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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번째 편지 - 행복마루의 엘리베이터 앞 풍경

 

저희 사무실에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두 가지 풍경이 매일 반복됩니다.

첫 번째 풍경

손님이 오셨다가 갈 때면 예외 없이 그 손님과 회의를 하였던 직원들은 모두 엘리베이터까지 그 손님을 배웅합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인사도 나누지만 회의 때 다하지 못하였던 뒷마무리 이야기도 하지요. 그러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이 어색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앞에 작은 모니터를 걸어두고 그 모니터에 저희 회사 관련 영상을 띄워 놓고 있습니다. 화젯거리로 삼으라는 뜻이지요.

이 풍경은 제가 사무실을 처음 열었을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검찰청에 근무할 때는 손님이 왔다가 가실 때면 제 방 문 앞에서 배웅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회사 사무실 문을 나와 엘리베이터 앞에서 인사하는 것으로 바뀐 것입니다.

2011년 8월 사무실을 준비하고 있을 때 만난 어느 세무법인 대표님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저는 서초동의 수많은 변호사 사무실과 일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어떤 변호사가 성공하는지 알게 되더군요. 그분들이 어디에서 인사하는지를 보면 훗날 그분들이 성공할지 어떨지 대략은 가늠이 되더군요." 그 말에 흥미가 생겨 다음 말을 재촉하였습니다. "성공한 변호사와 그렇지 않은 변호사가 어떻게 다른가요?"

"예 그들의 차이는 어디에서 손님을 배웅하느냐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손님을 배웅할 때 자기 방문에서 배웅하는 사람, 법률사무소나 법무법인 사무실 문 앞에서 배웅하는 사람, 엘리베이터 앞에서 배웅하는 사람 등 세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와 배웅하는 변호사들은 대부분 성공하시더군요. 나머지 분들은 그렇지 못한데 말입니다."

이런 식의 분류법이 세상을 편하게 재단하기는 하지만 진실과 거리가 멀 때가 많지요. 특히 논리는 역의 관계가 잘 성립하지 않기도 하지요. [성공한 변호사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손님을 배웅한다]는 명제가 참이라고, [엘리베이터 앞까지 손님을 배웅하는 변호사는 성공한다]는 명제까지 참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밑져야 본전이고 좋은 일이니까 이것을 행복마루의 전통으로 삼자고 결심하고 전 직원에게 교육하였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제가 참석하지 않은 회의도 자연스럽게 직원들이 손님을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합니다. 손님들은 굳이 엘리베이터까지 배웅나올 필요 없다고 사양하고 직원들은 이것이 저희 관행이라고 우기는 아름다운 장면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됩니다.

문화는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화에 어떤 스토리텔링을 할 것인지도 우리들의 몫이지요.

두 번째 풍경

매일 아침 제가 출근할 때 12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김선정 과장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다가 환하게 웃습니다. 제 방까지 20여 미터를 같이 걸어가며 서로 아침 인사를 나눕니다. 이 모습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제 차를 운전해 주는 이창용 과장이 차가 사무실에 도착할 때쯤 김 과장에게 문자를 해주어야 합니다. 어떨 때는 문자를 미처 해주지 못해 아침 풍경이 무산되기도 하지요.

왜 이런 일을 6년째 하고 있을까요. 보기에 따라서는 매우 권위적인 이런 모습을 왜 저는 고집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무도 그 이유를 모릅니다. 제가 이야기 한 적이 없으니까요. 그저 제가 관행으로 정했으니까 한다는 정도일 것입니다. 그 이유를 물어본 직원도 없습니다. 며칠 전 이 과장이 이 아침 풍경과 관련한 애로사항을 이야기하였습니다. 혹시 자신이 깜박하여 김 과장에게 연락을 못 해주어 아침 풍경이 무산되면 책임소재 때문에 김 과장과 설왕설래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웃으며 왜 이 관행을 고집하는지 이 과장에게 설명하였습니다. 아마도 이 과장의 이야기가 없었으며 영원히 그 이유를 공개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스페인에 있을 때 만난 성공한 한국인 기업가가 있었어요. 그분은 자가용 비행기를 살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많이 번 분이었어요. 한국에도 호텔 등 여러 가지 사업체를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1993년 당시 그분의 자동차는 르노5이었어요. 우리로 하면 마티즈나 티코쯤 되려나. 부인의 차는 벤츠이고 아이들 차는 BMW였는데 그분은 매우 작은 차를 타고 다녔지요.

'왜 이렇게 작은 차를 타시나요.' '이 르노5는 제가 처음 스페인에 와서 샀던 차종입니다. 그때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집도 사무실도 가족들도 제 마음도. 제가 스페인에 원양어선 선장으로 와서 고생하던 그 시절을 기억시켜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처음 샀던 차와 같은 차종의 르노5를 탑니다. 아 차를 타면 그 옛날의 초심을 기억할 수 있으니까요.'

이 과장, 이 과장도 알다시피 나는 [정의]를 삶의 가치로 두고 살았던 사람이지. 그런데 사회에 나와 [돈]을 삶의 가치로 두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다 보니 때로는 비굴하게 때로는 야비하게 세상에 익숙해 지고 있지. 검사의 물을 뺀다는 이유로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스스로를 무너뜨려 왔지. 이 과장이 언젠가 '대표님 너무 저자세로 하지 마십시오.'라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충고했었지. 그러나 [돈]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작아지는 초라한 내 모습에 나도 놀라곤 하지. 내가 고검장이었음을 기억시켜 주는 물건이 우리 회사에 하나도 없지. 미래지향적이고 싶어 의도적으로 옛날 검사 시절 명패, 감사패 등을 하나도 두지 않은 까닭에 내가 검사를 하기 나 했었나 싶을 때가 있어.

그런 나에게 '당신 검사장을 한 사람이야. 정신 차려.'라고 일깨워 주는 장치가 아침마다 김 과장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인사해 주는 모습이야. 검사장, 고검장 시절 매일 그런 모습으로 하루가 시작되었지. 나는 그 시절을 의도적으로 기억하게 장치를 해 둔 것이지. 김 과장이 매일 아침 엘리베이터 앞에서 인사를 하는 것은 권위의 산물은 아니야. 나에게는 그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지. 내가 타락하거나 비굴해지는 것을 막아주는 감시자의 역할이지. 이제 이해가 되는가. 그러니 가끔 김 과장과의 미스커뮤니케이션으로 아침 풍경이 무산되어도 상관없다네."

그날 김 과장에게도 같은 취지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문화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알지 못하면 그저 보이는 모습만을 통해 그 뜻을 오해하기도 하지요.

여러분의 가정에, 회사에는 어떤 문화가 있으신가요. 우리가 문화를 만들지만 그 문화가 우리 가정과 회사를 성숙하게 할 것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7.7.24.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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