이 열심히 일하면 무언가 해주고 싶다. 100만큼 일하고 80만 바라면 행운이 붙어 120으로 돌아온다. 100을 일하고 120을 요구하면 결국 실직하여 100마저 잃는다."

아마도 저자가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많은 직원을 고용하다 보니 자신에게 섭섭하게 한 직원들이 더러 있어 이런 생각이 든 것 같습니다. 저도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은 고용주에게도 적용될 것 같습니다. "80만큼 일을 시키고 100을 주면 120만큼 회사가 성장하지만 100만큼 일을 시키고 80만 주면 회사가 결국 어려워 진다." 결국 서로가 인격으로 일하고 인격으로 보상해 줄 때 개운이 될 것입니다.

저자는 개운을 하기 위해서는 인격을 닦아야 한다고 누누이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인격을 어떻게 닦을 수 있을까요. 저자는 어느 스님의 말을 인용합니다. “마음은 갈고 닦을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우선 눈에 보이는 것을 제대로 갈고 닦으세요.”

최근에 현 텍사스 대학교 총장이자 전 해군 대장인 William McRaven의 졸업 연설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으세요? 침대 정돈부터 똑바로 하세요.(중략) 침대를 정돈하는 사소한 일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게 됩니다. 여러분이 사소한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면 큰일 역시 절대, 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침대 정돈]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인격 수양]으로 이어지고 그의 운을 열어 줄 것이라는 말입니다.

저자는 특히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합니다. 커뮤니케이션 요령에 대해 "[온전히 상대를 받아들이는 태도]야말로 좋은 커뮤니케이션의 근간이 된다. '그냥 묵묵히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수없이 많이 들은 '경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앵무새 말하기라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상대가 마침 '비가 와서 말이야'하고 말하면 이쪽도 '비가 왔어'하고 대답합니다. '곤란하네'하고 말하면 '그러게 말이야'라고 대답합니다. 야구의 캐치볼과 같습니다. 이것이 앵무새 말하기입니다. 그러나 변호사나 교사는 상대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해서 앵무새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대목에서 몇 달 전 어느 분에게 들은 [봉천동 영숙이]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봉천동에 영숙이가 살았답니다. 그녀는 그다지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남편에게는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 인기 만점이었습니다. 요샛말로 하면 커뮤니케이션의 달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녀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배우려고 연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는 말이 별로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면 마지막 소절을 반복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누가 돈을 벌었다고 이야기하면 "돈을 벌었단 말이야." 또 누가 돈을 잃었다고 하면 "돈을 잃었단 말이야"라고 끝 말만 따라 하였다는 것입니다.

[앵무새 따라 하기]와 [봉천동 영숙이]는 쌍둥이입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커뮤니케이션 비결은 매한가지인 모양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너무나도 잘 압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지극히 어렵습니다. 주말에 1박2일로 북경을 다녀왔습니다. 가기 전에는 [봉천동 영숙이]로 지내자고 다짐하였지만 결국은 말 많은 [서초동 조 변호사]의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운을 읽는 변호사]의 핵심은 [겸손]입니다. 남을 높이고 나를 낮추는 겸손이야말로 흉(兇)한 것은 피(避)하고 길(吉)한 것은 취(就)하게 하는 개운법의 으뜸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소개한 친구 이상웅 회장에게 이 편지를 통해 감사드립니다.

곧 구정이 다가옵니다. 2018년을 어떻게 개운(開運)하실 것인가요. '겸손'만이 정답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8.2.12.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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