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140번째 편지-여러분은 어떤 공포증을 가지고 계신가요?

 

   여러분은 어떤 공포증을 가지고 계신가요?

  저는 2010년4월15일 브라질 살바도르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대한항공 비행기에 일행들과 함께 올라탔습니다. 브라질까지 가는 직항편이 없어 로스앤젤레스에서 갈아타야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까지는 약 10시간, 비행기는 이륙준비를 마치고 서서히 활주로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육중한 몸체에 속도를 붙이며 활주로를 달리다가 드디어 하늘로 비상하였습니다. 이제 몇 분후면 정상궤도에 돌입할 것이고 그때까지는 전 승객이 안전벨트를 매고 이동을 금지해 달라는 스튜어디스의 익숙한 멘트가 귀에 들려왔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숨이 막히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도가 좁아지고 답답하여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당장이라도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 동안 수없이 비행기를 탔지만 한 번도 겪지 못한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하는 수없이 안전벨트를 풀고 스튜어디스를 불렀습니다. 스튜어디스에게 사정을 설명하였으나 그녀 역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가지고 있는 약 중에 도움이 될 만 한 것은 겨우 진통제 종류인 타이레놀뿐이었고 그것을 먹어도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비행기 안을 걸어보라고 조언하였습니다. 두세 번 비행기 안을 걸어 다녔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저도 스튜어디스도 해결책을 찾지 못해 서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 순간 몇 달 전 병원에서 MRI를 찍다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 고생한 기억이 났습니다. MRI를 찍으려면 큰 통속에 들어가 찍어야 하는데 갑자기 폐소공포증이 나타나 결국 당일에는 찍지 못하고 다음날 아내와 같이 가서 아내가 통속에 있는 저의 머리에 대고 무어라 이야기해주는 임시처방을 써서 간신히 찍은 일이 생각난 것입니다. 아하! 또 폐소공포증이 증세를 드러낸 모양이구나! 그러나 비행기에서 내릴 수도 없고 아무런 약도 없고 큰일은 큰일이었습니다. 저는 하는 수 없이 스튜어디스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였습니다. 저에게 신경을 다른데 쓰게끔 말을 좀 걸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난생 처음 본 스튜어디스가 폐소공포증 환자에게 무릎을 꿇고 30분간 이런저런 화제로 말을 걸며 증세를 진정시키는 모습은 프로정신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대 우여곡절 끝에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하였고 그곳에서 일행들이 가장 먼저 챙긴 것은 수면제였습니다.

  저는 그 후에도 비행기를 탈 때마다 비슷한 증세가 나타나 국내선 비행기도 앞자리보다는 중간쯤 통로 쪽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약을 가지고 있으면 그런 증세가 덜한데 우연히 약이 없으면 꼭 그런 증세가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행기를 탈 경우가 생기면 반드시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처방하여 가지고 탑니다.

  가끔 뉴스를 보면 저 같은 폐소공포증을 겪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보도 되는 것을 보고는 약간의 위안을 삼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전문가에 의하면 인간이 겪는 공포증은 약 500가지쯤 된다고 합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만한 뱀공포증, 고소공포증, 광장공포증 등 수많은 공포증이 있다고 합니다. 저도 불과 몇 년 전 만해도 저에게 폐소공포증이 있는지 몰랐으니까요. 그런데 딱히 병원을 가기도 그렇고 간다고 해서 특별한 치료법이 있는 것도 아니라 비행기 탈 때 마다 약을 가지고 타면서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 주기를 기도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 말에 의하면 가장 좋은 방법은 노출치료라는 것입니다. 폐소공포증에 겁을 내어 그런 상황을 피하려 하지 말고 자꾸 그런 상황에 노출되어 공포에 서서히 익숙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치료법 치고는 좀 무식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속는 셈 치고 비행기 탈 상황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고 가급적 약을 먹지 않고 버티면서 2년을 지냈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 기분이 이상하여 약을 먹은 적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자신감이 붙고 약 먹는 횟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저는 이 월요편지를 쓰는 시간, 로스앤젤레스에 있습니다. 고3인 아들아이 문제로 잠시 미국에 왔습니다. 이번 비행기를 타면서 2년 전 상황이 떠올랐습니다. 다행히 잘 버텨냈습니다. 물론 약을 가지고 탔지만 말입니다. 노출치료가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도의 문제이지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공포 내지는 기피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한동안 전화 거는 것이 싫었습니다. 전화기피증이라고나 할까요. 만날 약속을 하려 전화를 하였다가 거절당하는 상황이 싫어 가급적 전화를 잘 걸지 않았습니다. 골프 약속도 스스로 잘 잡지 않지요. 다른 사람이 만들면 같이 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골프 약속을 위해 여러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가 선약이 있다는 말을 듣는 일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또한 건배사 하기를 싫어하였습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건배사를 하는 것이 불편하였고 특히 재미나게 해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에 건배사가 더 어색해지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지내며 강제적으로 건배사를 수십 번 하여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소위 노출치료를 받게 되어 그 강박증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마칠 때는 ‘건배사의 달인’ 줄여서 ‘건달’이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전화걸기 싫어하는 기피증은 아직 완벽하게 극복되지는 않았지만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누구나 완벽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어떤 분은 미래를 꿈꾸는 일에 대해 강박증 내지 공포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누구는 한 가지 목표를 정하고 이것을 달성하는 것이 힘들어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을 지도 모릅니다. 저는 다행히도 이것에 대해서는 열정을 가지고 있지요. 이처럼 우리는 모두 무엇에 대해서는 좋은 호감 내지는 열정을 가지고 있고 반대로 그 무엇에 대해서는 기피, 강박증 나아가 공포증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병원에 가야할 정도라면 다른 처방이 필요하겠지만 그저 낮은 수준의 문제라면 노출요법이 가장 효과적일지 모르겠습니다. 싫더라도 계속해보는 것 말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무슨 일보다 싫은 분은 노출요법으로 보름만 일찍 일어나면 해결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어떤 공포증을 가지고 계신가요. 없으시다면 너무 다행스럽지만 혹시 가벼운 수준의 것이라도 가지고 계신다면 저처럼 자꾸 노출하며 대면해 보세요. 의외로 좋은 결과를 얻을 지도 모릅니다.

  인생에 대해 공포심을 가지고 계신다구요. 인생에 대해 직면하는 것이 인생에 대한 공포심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2.5.14. 조근호 드림

<광고>

  제가 그 동안 쓴 월요편지를 묶어 펴낸 ‘오늘의 행복을 오늘 알 수 있다면’(21세기 북스 출판)이 여러분들이 호응해 주신 덕분에 3쇄를 찍었습니다. 인세는 좋은 곳에 쓰려고 고민 중입니다. 계속 응원해 주십시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이전글 목록으로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