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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번째 편지 - '밀'과의 전쟁

 

지난 토요일 식사 모임 중에 잘 먹지 않는 저를 보고 참석자 한 분이 물었습니다. "다이어트를 왜 하시나요. 건강 때문인가요." 그동안 이 질문을 수없이 받아온 저로서는 준비된 답변이 있었습니다. "다이어트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은 결과일 뿐이지요. 저의 관심은 육체적인 힘입니다. 저는 평생 머리의 힘을 증진하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머리만 쓰고 살아온 것이지요. 아마 전 인류가 그런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 삶의 극한은 안타깝게도 스티븐 호킹 박사님 같은 모습일 것입니다. 저는 그런 모습으로 늙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육체적인 힘에 관심이 생겨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저의 궁극적인 목표는 제힘으로 턱걸이를 10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살도 빼고 근력도 키우고 있습니다." 다들 수긍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다른 답변이 생각났습니다. 스위스 여행 중에 읽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나오는 [밀의 관점에서 본 농업혁명]이라는 글에서 힌트를 얻은 것입니다.

"잠시 농업혁명을 밀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1만 년 전 밀은 수많은 잡초 중 하나일 뿐으로서 중동의 일부 지역에서만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불과 몇 천년이 지나지 않아 세계 모든 곳에서 자라게 되었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진화의 기본적 기준에 따르면 밀은 지구 역사상 가장 성공한 식물이 되었다. 어떻게 이 잡초는 그저 그런 식물에서 출발해 어디서나 자라는 존재가 되었을까?

밀은 호모 사피엔스(사람)를 자신의 이익에 맞게 조작함으로써 그렇게 해낼 수 있었다. 약 1만 년 전까지 이 유인원은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상당히 편안하게 살고 있었으나, 이후 밀을 재배하는 데 점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2천 년도 채 지나지 않은 전 세계 많은 지역의 인간은 동이 틀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밀을 돌보는 것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새로운 농업 노동은 너무나 많은 시간이 필요로 했다. 사람들은 밀밭 옆에 영원히 정착해야 했다. 이로써 이들의 삶은 영구히 바뀌었다. 우리가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

밀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무엇을 보상으로 제시했을까? 더 나은 식사를 제공한 것은 아니었다. 농업혁명 이전 식사에서 곡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적었다. 곡류를 중심으로 하는 식단은 미네랄과 비타민이 부족하고 소화하기 어렵다. 결국, 밀이 사람들 개개인에게 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 종에게는 무언가를 주었다. 밀 경작은 단위 토지당 식량 생산을 크게 늘렸고, 그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다."

놀라운 통찰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밀이 인류를 기근으로부터 구한 고마운 작물로만 생각하고 있던 기존의 시각을 확 바꾼 획기적인 글이었습니다. 저는 이 관점에 상상력을 더 보탰습니다.

"[밀 세계정부]가 있다면 [그 지도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1만 년을 지내왔을까요? 잡초에 불과한 자신들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식물로 바꾸는 전략을 수행하는데 인간이라는 종을 활용하였습니다. 첫 번째 전략은 인간이 밀을 주식으로 사용하도록 유혹한 것입니다. 은밀히 제빵과 제면 기술을 제공하여 인간이 빵과 국수를 주식으로 삼도록 유도하였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이 전략은 대성공을 이루었고 그 결과 인간은 한 끼의 60-70%를 밀가루를 중심으로 한 탄수화물로 채우기 시작하였습니다.

두 번째 전략은 인간 개체 수를 늘려 밀의 공급량을 증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밀이 재배되기 이전인 1만 년 전 전 세계 인구는 3백만 명 정도에 불과하였는데 밀의 영향으로 현재 75억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1만 년 만에 2,500배 증가한 것입니다. 같은 비율로 밀의 숫자도 증가하였을 테니 밀의 두 번째 전략은 대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밀 세계정부의 지도자들이 택한 세 번째 전략입니다. 그들은 밀을 주식으로 삼는 인간의 개체 수를 늘리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인간 단위 개체(한 사람 기준)의 밀 소비량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한 것입니다. 주식으로 빵이나 국수를 먹게 하는데 그친 것이 과자를 만들어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인간이 잠시도 과자에서 손을 떼지 못하도록 하는 세부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수많은 종류의 과자가 인간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그 결과 인간은 주식 이외에 간식이라는 형태의 식습관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밀 세계정부는 오래전 밀 소비량을 증가시킬 목적으로 간편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냈습니다. 샌드위치와 햄버거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획기적인 제품의 발명 이후 점심을 이것으로 대체하는 인간이 획기적으로 증가하였고 당연히 밀의 재배면적도 증가하였습니다.

또한, 밀 세계정부는 일본에서 인간이 라면이라는 획기적인 음식을 발명하도록 지원하였고 이 발명품은 이내 인접 국가인 한국에서 더 많이 유통되어 세계인의 간편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밀 정부는 인간 개체당 밀 소비량을 증진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개발되도록 지원하였고 그로 인한 인간의 폐해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밀이 경작되기 이전에 인간에게 비만이라는 개념은 흔한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수렵 채집인들은 필요한 양만큼 수렵하거나 채집하여 먹었고, 수렵과 채집을 위해 많은 지역을 돌아다녔기에 비만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비만이 문제가 된 것은 인간 개체당 밀 소비량이 극대화된 이후의 문제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소비량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밀 세계정부의 전략목표에 끝은 없는 듯합니다. 인간 개체 수를 증가시키고 인간 단위 개체당 밀 소비량을 증가시킬 수 있다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할 태세입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비만의 폐해 때문에 탄수화물 소비를 줄이자는 책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어 밀 세계정부로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비만은 개인의 잘못된 식습관의 결과가 아니라 밀 세계정부의 치밀한 밀 확산 전략의 결과입니다. 비만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지 좀 덜 먹겠다는 안일한 생각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밀과의 전쟁을 치르겠다는 단호한 각오가 필요합니다. 저는 지금 그런 각오에서 밀을 안 먹는 것입니다."

다이어트를 왜 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제가 상상한 것입니다. 물론 말도 되지 않는 억지 상상이지만 시사점은 있는 것 같습니다. 비만과의 싸움은 이처럼 쉽지 않습니다.

살을 빼는데도 몇 가지 차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초보적인 차원은 '체중을 줄이는 것'입니다. 매일 체중계에서 체중을 재고 자신을 몰아붙입니다. 몇 개월은 성공하지만 곧 무너지고 맙니다. 밀의 공격은 집요하니까요? 두 번째 차원은 '체지방률을 낮추는 것'입니다. 단순히 체중을 줄이는 것보다 훨씬 동기부여가 됩니다. 체지방률이 10% 이하로 줄면 식스팩도 보이니까요. 그러나 아직까지는 의지력에 의존하고 있어 그 의지력이 무너지면 요요현상이 옵니다. 밀은 이런 인간 개체도 수없이 많이 겪어보아 그를 무너뜨리는 전략 또한 수만 가지를 알고 있습니다.

다음 차원은 '힘을 기르기 위해 체중을 빼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토요일 답변한 차원입니다. 철학적이라 밀의 공격을 버틸 힘이 제법 있습니다. 그러나 이 차원도 밀의 실체를 제대로 인식한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 차원이 '밀과의 전쟁을 한다'는 것입니다. 비만의 원인을 인류 역사에서 찾고 비만이 단순히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밀과 인간의 전쟁이라는 차원까지 확대하여 인식하는 것입니다. 물론 상상의 차원이지만 성공 확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오늘도 이 전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7.8.21.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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