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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번째 편지 - 헛된 꿈을 좇은 5년 7월이 가르쳐 준 것

 

제가 경영하는 행복마루 컨설팅은 기업 내부의 부정∙비리를 전문적으로 조사하는 기업입니다. 회사의 구성은 과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와 비슷한 형태입니다. 검사, 수사관, 회계사, 디지털포렌식 전문가 등이 과거 중앙수사부의 인력 구성이었고 행복마루 컨설팅도 이와 유사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종류의 업무만을 하는 기업은 흔치 않습니다.

저는 회사를 설립한 2011년 10월부터 회사의 역량을 획기적으로 향상하기 위해 [부정∙비리 조사 업무]를 사람이 아닌 컴퓨터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기본 개념은 이렇습니다.

"회사 내에서 부정이나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일정한 행동 패턴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의 데이터를 잘 분석하여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 시나리오를 탑재한 소프트웨어에 조사 대상 회사의 데이터를 넣으면 누가 부정이나 비리를 저질렀는지 정확하게 사람까지는 아니라도 그런 위험이 높은 군의 사람을 지목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을 중심으로 조사를 하면 적발 확률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이 업무를 다루는 기업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런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전자를 뜻하는 electronic의 약어인 [e]자를 용어 앞에 붙이는 것이 유행이던 시절, 예를 들면 e-commerce(전자 상거래), e-ticket(전자 티켓) 등과 유사하게 [e-감사시스템]이라는 용어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꿈을 가지고 직원들에게 틈만 나면 [e-감사시스템]을 만들자고 주장하였고 그것을 위해 자료를 축적하자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업무는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업무에 오래도록 종사한 저희 회사 임원들은 [e-감사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여러 가지 각도에서 지적하였고 매우 어려운,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을 도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완곡하게 설명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의 의지는 더 불타 올랐습니다.

'쉽지 않으니 우리가 도전해 보자.'

제 상상 속의 [e-감사시스템]은 점점 정교해지고 있었고 몇 번 버전을 업그레이드하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로 회의가 열릴 때면 저는 논리 정연하게 이 문제를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기술적 한계도 알았지만 끊임없이 이를 해결해 줄 업체를 찾고 있었습니다. 임직원들은 저의 주장에 어쩔 수 없이 끌려 오고 있었습니다.

2016년 3월 9일 인공지능(AI)인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시합을 목격하고 저의 꿈인 [e-감사시스템]을 [AI 감사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했습니다. 저의 관심과 회사의 역량을 AI에 집중하였습니다.

제 스스로 AI와 딥러닝에 관한 책을 십여 권 읽고 유튜브에 나와 있는 강좌를 50여 편 청취하고 AI 전문가와 토론도 나누었습니다. 심지어는 AI 관련 대학원에 등록할까 하는 만용을 부리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나이에 제가 직접 무엇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단지 개념 정도 이해하면 족하다고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작년 6월에는 직원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리걸테크 컨퍼런스에 참여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리걸테크란 법률업무를 AI 등 테크놀로지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으로 개발하는 분야입니다. 공부를 할 수록 AI는 더 매력적이었고 금방이라도 무엇인가를 만들어 낼 것 같았습니다. 컴퓨터 사이언스 박사 코스를 수료한 로스쿨생 등을 동원하여 프로토타입 설계까지 하는 등 AI 감사시스템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주 목요일 AI 프로그램 설계 제작 업체와 비즈니스 미팅을 하였습니다. 해당 분야 전문가 여럿이 참석하였습니다. 저는 완벽한 형태는 아니더라도 시험판 프로그램을 만들 생각에 여러 가지 상의를 하였습니다. 세 시간에 걸친 미팅 끝에 저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AI 감사시스템을 향한 저의 꿈을 접기로 한 것입니다.

2011년 10월 회사를 설립하면서 꿈꾸어 왔던 [사람이 하는 부정∙비리 감사를 컴퓨터로 전환하겠다]는 꿈을 포기하기로 한 것입니다.

우리는 알파고를 경험하고 모든 일을 인공지능에 맡기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기본적으로 기계입니다. 그 기계에는 데이터를 넣어주어야 그 데이터를 다루어 우리가 원하는 결과치를 알려줍니다. 대 전제는 데이터입니다. 양질의 데이터가 많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이 학습을 시키던,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을 하던 결과를 내놓을 수 있습니다.

저는 5년 7개월간 데이터의 중요성을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데이터가 무엇인지조차 몰랐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데이터가 많은 분야가 있습니다. 금융, 유통 등은 데이터가 넘쳐 납니다. 그런 분야는 어떻게 의미 있는 양질의 데이터를 구성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그러나 제가 하는 일은 부정∙비리 조사업무입니다. 부정∙비리를 저지른 사람의 데이터가 얼마나 있을까요? 저의 회사가 지난 6년여 업무를 하면서 찾아낸 부정∙비리 직원은 불과 백여명 내외입니다. 그중 소위 형사책임을 물을 정도의 부정∙비리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 부정∙비리도 여러 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바꾸어 말하면 공금을 횡령하여 고발될 정도의 직원은 불과 수명 정도일 것입니다.

이날 회의에서 데이터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니 적어도 유의미한 결과치를 얻으려면 불량 직원 샘플 100명, 보통직원 샘플 100명, 우수직원 샘플 100명 등 300명 정도의 샘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분야의 데이터에 비하면 300개라는 숫자는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지만 최소한 이 정도라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회사에서 공금 횡령한 사람의 샘플을 100명 이상 모은다는 것은 수 년을 필요로 하는 일이고, 그렇게 모았다 하더라도 그 자료를 사용하여 AI가 만든 공금 횡령 혐의자 적발 프로그램이 업무에 사용할 정도로 정확도를 가지려면 몇 년이 더 필요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회사는 우수한 사람들의 집단입니다. 매년 이런저런 과정을 통해 불량 직원을 퇴출시킵니다. 그러니 불량 직원이 대량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집단입니다. 그런 집단을 대상으로 불량 직원 데이터를 통해 불량 직원 적발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한 것 자체가 헛된 꿈이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AI 감사시스템을 이야기할 때 어느 직원이 이런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런 시대가 오면 우리는 모두 필요 없게 되는 것 아닐까요." 제 판단으로는 상당 기간 그런 시대는 오지 않을 것 같고 그런 시대가 오더라도 최종적으로 부정∙비리 적발은 사람이 할 것 같습니다.

"대표님 그래도 우리 회사 업무 중 부분적으로 AI를 도입할 분야가 있는지는 계속 연구하겠습니다." 저의 아쉬움을 달래려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 업무 현실에서 AI의 필요성을 느껴서인지 박재현 부장이 자신의 각오를 피력하였습니다.

분야에 따라서는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AI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이 되는 [데이터]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헛된 꿈을 좇은 5년 7개월이 저에게 가르쳐 준 교훈이었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7.5.15.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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