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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7번째 편지 - [걸 없는 2018, 밈으로 이룬다.]

 

월요편지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지난 한 해 부족한 월요편지를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18년 1월 1일을 어떻게 맞이하셨나요. 어제 어떤 분이 건배사를 하시면서 "60대 중반이 되면서 더이상 1월 1일이 가슴 뛰지 않더라"고 고백하시더군요. 그래도 우리는 1월 1일을 설레게 만들어야 하고 가슴 뛰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년 구호를 정합니다. 2017년은 "누군가를 설레게 하자"였습니다. 이 구호 때문에 2017년은 늘 설렜습니다. 그 구호 때문에 2017년 조근호의 인생이 얼마나 설렜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설렘이라는 단어를 늘 의식하며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얼마 전부터 2018년은 어떤 구호로 정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2018년은 개띠의 해입니다. 저의 학교 친구들은 모두 1958년생, 그 유명한 58년 개띠들입니다. 저는 한해 먼저 학교를 들어간 1959년생입니다.

친구들은 올해가 환갑입니다. 다들 6학년이 되었다고 인생의 무상함을 이야기하곤 하지요. 다행히 저에게는 환갑까지 1년이 남았습니다. 학창시절에는 친구들보다 한살이 적은 것이 부담되어 몇 년생이냐고 물으면 대학교 입학 연도를 뜻하는 77학번이라고 말하곤 했지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친구들보다 한 살 적은 것이 퍽 위안이 됩니다. 환갑 전의 한 해 2018년을 덜 후회하는 한 해로 만들고 싶습니다. 어차피 2019년 환갑이 되면 인생을 후회할 테니 덜 후회하는 연습을 해보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2018년 구호를 "덜 후회하는 2018" "덜 아쉬운 2018" 등등으로 떠올리다가 재미난 구호를 생각해 내었습니다. 우리는 후회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했을 걸." 후회하지 않는 것은 "걸"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구호를 ["걸"없는 2018]로 정하였습니다.

구호는 정해졌으니 문제는 그 안에 무엇을 채워 넣느냐가 남았습니다. 각종 계획 말입니다. 우리는 매년 강한 의지를 가지고 계획을 세우지만 잘 안되었지요. 사람의 [의지]가 수수깡처럼 약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의지]대신 그 무엇이 계획을 척척 이루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 달 전 저는 밈(meme)이라는 개념에 확 꽂혔습니다. 들어보셨나요. 저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1976년 영국의 유명한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책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개체가 진화할 때 유전자가 생식을 통해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복제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화도 모방을 통해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복제된다고 주장하면서 생물의 복제단위 "Gene(유전자)"의 대응개념으로 그리스어 "mimeme(모방)"에서 문화의 복제단위 "Meme(밈)"을 조어해 내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표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복제단위 복제방식 복제자
생물정보 유전자(gene) 생식 사람
문화정보 밈(meme) 모방 사람


그런데 문제는 밈이 사람의 의지와 무관하게 복제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밈은 잘 복제되지만 어떤 밈은 잘 복제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강남스타일] 노래에서 싸이가 ["강남스타일"이라고 부르는 그 한 구절]은 그 자체가 밈입니다. 그 밈은 제작자도 놀랄 정도로 전 세계에 퍼져 대히트를 쳤습니다. 마케팅의 성공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도킨스는 밈이 스스로 복제된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번 월요편지 첫머리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인사드렸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인사말 자체가 밈입니다. 왜 우리는 너 나할 것 없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인사하는 것일까요. "금년 후회 없이 사십시오."라는 새해 인사는 왜 복제되지 않았을까요. 한때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인사말은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를 대체하지는 못하였습니다.

