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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0번째 편지 - 발로 하는 독서

 

이미 말씀드린 대로 여름휴가로 10일간 핀란드와 스위스를 방문하였습니다. 여행은 언제나 무엇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오지 여행가 도용복은 여행을 일컬어 [발로 하는 독서]라고 했습니다. 저도 10일간 [발로 하는 독서]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 알지 못하던 많은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사실들을 여러분과 나누려 합니다.

첫째 "2017년 금년이 핀란드 독립 100주년"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핀란드 헬싱키를 방문하게 된 것은 순전히 비행깃값이 좀 싼 Finnair를 타게 된 것 때문이었습니다. Finnair는 헬싱키를 경유하게 되어 이번 기회에 헬싱키를 방문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박을 헬싱키에서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바람에 스위스 일정이 단축되어 다시 여행사에 이야기하여 헬싱키에서 숙박하지 않고 경유만 하는 것으로 변경해 달라고 하였으나 이미 비행기와 호텔이 예약되어 있어 취소하려면 상당한 출혈을 감수하여야 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리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헬싱키를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취소하려 하였던 데는 다른 사람이 작성한 헬싱키 여행기가 부정적으로 적힌 것도 한몫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 가족 네 사람은 핀란드와 헬싱키를 너무나도 사랑하게 되었고 꼭 다시 오자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핀란드(Finland)라는 국가명은 스웨덴어입니다. 핀란드어로 국가명은 수오미(Suomi)입니다. 마치 우리는 우리나라를 대한민국이라고 부르는데 비해 외국 사람들은 코리아(Korea)로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핀란드는 우리보다 더 가슴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핀족은 기원전 1세기 핀란드 남부에 정착하였는데 1397년 인접국인 스웨덴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무려 400년을 식민지로 살다가 1809년 이번에는 러시아가 점령하여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약 100년 넘게 러시아의 식민지로 살다가 1917년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2017년 금년이 독립 100주년입니다. 36년 일본 식민지로 산 우리와 비교하면 너무나도 긴 세월을 남의 지배를 받은 슬픈 역사를 가진 나라입니다.

둘째 "핀란드는 디자인에 미친 나라"입니다.

핀란드에 2박 3일 있으면서 우리 가족 네 사람이 공통적으로 깨달은 사실은 핀란드는 온 국민이 디자인에 미쳐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디를 가나 어느 것을 보거나 그곳에는 핀란드만의 독특한 디자인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물론 어느 나라나 건물을 예쁘고 멋있게 건축합니다. 실내 인테리어도 대단하지요. 그러나 핀란드는 무엇인가 달랐습니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함이 있었고 그것을 누구나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현대는 디자인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디자인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핀란드의 디자인은 우리에게 윽박 지르지 않습니다. 한켠에 비켜서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무엇인가 독특한 매력을 풍겨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그런 문화는 알바르 알토(Alvar Aalto) 등 뛰어난 디자이너들이 선도하였습니다. 때마침 Ateneum 국립 미술관에서 [ALVAR AALTO – ART AND THE MODERN FORM](2017.5.11~9.24)라는 제목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정말 횡재를 한 기분이었습니다. 헬싱키에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짐을 풀고 Ateneum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입니까? 8월 7일은 월요일이라 휴관이었습니다. 우리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원래 계획은 그 다음날 에스토니아의 옛 도시 탈린을 방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전시회는 구경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탈린을 포기하고 다음날 이 전시회를 구경하였습니다. 이 전시회를 꼭 보고 싶었던 것은 헬싱키 도시 전체에서 받은 디자인 충격이 너무 커 그 디자인 역사의 정점에 있는 알바 알토의 작품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스위스 열차는 너무나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그동안 대부분 해외여행을 패키지로 가거나 아니면 현지에서 차를 렌트하여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차를 타기로 하였습니다. 이번 여행지를 강력 추천한 친구가 스위스에서 꼭 기차 여행을 하라고 신신당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은근히 걱정이 생겼습니다. 기차 여행을 하려면 여러 번 기차를 갈아타야 할 텐데 그 많은 짐은 과연 어떻게 가지고 다녀야 할까? 짐을 짐칸에 넣고 객실에 앉으면 짐은 과연 누가 훔쳐 가지 않을까? 도시를 구경할 때는 짐은 어디에 두고 다녀야 하나? 등등의 많은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러나 일단 기차를 타보니 그 모든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우선 열차 시간은 시계처럼 정확하였고 실내는 무척 쾌적하였습니다. 사실 편안하게 여행하려고 1등석을 끊었지만 그것도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임을 곧 알게 되었습니다. 2등석도 쾌적하고 많이 비어 있어 전혀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밖의 풍경을 보라는 취지에서 창문을 크게 만들어 놓아 창밖을 바라보고 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였습니다. 짐은 기차역의 보관함에 맡기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산악열차, 케이블카, 곤돌라 등 갖가지 교통수단은 왜 스위스를 여행 강국으로 만들었는지 알게 해 주었습니다. 눈이 덮인 융프라우와 마터호른까지 손쉽게 데려다주었습니다. 군데군데 멋진 산책로를 만들어 놓아 초보자도 산등성이를 타고 빙하를 줄 곳 바라보며 꿈결같은 트레킹을 할 수 있었습니다.

