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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번째 편지 - FORMULA E 뉴욕 대회를 가다

 

저는 지난주 일요일 뉴욕에 있었습니다. 뉴욕시간으로 2019년 7월 14일 일요일 오전 10시, 한국시간으로 2019년 7월 14일 일요일 오후 11시. 물리적 시차는 13시간. 그런데 역사적 시차는 얼마나 될까요?

7월 1일 일본 정부가 반도체 소재 3대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 발표를 한 지 2주가 흘렀습니다. 그 시각 제가 가입한 단톡방에는 이 문제에 대한 전문가의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대일청구권 문제로 몸살을 앓던 1965년으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시각, 뉴욕시간 일요일 오전 10시 뉴욕 브루클린 스트리트 서킷에서 열린 FORMULA E Chapmpionship Season 5(2018-2019 시즌)의 마지막 경기를 관람하러 가 있었습니다.

FORMULA E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FORMULA ONE의 전기자동차 버전입니다. 이 대회는 2014년 9월 베이징 대회를 시작으로 5년째 이어 오고 있습니다. 2018-2019 시즌은 2018년 12월 사우디아라비아를 시작으로 2019년 7월 뉴욕까지 12개국에서 13번 레이싱이 열렸습니다. 뉴욕에서 두 번 대회를 하여 13번이 되었습니다.

개최국을 보면 사우디아라비아, 모로코, 칠레, 멕시코, 홍콩, 중국, 이태리, 프랑스, 모나코, 독일, 스위스, 미국 등 5개 대륙이 다 망라되어 있습니다.

FORMULA E는 현재 5살이고 FORMULA ONE은 70세입니다. 그러니 늦둥이 손자뻘입니다. FORMULA ONE이 21개국인데 비해 5년 만에 FORMULA E는 12개국으로 확장되었으니 그 성장 속도가 대단합니다. 아마도 전기자동차라는 시대 흐름에 잘 편승한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FORMULA E KOREA 나준 본부장의 안내로 경주용 자동차 차고를 방문하는 특혜를 누렸습니다. 방문한 팀은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는 Jean-Éric Vergne 선수가 소속된 Techeetah Formula E Team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팀의 소유자는 중국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 선수가 얼마나 유명한지 잘 몰랐습니다. 그저 현재 1위라니까 같이 사진을 찍었고, 그 선수가 타는 경주용 자동차 옆에 서서 포즈를 취했습니다. 그러다가 살짝 자동차를 만지게 되었습니다. 마케팅 책임자가 놀라 주의를 주며 '자신도 절대 만지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에게는 이 자동차가 절대적 존재인 모양입니다. 저는 이 자동차는 무엇으로 만드냐고 물었습니다. 절대적으로 가벼워야 하므로 대부분 탄소섬유로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FORMULA E는 미래 산업의 상징인 전기자동차와 탄소섬유를 양대 축으로 삼고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대회는 스포츠이자 오락입니다. 재미있어야 하죠. 대회 규정을 모르면 어떤 대회도 재미를 느끼기 쉽지 않습니다. 이 대회의 경기장은 도시마다 사정에 따라 1.9 내지 3.4킬로미터입니다. 그리고 배터리 한계가 1시간이라 45분간 경기를 합니다. 뉴욕 대회에는 총 11개 팀에서 2명씩 선수가 출전하여 총 22대의 자동차가 경쟁을 하였습니다.

이번 시즌은 22명이 13번 레이싱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점수는 어떻게 매길까요. 한번 레이싱에서 10등까지만 25-18-15-12-10-8-6-4-2-1 순으로 점수가 주어집니다. 제가 만난 Jean-Éric Vergne는 12번째 레이스까지 합계 1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나준 본부장의 설명을 들으니 오늘 경기가 매우 재미있습니다. 어제 뉴욕 대회에서 Jean-Éric Vergne가 15위를 하는 바람에 한 점도 획득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어제 경기 기준으로 1위 Jean-Éric Vergne는 130점, 2위 Lucas di Grassi는 108점, 3위 Mitch Evans는 105점. 1위와 2, 3위 선수의 점수 차이는 22점과 25점.

만약 그 차이가 26점 이상이었으면 Jean-Éric Vergne는 오늘 경기와 관계없이 2018-2019 시즌 1위가 확정되어 2년 연속 1위를 하는데 어제 한 점도 얻지 못해 역전 가능성을 남긴 것입니다. 만약 2위 Lucas di Grassi가 오늘 1위를 하고, 1위 Jean-Éric Vergne가 9등 이하를 하면 133대 132로 역전됩니다. 또 3위 Mitch Evans가 1위를 하고 1위 Jean-Éric Vergne가 어제처럼 10위권 밖으로 전락하면 각 130점으로 공동 우승이 됩니다.

오후 4시 드디어 레이싱이 시작되었습니다. 출발 순서는 어제 순위로 결정됩니다. Jean-Éric Vergne 15번째, Lucas di Grassi 5번째, Mitch Evans 2번째. 굉음을 울리며 레이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저로서는 누가 우승을 하여도 똑같았지만 그래도 잠시 인사하고 사진을 찍은 인연으로 Jean-Éric Vergne이 우승하기를 응원하였습니다.

그러나 경기 내내 Jean-Éric Vergne이 10위에 머문 반면 Lucas di Grassi와 Mitch Evans는 선두권입니다. 이대로 계속되면 역전될 수도 있습니다. 관중들은 흥분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Jean-Éric Vergne이 한 단계 올라서 9위입니다. 그러나 9위는 안정권이 아닙니다. 8위를 하여야 자력 우승합니다. 그런데 1단계 올라서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두고 Lucas di Grassi와 Mitch Evans가 1위 탈환을 노립니다. 성공하면 우승입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선두 다툼하던 Lucas di Grassi와 Mitch Evans의 차량이 충돌하여 멈췄습니다. 그 사이에 9위이던 Jean-Éric Vergne이 7위로 골인하였습니다.

Jean-Éric Vergne의 2연패입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가 어처구니없는 경쟁자 두 사람의 과욕으로 싱겁게 끝이 났습니다. 그 바람에 Lucas di Grassi은 18위로 골인하여 시즌 3위, Mitch Evans은 17위로 골인하여 시즌 5위가 되었습니다. 2, 3위를 할 선수들이 순위가 떨어진 것입니다.

난생처음 관람한 FORMULA E 대회가 이리도 박진감 넘치고 재미있을 줄을 몰랐습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즐길 수 있나 봅니다. 저는 아침 차고지에서 Jean-Éric Vergne 선수에게 하였던 말이 기억났습니다.

"내년 5월 서울에서 만납시다."

대한민국도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FORMULA E 대회 13번째 개최국이 되었습니다. 2020년 5월 2일과 3일 두 차례에 걸쳐 서울 잠실 운동장과 그 주변을 트랙으로 하여 열립니다. 서울에서 이 선수들과 차량을 직접 볼 수 있고, 뉴욕에서의 감흥을 서울에서 다시 맛보게 될 것입니다.

FORMULA E 대회에 몰입하느라 국내 문제를 잊고 있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카톡을 열어보니 역시 일본과의 갈등에 대한 각종 주장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모두 나라를 걱정하는 심정에서 쓴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뉴욕에서 바라보는 한국은 미래보다는 과거에 볼모가 된 것 같습니다.

서울과 뉴욕은 물리적 시차가 13시간밖에 되지 않지만 역사적 시차는 수십 년은 넘어 보였습니다. 이 시차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답이 없는 질문지를 바라보고 있는 심정이었습니다.

전기차, 탄소섬유 등등 세계는 미래를 위해 달려가고 있는데…

우리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9.7.22.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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