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139번째 편지-자녀들이 넘어졌을 때 필요한 것들

자녀들이 넘어졌을 때 필요한 것들

 지난해 연말 대기업에 취직한 딸아이가 며칠 전 문득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아빠, 직장 그만 다니면 안 될까?” 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압니다. 그토록 들어가고 싶어 하였던 직장, 또한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그 아이가 직장에서 힘들고 지쳐 이제는 버틸 힘이 없나 봅니다. 밤 12시를 넘겨 퇴근하는 것이 일상사가 된지 오래 이고 긴급 작업 때문에 밤을 새우고 들어오는 일도 낯설지 않습니다. 물론 주말에도 당연히 출근합니다. 무슨 이런 직장이 있나 싶지만 엄연한 현실입니다. 게다가 처음이라 실수투성이 일 테니 상사로부터 야단도 많이 맞나 봅니다. 그것도 눈물이 쏙 나오게 호되고 매섭게 맞아 가슴 한 구석에 멍이 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멍이 깊어져 상처가 되고 진물이 날 정도가 되자 “아빠, 직장 그만 다니면 안 될까?” 하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 아이에게 무슨 말이 위로가 될까요. ‘처음 직장 생활은 다 그래. 조금 지나면 익숙해 질 거야.’라는 뻔한 정답이 위로가 될까요. ‘무슨 그런 직장이 있니. 착취다 착취. 상사는 또 왜 그러니, 잘 가르쳐 주지. 신입사원이 뭘 그렇게 잘할 거라고 야단을 치니.’ 이런 맞장구가 그 아이의 마음을 달래는데 도움이 될까요. 저는 아빠로서 또 새로운 문제풀이를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아이가 가진 고민의 깊이와 넓이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같이 힘들어 해주고 같이 풀어내는 성숙함을 보여주지 못하고 남의 일 이야기하듯 ‘그래 그만둬.’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저는 압니다. 딸아이가 저의 퉁명스러운 대꾸가 가진 의미를 읽어 낼 정도로는 어른이 되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도 그 아이는 섭섭하였을 것입니다. 딸아이가 저에게 힘들게 이야기한 고민을 발로 뻥 차버리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이내 후회하였지만 벌써 내뱉은 말은 그 아이의 가슴을 통과해 저만치 달려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딸아이는 천성이 낙천적이고 명랑합니다. 며칠이 지난 지금은 아빠로부터 들은 퉁명스러운 한마디도 모두 잊어버리고 씩씩하게 근무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이야기 하였어야 합니다. 

“아빠가 처음 검사가 되었을 때의 일이란다. 초임검사로서 아빠의 자신감은 대단하였지. 당시 소년사범 수사를 담당하던 서울지검 형사5부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부장검사님이 작년도 소년사범의 현황을 분석하고 그 대책을 강구해 보라는 지시를 하였던 거야. 나는 보고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몰라 한 달을 끙끙댄 끝에 10여 페이지 문건을 만들어 갔지.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엉성한 보고서이지. 부장검사님은 그 보고서를 한번 훑어보시더니 바로 서랍 속에 넣으시는 거야. 나는 그 순간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지. 그러나 투덜거리기만 하였어. 어떻게 보고서를 써야 하는지 잘 가르쳐 주지도 않고 써보라고 하고는 애써 써왔는데 수고하였다는 한마디 말도 없다니. 아마도 이런 마음이 계속되었으며 아빠의 검사생활은 빨리 끝났을지 모르지.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이 채 못 되었을 때, 부장검사님 위에 계시는 차장검사님께서 부르셔서 들어갔더니 이렇게 물으시는 거야. ‘조 검사, 일기 쓰나.’ ‘안 쓰는 데요.’ ‘그러니까 문장이 이 모양이지. 이게 문장이야.’ 상사에게서 치욕적인 말을 듣고 나온 거야. 아빠는 그날의 충격을 검사를 마치는 순간까지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단다. 다시는 이런 평가를 받지 않겠다는 마음이 그 후로 제법 보고서를 쓴다는 평가를 받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지. 지금 무엇을 틀리고 잘못하여 야단맞는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단다. 긴 직장생활 나아가 너의 인생에 오히려 약이 되지. 너는 아마도 십 년 후 오늘을 회상하며 그때 그 매섭던 상사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할게다.” 

 지난 토요일이 어린이 날이었습니다. 이미 아이들이 훌쩍 커버려 어린이는 아니지만 제 가슴 속에는 여전히 어린이들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어린이가 완벽하였으면 하고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린이는 틀리고 실수하고 넘어지면서 어른이 되어간다는 당연한 사실을 왜 자주 잊어버리는 것일까요. 

 아직도 자주 넘어지는 딸아이가 붙잡고 일어날 수 있는 지팡이를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월요편지를 쓰기 위해 지난 날 메모하였던 것을 뒤적이다가 발견한 글의 몇 대목이 그 아이에게 지팡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남이 고맙게 해준 일만 평생 마음에 두는 사람은 행복하지만 섭섭하게 해준 일만 마음에 담는 사람은 불행하다. 남의 잘못을 잘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행복하지만 자신의 잘못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지만 미워하는 사람이 많은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해야 할 일이 많음을 긍지로 여기는 사람은 행복하지만 그것을 불만으로 여기는 사람은 불행하다.”

 ‘이런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글에 있는 몇 대목입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힘든 시기를 지내고 있는 딸아이에게 지팡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린이날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다 자랐든 아직 어리건 자녀는 항상 어린이입니다. 아이들 중에는 넘어졌다가 훌훌 털고 일어나는 아이도 있지만 넘어져 우는 아이도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우는 아이를 보고 속상해 오히려 야단치기도 하지만 그 순간 그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아빠의 손이요 엄마의 가슴입니다. 

 먼 옛날 제가 넘어져 울고 있을 때 저를 일으켜 주신 분은 아버지셨고 흙을 털고 상처를 호호 불며 울고 있는 저를 꽉 껴안아 주신 분은 어머니셨습니다. 그러기를 몇 차례 그 후 저는 넘어져도 울지 않을 수 있었고 더 이상 넘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기억나시나요. 이런 어린 시절이.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2.5.7. 조근호 드림

 

<광고>
제가 그 동안 쓴 월요편지를 묶어 펴낸 ‘오늘의 행복을 오늘 알 수 있다면’(21세기 북스 출판)이 여러분들이 호응해 주신 덕분에 3쇄를 찍었습니다. 인세는 좋은 곳에 쓰려고 고민 중입니다. 계속 응원해 주십시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이전글 목록으로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