넷째 "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살았던 도시 몽트뢰"를 아시나요.

융프라우산 기슭에 있는 아름다운 도시 그린델발트에서 3일을 지낸 우리 가족은 레만호 주변의 작은 도시 몽트뢰로 향했습니다. 몽트뢰는 그룹 퀸의 리디 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몽트뢰는 해마다 7월이면 재즈페스티벌이 열립니다. 1978년 그룹 퀸은 이 재즈페스티벌에 참가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마운틴 스튜디오에서 녹음 작업을 하였습니다. 몽트뢰와 그 스튜디오가 마음에 들었던 머큐리는 그 스튜디오를 매입하고 1991년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음악 작업을 하면서 거의 살다시피했습니다. 몽트뢰는 이런 머큐리를 기리기 위해 호수변에 머큐리 동상을 세웠습니다.

저희가 그 동상을 찾았을 때는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역시 재즈의 도시답게 그 동상 근처에 야외 음악공연장이 있었습니다. 그날도 무슨 공연이 있는지 어림잡아 500명 이상 되는 사람들이 모여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곳에는 음악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음악에 맞춰 신나게 흔들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그들 머리에는 모두 같은 종류의 헤드폰이 씌워져 있었습니다. 알아보니 신분증을 맡기면 헤드폰을 하나씩 빌려주는데 그 헤드폰은 블루투스로 주최 측이 제공하는 몇 개의 음악 채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춤을 추는 이들은 같은 음악 채널을 맞추어 놓고 같은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지역은 전혀 시끄럽지 않았습니다. 대단한 아이디어였습니다. 당장 한국에 도입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찰리 채플린이 마지막 여생을 보낸 브베"를 찾았습니다.

몽트뢰에서 기차로 한 5분, 한 정거장을 가면 브베라는 작고 예쁜 호반도시가 나옵니다. 이 도시는 [찰리 채플린]으로 유명합니다. 호수 주변에 그의 동상이 있습니다. 여행안내서를 보니 작년에 찰리 채플린 박물관이 개관을 하였는데 굉장히 잘해 놓았다고 하였습니다. 그 박물관 옆에는 찰리 채플린이 여생을 보낸 집도 구경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원래 구상한 일정에는 들어 있지 않았지만 언제 이곳을 다시 올 수 있을까요? 우리 가족은 우버를 이용하여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한마디로 굉장하였습니다. 찰리 채플린이 출연한 영화를 이용하여 거의 왁스 뮤지엄처럼 구성해 놓았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말년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찰리 채플린은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기계로 변해가는 노동자를 연기한 콧수염의 젊은 찰리 채플린입니다. 그러나 이 뮤지엄과 그의 저택에는 찰리 채플린의 전 인생이 들어 있었습니다. 동영상 속 늙은 찰리 채플린은 그저 할아버지였습니다. 손주들에게 장난을 치는 재미있는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우리는 역사의 인물을 너무 그의 전성시대로만 기억하고 있었구나 하는 반성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늙어 갔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죽었던 것입니다. 시간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지요.

저택 벽에 붙어 있는 글 귀 하나가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Time is the best author. It always writes the perfect ending(시간은 위대한 작가이다. 늘 항상 완벽한 결말을 쓴다)"

영화 [라임라이트]에서 찰리 채플린이 연기한 주인공 칼레로가 한 말입니다.

이번 스위스 여행이 10일 만에 끝났듯이 우리의 삶도 언젠가는 끝납니다. 그러나 늘 부족해서 불만스럽지요. 그러나 훗날 시간이 흐르면 우리도 모르게 그 여행이나 삶이 어떤 의미들로 꽉 채워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이번 여행에서 깨달았습니다.

시간이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7.8.28.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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