밈은 처음에 누군가가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 후에는 밈 자체가 스스로의 힘으로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정확하게 말하면 뇌에서 뇌로 건너뜀으로써 전파되었습니다. 그래서 도킨스는 "밈을 숙주를 감염시키는 기생충"에 빗대어 설명하였습니다. 숙주는 당연히 사람이지요. 밈은 사람의 의지와 무관하게 모방이라는 방식을 통해 복제된다는 것입니다.

밈 개념은 그 후 리처드 브로디의 [마인드 바이러스](1996년)와 수전 블랙모어의 [밈](1999년)을 통해 확산되었습니다. 수전 블랙모어는 "우리의 자아는 귀중한 영혼이 아니라 밈들의 집합이다. 우리와 다른 동물 종들을 구별 짓는 것은 지능이 아니라 모방 능력이다. 우리 인간은 밈 머신일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최근 이 두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저는 밈이라는 개념이 과학적으로 얼마나 정교한 이론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밈을 공부하면서 재미난 생각이 들었습니다. 밈은 저절로 사람의 뇌에서 사람의 뇌로 복제된다고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개념은 [저절로]라는 개념입니다. [의지]가 별 역할을 못 한다는 말입니다.

[2018년 1월 2일의 조근호]는 무수히 많은 [밈]들이 저에게 복제된 결과물입니다. 그 밈 중에는 누군가 만들어 저에게 복제시킨 것(제가 사용하는 마우스)도 있고 제가 만들어 스스로에게 복제시킨 것(월요편지)도 있습니다. [복제]는 일반적으로 A에게서 B에게로 모방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저는 달리 생각하여 '2018년 1월 1일의 조근호'에게서 '2018년 1월 2일의 조근호'로 모방되는 것도 복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우스 사용법]은 누군가가 조근호에게 모방을 통해 복제시킨 것이지만 [매주 월요일 아침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월요편지를 쓰는 습관]은 '2008년 3월 22일의 조근호'가 창안하여 '2018년 1월 2일의 조근호'에게 까지 복제시킨 것입니다.

여기까지 논리를 따라오셨나요. 2018년 첫 월요편지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입니다. '2018년 1월 2일의 여러분 개인'은 [의지 덩어리]라는 생각을 버리고 [밈 덩어리]라는 생각을 가지세요. 그래야 인생이 가벼워집니다. 제가 무슨 의지를 가지고 목표를 세운 것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습관은 제 몸처럼 제 것이 되었습니다. 그 습관들이 밈입니다.

2018년을 후회 없는 인생으로 살고 싶으십니까. 제 표현대로 ["걸"없는 2018]으로 살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복제가 잘되는 즉, 전염성이 높은 밈을 설계하십시오. '강남스타일' 같은 것 말입니다. 어떤 것이 그런 밈이냐구요. 여러분의 삶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중에 자신이 만들어 오늘까지 유지하고 있는 습관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복제력이 높은 여러분 스스로 만든 밈입니다. 그런 밈을 잘 찾아 그 특성을 분석해 보십시오. 여러분 개인이 왜 그 밈에 복제되었는지 알게 되실 것입니다.

자기계발 전문가들이 스스로를 복제환경에 노출시키도록 여러가지 조언을 하기도 합니다. [30일간 똑같은 한가지 해보기], [10가지 목표를 정하고 매일 반복해서 노트에 적기]. 이 모든 것은 복제 가능성을 높이려는 시도들입니다. 2018년 여러분의 인생을 의지가 아닌 밈이 바꾼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2018년 밈들을 설계하십시오. 그래서 제 구호는 ["걸"없는 2018, 밈으로 이룬다]입니다.

여러분이 밈을 믿든 안 믿든 수많은 밈들이 여러분에게 복제될 것이고 여러분은 그 밈을 다른 사람에게 복제시킬 것입니다. 벌써 여러분도 모르게 여러분은 제가 설명한 [밈이라는 개념]에 복제되셨습니다. 누군가는 오늘 [밈이라는 개념]을 다른 분에게 복제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2018년 1월 3일의 여러분'에게 복제시키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8.1.2.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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