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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번째 편지-아버지 노릇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 노릇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 혹시 영국의 400미터 육상선수 데렉 레드몬드를 아시나요. 그는 1987년 44.5초의 기록으로 영국신기록을 세웠고 그 기록은 1992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1991년 세계선수권대회 1,600미터 계주에서 우승하였습니다. 당연히 그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400미터 영국 대표로 출전하였습니다. 그는 1차 라운드와 준준결승 라운드를 모두 1위로 통과하였습니다. 이윽고 준결승 라운드, 그의 통과를 의심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가슴번호 749번을 단 그는 5번 레인에서 잘 출발하였습니다. 그런데 결승점을 250미터 남겨둔 지점에서 갑자기 그의 허벅지 뒤쪽 근육이 파열되어 주저앉았습니다. 의료진은 포기를 권하였지만 그는 거절하고 일어나 깨금발로 뛰기 시작하였습니다. 1등은 무산되었지만 완주를 하기 위해 발을 질질 끌며 필사의 노력을 경주하였습니다. 이때 관중석에서 한 남자가 경기장으로 뛰어 들어 왔습니다. 진행요원이 저지하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데렉의 옆으로 가서 그를 부축하였습니다. “얘야, 힘들면 포기하여도 괜찮다.” 그는 데렉의 아버지 짐 레드몬드였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이 경주를 꼭 끝내고 싶습니다. 아버지!” “그래 나와 함께 이 경주를 끝내자꾸나.” 아버지는 아들의 허리를 팔로 감싸고, 아들은 팔로 아버지의 어깨에 의지한 채 천천히 트랙을 돌았습니다. 데렉은 4년 전 서울올림픽 당시 400미터 1차 라운드 90초 전 아킬레스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한 일이 떠올랐습니다. 왜 이런 중요한 경기에서만 부상이 도지는 것일까? 북받치는 울음을 참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는 흐느끼며 얼굴을 아버지의 가슴에 파묻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완주를 하였습니다. 65,000명의 관중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쳤습니다. 짧은 이 순간은 한편의 드라마였습니다.


  아버지는 이런 존재입니다. 자식이 힘들 때, 자식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그에게 어깨를 내어주고 그와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아니 그런 사람이어야 합니다.


  기독교 예화 중에 ‘모래위의 발자국’이라는 유명한 예화가 있습니다. 종교를 떠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예화라 소개합니다.


  어느 날 밤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해변을 걷고 있는 꿈이었습니다. 하늘 저편에 자신의 인생 장면들이 번쩍이며 비쳤습니다. 한 장면씩 지나갈 때마다 그는 모래위에 난 두 쌍의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그의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장면이 비쳤을 때 그는 모래위의 발자국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걸어온 발자국이 한 쌍밖에 없는 때가 많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때가 바로 그의 인생에서는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것이 마음에 걸려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나면 항상 저와 동행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제 삶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는 한 쌍의 발자국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가장 하나님을 필요했던 시기에 하나님께서 왜 저를 버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소중한 아들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버리지 않는단다. 네 시련과 고난의 시절에 한 쌍의 발자국만 보이는 것은 내가 너를 업고 갔기 때문이란다.”


  저도 제 아이들에게 이런 아버지일까요. 아마도 마음은 언제나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아이들과 마음의 갈등을 빚을 때가 더러 있습니다.


  얼마 전의 일입니다. 이미 훌쩍 커버린 딸아이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혼자의 힘으로 작년 말 대기업에 취직을 하였습니다. 우연히도 그 기업의 사장님이 저와 같이 일하는 변호사와 아주 가까운 분이라 한번 만나 딸아이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자랑도 할 겸 또 딸아이에게 도움도 될 것 같아서입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딸아이에게 이야기하였더니 펄쩍 뛰었습니다. 절대로 자기 사장님을 만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회사에서 특별대우를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뭐 제가 사장님을 한번 만난다고 딸아이가 특별 대접을 받겠습니까마는 검사를 아빠로 두고 평생을 살아온 딸아이는 무의식 속에 그런 부담이 있었는가봅니다.


  저는 그런 딸아이가 대견하기도 하였지만 솔직히 말하면 몹시 섭섭하였습니다. 아빠가 도움이 아니라 부담이 되어버리고 만 현실이 씁쓸하였습니다. 이미 다 커버려 더 이상 저의 도움이 필요 없어버린 자식에게서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저만의 집착일까요?


  저는 데렉 레드몬드의 일화와 모래위의 발자국 예화를 보면서 아버지가 자녀에게 어떠하여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아버지의 사랑은 아이들이 필요로 할 것이라고 제 스스로 짐작하여 먼저 주는 사랑이 아니라 한발 뒤에서 그들을 지켜보다가 그들이 정말 힘들어 할 때, 그들이 혼자 걷기 어려울 때 다가가 제 어깨를 내어주고 안아 주는 사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은 점점 커나갑니다. 부모에게서 자립할 만큼 자랍니다. 부모들은 그들이 독립심을 가지도록 가르칩니다. 그러나 제 속마음에는 여전히 그들이 어린아이로 저를 필요로 하였으면 하는 이중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딸아이가 첫 월급을 탔다며 제 내복을 사왔습니다. 내복이 고맙지만 저는 여전히 제가 딸아이에게 예쁜 옷을 사주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아직도 진정한 아버지가 무엇인지 더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2.2.6.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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