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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번째 편지 - [행복한 인생]에 대한 자문자답

 

저는 늘 행복한 인생에 대해 고민합니다. 그것만이 저를 더 나은 인생으로 나아가게 하니까요. 저는 자문자답하기를 좋아합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질문) 인생에서 행복하려면 욕망을 줄여야 한다고 하잖아. 그런데 잘 줄여지지가 않아. 어떻게 하여야 하는 거야.

(답변) 언젠가 방송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지. "불행은 하루에 다섯 가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여섯 가지를 하겠다고 계획을 세우고는 결국 한 가지를 하지 못한 다음, 그 못한 한 가지를 아쉬워하는 것이고, 행복은 하루에 다섯 가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네 가지만 하고 남은 시간에 자신이 해낸 네 가지를 음미하는 것 아닐까요."

행복과 불행에 대해 이렇게 그럴싸하게 이야기는 하지만 정작 내 삶으로 돌아와서는 하루에 한가지라도 더하려고 아등바등대지. 약속과 약속 사이에 한 시간이 남으면 그 시간에 무엇이라도 집어넣으려고 머리를 빠른 속도로 회전시키고는 반드시 30분짜리 일을 생각해 내지.

그런데 얼마 전 이런 생각을 했지. 해외여행을 해보면 가보고 싶은 곳이 많잖아. 그러나 하루에 기껏 하여 네다섯 군데 갈 수 있지. 그 각각의 장소도 사진찍기를 위해 겨우 이삼십 분 머물지. 이렇게 간 곳을 기억이나 할 수 있을까. 또 그렇게 찍은 사진을 몇 번이나 끄집어내서 바라볼까.

나는 과연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했지. 여행의 중심은 사진을 찍는 내가 되어야 하는데 반대로 사진 찍히는 대상이 되어 버렸잖아. 여행에서 내가 무엇을 보고 듣고 느껴야 하잖아. 그런데 그럴 여유가 전혀 없어. 여행도 삶도 무엇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 아닐까?

나는 "행복은 하루에 다섯 가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네 가지만 하고 남은 시간에 자신이 해낸 네 가지를 음미하는 것 아닐까요."라고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정확한 표현은 아닌 것 같아.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매 순간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고 그것을 음미하는 것]이지. [매 순간] 음미하여야 해.

지금 월요편지를 쓰고 있는 이 순간도 이 순간을 음미하고 느끼고 즐겨야 한다는 것이지. 지금 시간 2017년 12월 18일 아침 5시 6분. 옆에서 재즈 가수 나윤선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가족 모두 잠든 이 시간,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여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이 순간을 음미하여야 한다는 것이지. 그래야 행복을 느낄 수 있어. 월요편지 쓰기를 숙제처럼 해치우는 것은 관광지에서 사진 찍고 이동하고 사진 찍는 행위와 다를 바 없지.

하루에 정해진 일을 하면서 그 일을 느끼고 음미할 수 있다면 일의 개수는 중요하지 않지. 하루에 한 가지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을 진정으로 느끼고 음미하면 하루 전체가 행복하겠지만 하루에 열 가지 일을 하여도 떠밀려 숙제하듯 하고 나면 몸은 파김치이고 마음은 덧없고 허전하지.

(질문) 맞는 말 같네. 욕망의 개수 문제는 그렇다고 치고 각 욕망의 목표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어. 누군가 나에게 일의 목표를 100%에 두지 말고 80% 정도에 두라고 조언했던 적이 있었지. 그래도 여전히 100% 달성하고 싶어지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답변) 지난달 골프를 치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었지. 우리는 퍼팅을 할 때 안 들어가면 아쉬워 하다못해 자책까지 하잖아. PGA 투어의 세계적인 프로선수들의 6-7미터 퍼팅 성공률이 얼마인지 알아. 10-11%야. 즉 열 번 하여 한번 들어간다는 뜻이지. 세계적인 프로가 그러니 우리는 어떨까? 2미터 성공률은 어떨까. 세계적인 프로들의 성공률은 40-50%야.

