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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번째 편지 - 죽음이 편안하게 느껴질 때

 

봄이 오는 길목에는 곳곳에 죽음의 사자들이 숨어 있나 봅니다. 요즘 들어 부쩍 친구 아버님, 어머님의 부고 소식을 많이 접합니다. 아마 예전에도 겨울이 지나갈 무렵이면 환절기를 이기지 못하고 노환으로 돌아가신 분들이 많았을 테지만 제가 나이를 먹다 보니 최근 들어 친구들 상가가 늘고 있는 것입니다.

제 기억에 죽음이라는 것을 맨 먼저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퀴리 부인 위인전 책에서 퀴리 부인이 죽는 장면을 읽다가 그만 어머니도 언젠가는 돌아가실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겁이 나 한참 동안 주무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본 때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죽음을 직접 경험한 것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였습니다. 남자는 검정 옷, 여자는 하얀 옷을 입고 펑펑 우는 모습에서 죽음은 슬픈 것이라기보다는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가급적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습니다.

죽음은 언제나 남의 일이었고 멀찌감치 도망치고 싶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죽음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공포스러웠고 더군다나 가족이 죽는다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었습니다.

다행이도 상당 기간 죽음은 저에게서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냥 그렇게만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인지라 저에게도 죽음이 제 일로 다가왔습니다. 검사가 된 1983년 9월 1일, 그날로부터 정확하게 20일 만에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는 장면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도 제 뇌리를 스친 것은 슬프다는 감정이 아니라 어떻게 장례식을 치를 것인가이었습니다. 과연 산소는 어디로 할 것인지, 조문객은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너무 조문객이 적으면 창피하지 않을까 등등이 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아마도 아버지의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그 알량한 체면의식을 앞장세운 것인지도 모르지요.

아버님의 죽음을 실감한 것은 아버님을 포천 그 어느 공원묘지에 쓸쓸히 남겨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의차 안에서 왈칵 가슴속 그 깊은 곳에서 슬픔과 외로움이 밀어닥쳐 울음을 주체하지 못한 그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죽음은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었습니다. 준비 없이 맞이한 아버님의 죽음, 저는 그 죽음에서 죽음에 대한 그 어느 진리도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십수 년간 죽음은 그저 남의 일이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장례식장에 갔지만 그것은 그저 사회생활의 일부일 뿐 그 수많은 조문을 통해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1998년 IMF 사태가 발생하고 한국 사회가 엄청난 소용돌이로 빨려들어 갈 때 저는 죽음을 정면에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매 주말 가족들과 같이 모여 지내던 한 친구가 자살을 한 것입니다. 투자하였던 주식계좌가 깡통이 되면서 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습니다. 서초동 대검청사에서 회의를 하다가 이 소식을 듣고 바로 근처에 있는 삼풍아파트에 도착하였을 때는 아직 앰블란스도 도착하기 전이었습니다. 제 손으로 친구의 시신을 수습하고 죽음을 온몸으로 맞이하였습니다.

그의 장례식을 치르며 저는 죽음을 온전히 경험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여전히 죽음은 어색한 그 무엇이었고 죽음이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마주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몇 년 후 장모님의 죽음을 임종하고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도 그 어색함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와 죽음은 늘 이런 관계였습니다. 죽음은 늘 제 곁을 맴돌고 저는 그 죽음을 외면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죽음을 만나게 된 것은 몽테뉴의 수상록에서였습니다. 몽테뉴는 자신의 수상록 맨 처음 주제를 죽음으로 삼았습니다. 죽음을 극복하여야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늘 죽음을 피하고 도망치고 외면하던 저의 사고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가 죽음에 대해 쓴 글의 소제목만 살펴보아도 그의 죽음에 대한 당당한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들어도 겁먹지 않는다. / 담담하고 평온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 / 모든 곳에서 죽음을 기꺼이 기다린다. / 삶을 사는 동시에 죽음을 산다. / 죽음이 갑자기 닥쳐도 전혀 놀랄 것이 없다. / 오래 살 건 잠시 살 건 죽음 앞에서는 매한가지다. / 자기의 시간을 다하지 않고 죽는 이는 없다. / 끊임없이 죽음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 죽음은 자연의 원칙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 늙어서 죽는 것은 드물고 이례적인 일이다. / 늙음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갈지는 알 수 없다. / 정신의 노화를 피할 수 있는 한 피한다. / 내 삶의 안락과 즐거움에 죽음이 자리 잡기를 / 빨리 늙기보다는 늙어 있는 시간을 최소화한다. / 죽음은 결론일지언정 삶의 목표는 아니다. / 침대보다는 말 위에서 죽고 싶다. / 내가 겪는 자연적 쇠퇴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2017년 3월의 관점에서 보아도 놀라운 통찰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몽테뉴가 이 글을 쓴 나이가 39세 때이었습니다. 자살한 친구의 시신을 끌어안고 오열하던 시절, 제 나이 40세를 넘었으나, 저는 그 끔찍한 경험을 하고도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할 자신이 없었는데 몽테뉴는 그 나이에 죽음을 응시하고 죽음을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두렵다면 도망갈 일이 아니라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 서서히 그 괴물 같던 것이 녹아내릴 것이다.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만큼 두려움을 극복하는 첩경은 없다.” 이런 진리의 말씀을 몰라서 죽음과 대면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대면할 용기가 없을 뿐입니다.

얼마 전 친한 친구가 부친상을 당했습니다. 너무 막역한 사이라 사흘을 문상하였습니다. 발인 날 아침 문상을 하고 양재동 추모공원까지 동행하였습니다. 그런데 문득 편안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 번도 저는 장례식장에서 [편안하다]는 느낌이 든 적이 없었습니다. [어색하다] [불편하다]가 제가 가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장례식장과 추모공원이 제집처럼 편안하였습니다. 늘 이곳에 있었던 것처럼 익숙하였고 더 머물고 싶고 다시 찾고 싶었습니다. 이런 저의 심리상태를 발견하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도 도망치던 죽음이 이렇게 편안하다니, 죽음과 친구가 되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날만의 감정일지도 모르지만 생전 처음 느낀 감정이었습니다.

차를 타고 추모공원을 빠져나올 때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진정 어른이 된다는 것은 죽음이 편안하게 느껴질 때이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7. 3. 7.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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