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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번째 편지-여러분은 물건과 잘 소통하고 계신가요.

여러분은 물건과 잘 소통하고 계신가요.


저는 남성용 재킷입니다. 어느 백화점 매장에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제 모습이 워낙 멋있어 매장에서는 저를 대표상품으로 마네킹에 입혀 놓았습니다. 매장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마다 저를 입은 마네킹 앞에 서서 떠날 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어깨가 으쓱하였습니다. 누가 저를 사줄까 은근히 기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사 한분이 저를 몹시도 탐내시더니 결국 저를 사셨습니다.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의 주인이 생긴 것입니다. 매장의 디스플레이 시절도 좋았지만 누군가를 위해 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가슴 설레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날 저는 그 분의 손에 이끌려 그분 댁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매장에 있던 시절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살게 되리라는 점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제가 살게 된 곳은 매장의 멋진 디스플레이 장소가 아닌 안방 옷장 속이었습니다. 그분이 저를 옷걸이에 걸고 문을 닫자 사방이 깜깜해졌습니다. “이건 아닌데.” 제가 상상한 것도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제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한 듯 제 옆에 걸려있는 다른 재킷이 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상상했던 것과 다르지요. 저도 처음에는 그랬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구매되는 순간 저와 주인은 하나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요.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랍니다. 제가 누군가의 것이 되는 순간, 머지않아 저는 그 누군가로부터 소외되고 말지요.

이 옷장에는 그렇게 소외된 옷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 옆에 있는 파카는 3년째 이 옷장 밖을 구경하지 못하였습니다.” 도대체 이럴 거라면 우리의 주인들은 무엇 때문에 우리를 사는 것일까요? 한두 번 입고 말 것이라면 그냥 우리를 매장에 놔두는 편이 우리에게는 더 나은 것이 아닌가요?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저의 재킷은 저에게 이렇게 속삭이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셨나요. 매장에서는 그토록 예쁘던 옷들이 집에 오면 왜 하나같이 그저 그런 옷으로 바뀌고 마는 것일까요. 옷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 옷을 산 저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이 문제는 옷 이외에 책이나 전자제품 등 우리가 구매하는 모든 물건에 해당되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건들이 매장에 있을 때에는 모두가 한 결 같이 우리의 선택을 받기 위해 갖가지 아름다운 모양으로 디스플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사서 집에 오는 순간 그 물건은 디스플레이의 대상이 아닌 저장, 스톡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장롱 속으로 들어가거나 문짝이 달린 장식장에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매장에서는 디스플레이에 신경을 쓰지만 집에서는 제한된 공간에 많은 물건을 가지고 살다보니 디스플레이보다는 저장이 더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거창하게 철학적으로 이야기해 볼까요. 매장의 물건은 사람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사람이 특정 물건을 구입하는 순간, 필요에 의해 사람과 물건은 하나가 됩니다. 이 순간이 절정입니다. 그러나 집에 가서 장롱이나 장식장에 들어가는 순간 사람과 물건은 서로 차단되고 물건은 사람으로부터 소외됩니다. ‘문짝’에 의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사람과 물건은 서로 소통하지 못하여 결국 일부 물건은 아예 사람에 의해 잊혀 버립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잊어버리고 또다시 물건을 사들이고 소외시킵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됩니다.


저는 현대 건축이 사람과 물건의 차단에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혹시 미니멀리즘을 아시나요. 집에 아무 것도 두지 않고 가급적 공간을 단순하게 만드는 건축의 한 사조입니다. 그러려면 모든 물건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두어야 합니다. 디스플레이란 있을 수 없지요. 모두 저장되어야 합니다.


저는 역발상을 해보았습니다. 사람과 물건이 상호 소외되지 않고 소통하려면 집에 있는 모든 장롱이나 장식장의 문짝을 다 떼어내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면 최소한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어 물건과의 대화가 시작되지 않을까요. 물건이 말을 걸어 올 것입니다. “주인님 저와 데이트 하신지가 1년이 넘었습니다. 조만간 저와 함께 데이트 하시지 않겠습니까. 주인님 사실 제가 옷장 속에서 살아보니 저는 옆에 있는 청색 바지와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다음에 저와 나들이 나가실 때에는 청색바지와 함께 가시면 어떨까요.” 자주 쓰는 중요한 물건들은 잘 디스플레이를 하고 나머지 저장되는 물건도 잘 정리하여 보기 좋게 만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것들은 버려야 할 것입니다. 저장의 공간이 줄어들어 더 이상 많은 물건을 지니고 살 수 없게 될 것이니까요.


기존의 건축을 차단주의 건축이라면 이런 건축을 화해주의 내지 소통주의 건축이라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왜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 구요? 집을 약간 손질하고 싶어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사람과 물건의 관계에 대해 사유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물건 중에는 저의 재킷처럼 불만에 가득 차 있는 것은 없으시겠지요. 그러나 혹시 모르니 옷장을 열고 옷들이 건네려는 말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사람과 물건의 소통에 대한 그들 나름대로의 이야기 거리가 있을 것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2.3.12.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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