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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번째 편지 - 운전석에서 내려서야 하는 이유

 

저희 회사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마루파티라는 것을 합니다. 전 직원이 모여 강의도 듣고 생일잔치도 하고 말 그대로 파티입니다. 지난 목요일 6월 마루파티가 열렸습니다. 마루파티는 미리 정해진 준비조가 파티 내용을 마음대로 정합니다. 지난 마루파티에는 젊은 두 직원의 업무 노하우를 공유하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먼저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인 공국주 전임연구원의 [프로파일링 노하우]에 대한 강의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프로파일링이란 '한 사람이 인터넷에 남긴 모든 흔적을 수집하여 분석하는 업무'를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업무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강의 내용을 듣고 보니 제가 상상하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저 상식 수준의 구글링이 아니라 상당히 복잡하고 정교하며 장시간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이 노하우는 공 전임이 업무를 하면서 개발한 것이었고 필요하면 다른 팀에서도 공 전임의 노하우에 의존한다고 했습니다.

강의 내내 탄성이 이어졌습니다. 누군가 '신상 털이의 달인'이라는 별칭을 붙여 주기도 하였습니다. 공 전임은 30대 초반의 젊은 직원입니다. 그런데 벌써 자신의 영역을 개척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노하우 전수를 할 수준에 이른 것입니다. 그저 이제 신입을 면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기업 감사실에 가서 강의를 해도 충분할 정도였습니다.

다음은 남재민 과장의 [마이크로 소프트 앱 실무 활용 팁]이라는 주제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행복마루가 일하는 방식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저희 회사는 팀 단위로 일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보통 4, 5명이 한 팀이 되어 특정 회사의 부정과 비리를 조사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니 팀원들 간의 협업이 매우 중요합니다.

각 팀마다 저마다의 협업 방식을 가지고 있는데 남 과장은 MS Teams와 MS OneNote를 접목한 협업 방식을 소개하였습니다. 이 역시 우리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구글 드라이브와 에버노트를 사용하는 저에게는 새로운 신세계였습니다. 물론 젊은 직원들은 상당수 일부 사용하고 있었지만 남 과장의 제안은 매력적이었습니다.

저는 강의가 끝나자마자 남 과장과 같이 일하였던 협업 멤버들에게 이 협업 방식에 대한 코멘트를 요청하였습니다. 다들 매우 유용하고 편리하였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저는 이용훈 전무에게 회사 전체가 이런 방식을 사용하면 어떻겠냐고 물었고, 몇 번 새로운 프로젝트에서 써보고 전사적으로 확대할 것인지 결정하겠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이 강의를 들으며 저의 젊은 날이 떠올랐습니다. 1989년 [아래아 한글]이 나오기 전에 [보석글]이라는 한글 워드프로세서가 있었습니다. 저는 법무부 최초로 [보석글]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상사들을 깜짝 놀랍게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타자를 치던 시절 오타가 나면 새로 쳐야 했는데 보고서를 컴퓨터로 작성하여 프린트한다는 것은 혁명이었습니다.

30대 초반의 저는 패기만만했고 신기술을 업무에 도입하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50대 중반의 법무부 장관께서 신기술에 신기해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 시대나 젊은 세대가 잘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IT 기술이 광범위하게 업무에 도입된 상황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그러나 회사를 경영하면서 저는 그 옛날의 기억을 까맣게 잊고 살아왔습니다. 행복마루에서는 제가 업무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고, 그래서 늘 제가 직원들에게 제 노하우를 전수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것이 제 의무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회사 초창기에는 한 프로젝트가 끝나고 직원들이 고객사에 제출할 보고서를 파워포인트로 작성해 오면 제가 수정해 주는 일을 도맡아 하곤 했습니다. 저로서는 보다 많은 직원에게 제 노하우를 빠른 시간에 전할 목적으로 약 10여 명의 직원을 퇴근 시간 후에 회의실에 모아 놓고 제가 직접 파워포인트를 수정하였습니다.

검찰에서 보고서를 제법 작성하였던 경력을 십분 발휘하여 보고서를 고객의 입맛에 딱 맞게 작성하였고 이를 지켜보던 직원들은 보고서 수정 작업이 끝나면 "역시 우리 대표님이 보고서는 최고이셔"하는 찬사를 늘어놓았고 저는 그 찬사에 취해 수년간을 그런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가 한두 번은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직원들의 역량은 늘어나기는커녕 저의 수정 작업만 기다린 채 멈춰서 버렸습니다. 저는 "회사의 역량이 설립자의 역량을 넘어서야 진정한 회사이다."라는 사실을 잊고 살았던 것입니다.

저는 행복마루 젊은 직원의 업무 노하우 강의를 들으며 행복마루가 조근호를 넘어서고 있음을 절감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직원들에게 더 가르칠 것이 없다는 점에서 씁쓸하기도 하였지만 직원들 스스로 성장해 가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 저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지난 토요일 친구 아들 결혼식 식사 자리에서 이런 주제로 이야기가 전개되었습니다. 국영기업체 고위 임원을 지낸 대학 동창이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나도 그런 고민을 한 때가 있었지.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더군. CEO가 되면 자신을 그 회사의 운전사라고 생각하게 되지.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판단하여 목적지까지 잘 운전하여야 하는 베스트 드라이버 말일세. 그런데 운전사는 운전하는 동안에는 자신의 차를 절대로 볼 수 없다네.

게다가 도로 전방만 주시할 뿐 차가 가고 있는 지역의 전체 모습을 알 도리가 없지. 또 다른 차는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역시 알 수 없지. CEO가 때로는 운전석에서 내려서서 자신의 자동차를 제3자 적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네. 사실 어떤 능력은 젊은 직원들이 더 우수하지."

그 말이 가슴에 확 와닿았습니다. 저는 검찰 30년 동안 한 번도 운전석 밖으로 나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운전을 잘할 것인지만 신경 썼지 제 차가 어떤 상태인지 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운전석을 때론, 아니 자주 위임하고 운전석 밖에서 차를 살피기도 하고 지역 전체를 조망하기도 합니다.

회사 경영만 이럴까요. 인생도 그럴 것입니다. 가끔 운전석에서 내려서서 인생이라는 자동차를 멀찌감치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제가 운전대를 잡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될 테니까요.

여러분은 운전석에서 내려설 때가 있으신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9.7.1.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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