이렇게 성공 확률이 떨어지는데 우리는 퍼팅할 때마다 실패하였다고 자신을 자책하는 것이야. 그래서 나는 생각을 바꿨지. 확률이 높은 쪽에 배팅하기로 한 거야. 퍼팅 성공이 아닌 퍼팅 실패를 목표로 삼은 것이지. 그러니 퍼팅에 실패하면 목표를 달성하여 기분 좋고, [우연히]도 퍼팅에 성공하면 스코어가 좋아져 기분 좋고 이래저래 기분이 좋아졌지. 실제로 이렇게 목표를 세우고 골프를 해보니 퍼팅 성공률이 더 높아졌지.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의 성공률을 100%로 삼느냐 80%로 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 성공확률을 계산한 후 확률이 높은 쪽에 배팅하자는 말이야. 그러면 오히려 전체 성공률이 높아지는 것 같아. 이론적 배경은 없지만 감각적으로는 맞는 것 같아. 마음도 편안해지고.

(질문) 점점 그럴싸한 말을 하는데. 그러면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어보지. 많은 현자들이 [현재를 즐겨라]라고 말하잖아. 그런데 사실 살아보면 현재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지 못하고, 과거에 대한 걱정, 미래에 대한 염려를 더 많이 하잖아.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답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늘 강조하던 [carpe diem]이 바로 그 뜻이지. 아마 [현재를 즐겨라]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러나 현재가 무엇일까? 바로 이 순간. 그런데 그 순간은 금방 지나가 버려 잡을 수 없는데, 어떻게 현재에 살 수 있다는 말일까? 처음 질문에 대한 답으로 매 순간을 음미하라고 했지. 그런데 말이 좋아 매 순간을 음미하라고 했지만 어떻게 매 순간을 음미할 수 있을까?

그런데 나는 이런 상상을 했지. 겨우 두발을 디딜 수 있는 정도 크기의 바위 위에 서 있다고 상상을 해 보는 거야. 그런데 그 바위가 땅에서 불과 10-20센티미터 높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아무런 두려움 없이 그 바위 위에 잘 서 있을 거야. 그런데 그 바위가 10미터 높이라고 생각해 봐. 잘 서 있을 수 있을까? 언제 떨어질지 몰라 불안할 거야. 네가 서 있는 [현재]라는 바위가 바로 그 모습이지. 그러니 너는 현재에서 편안하지 못하고 늘 불안하지.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거야. 떨어질까 봐.

그런데 과거가 걱정스러워 고개를 돌려 10미터 아래를 내려다보고 미래가 염려되어 고개를 숙여 10미터 아래를 또 쳐다보지. 마음이 어떨까. 가만히 서 있어도 편치 않은데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는 순간, 떨어질 위험에 빠지고 말지. 그러다가 떨어지기도 하지. 우울증과 범 불안증은 다 이런 추락에서 비롯된 것이지.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두발 밖에 디디지 못하는 바위의 크기를 키워야 해. 만약 그 바위가 10평쯤 된다면 10미터 높이에서는 편안할 거야. 그런데 바위의 높이가 100미터가 된다면 10평 넓이도 불안해질 거야 100평쯤 되어야 하지 않을까. 즉 바위의 높이가 높을수록 바위의 넓이가 넓어야 한다는 말이지. 바위의 높이는 우리의 나이와 비례하지, 나이가 들수록 바위는 점점 더 높아져.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삶이 불안하고 두려운 거야.

어떻게 하여야 할까? 개인마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마음공부를 하여야 하지. 누구는 신앙으로, 누구는 인격 수양으로, 누구는 명상으로 마음공부를 하면 저절로 바위의 넓이도 넓어진다네. 나는 어떻게 키우냐고 그리스 로마 고전을 읽으며 마음공부를 하고 있지.

"행동이나 말에서 교만의 길을 걷는 자가 있다면, 불운한 교만 때문에 사악한 운명이 그를 잡아갈지어다. 그가 이익을 정당하게 얻지 않고, 불경한 짓을 삼가지 않고, 신성한 것들에 더러운 손을 얹는다면. 누가 감히 그런 짓을 하고도 신들의 화살로부터 목숨을 지킬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리?" 그리스의 비극작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 나오는 한 구절이야. 이 구절이 나의 바위를 조금이라도 키워줄 거라 믿지.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7.12.18.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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