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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번째 편지 - 월요편지를 쓰면서 생긴 나쁜 버릇 세 가지

 

가끔 가족들과 다툽니다. 다툰다기보다는 정확하게 말하면 가족들에게 화를 내는 것이지요. 화를 내고는 이내 후회하지만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2008년 3월 대전지검장으로 부임하였을 때부터 2011년 8월 검찰을 퇴임할 때까지 소위 행복경영을 실천하고 있을 때는 회사나 가정 그 어느 곳에서도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행복경영의 최소한이 화를 내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검찰을 퇴임한 후 화내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딸아이에게 심하게 화를 내었습니다. 물론 곧 후회하고 사과의 카톡을 보내 상황을 수습하였지만 서로에게 불편한 감정은 가슴 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 것입니다. 이성적으로는 늘 가족에게 잘 해주려고 결심을 하고 월요편지를 통해 여러 번 반성도 하였지만 상황이 호전되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사람의 성격은 잘 바뀌지 않는다고 하지요. 다만 인격을 함양하여 그 성격이 튀어나오는 것을 제어하여야 한다고들 합니다. 그러면 제 경우에는 인격이 성격을 제어할 만큼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것일까요.

지난 몇 년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제가 화를 내는 상황은 대부분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하려 하였을 때 가족들이 바쁘다고 이야기를 듣지 않는 상황을 참지 못하여 발생하거나 제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 가족들이 집중하지 않고 딴짓을 하는 것을 참지 못해 발생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저는 제가 화를 내는 이유가 가족들이 저에 대한 존경심이 줄어 저를 무시하기 때문에 제가 그 상황을 참지 못하고 화를 내는 것이라고 분석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곧잘 "당신이 더이상 나를 존경하지 않는 것 같아"라는 어린아이 같은 투정을 하곤 하였습니다. 아내는 자신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대답하였지만 곧이 들리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하면 검찰 퇴임 이전에도 이런 상황이 흔히 있었고 그때는 그리 예민하지 않았는데 최근 몇 년에는 이에 대해 예민해졌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찾지 못하다가 얼마 전 딸아이에게 화를 내고 문득 그 이유가 월요편지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나름의 분석은 이렇습니다. 월요편지를 오래도록 쓰다 보니 저도 모르게 어떤 버릇이 생긴 것 같습니다. 첫째 사소한 일상에 대해 깊이 있게 분석을 하고 그곳에서 삶의 의미를 추출해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둘째 이를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하고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면 월요편지를 쓰듯 장황하게 스토리텔링을 하는 버릇도 생겼습니다. 끝으로 제가 쓰고 싶은 시간에 쓰고 발송하고 싶은 시간에 발송하는 월요편지처럼 스토리텔링도 상대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제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하여야 직성이 풀리는 버릇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버릇은 월요편지를 쓰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습관이요 버릇이지만 대화를 하는데 있어서는 그다지 좋은 버릇은 아닌 것 같습니다.

첫째 인간관계를 지나치게 분석하는 버릇은 인간관계를 황폐하게 만들 위험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관계는 사실 머리로 만들기보다는 가슴으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가슴이 한 일을 머리로 분석하다 보면 이해되지 않는 2퍼센트가 남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둘째 스토리텔링은 글을 쓰거나 일방적 강의에서는 효과적인 의사전달 방법이지만 대화에서는 최악의 방법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경청하기보다는 말하기 좋아합니다. 그런데 저 혼자 장시간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으면 상대방이 좋아할 리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일방적 훈시는 절대로 환영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도 모르게 상대방과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월요편지를 낭독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상대방들이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저와 대화 나누는 상황을 불편해하였을 것 같습니다.

특히 상대방에게 지적 우월감을 내비치며 훈계조로 삶의 지혜 운운하며 하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꼰대들이 하는 짓이 되고 말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끔찍하기까지 합니다. 특히 제 아이들에게는 이런 경향이 더 심했던 것 같습니다. 사랑의 한 방편으로 생각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제가 원하는 시간에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 것은 어찌 보면 폭력입니다. 대화 상대방은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제 이야기를 피하고 싶은 심정적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이런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대화를 가장한 언어 고문입니다. 이것도 가족, 특히 아이들에게 심했을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그간의 대화가 섬뜩하게 느껴졌고 앞으로의 대화가 두려워졌습니다. 물론 모든 대화가 다 부정적인 것은 아니었겠지만 저의 대화방식이 이런 위험을 지니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매사 원인을 알아야 처방을 하고 고치게 됩니다. 아마도 가족들과의 갈등의 대부분은 이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문제점에 대한 처방은 한 가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화를 하는 목적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조언을 구하는 대화에서는 월요편지식 대화가 적절하지만 그 이외의 대화에서는 월요편지식 대화를 지양하고 가슴으로 소통하여야 하겠습니다.

머리로 분석하기보다는 더 많이 가슴으로 느끼고 일방적으로 강의하기보다는 더 많이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제가 원하는 시간과 방식으로 이야기 나누기보다는 상대방이 시간과 방식을 정할 수 있게 한다면 제가 그들에게 화내는 일이 줄어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인지라 이렇게 분석하고 처방을 찾고도 또 어리석게 같은 잘못을 저지를 것입니다. 그러나 원인을 찾았으니 빨리 그 잘못을 바로잡아 나갈 것입니다. 이러다 보면 언젠가는 그 잘못된 버릇에서 벗어날 날이 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이런 잘못된 버릇을 가진 사람이 저뿐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7.9.18.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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