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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번째 편지 - 몸이 쓴 사표

 

저는 지난 4월 18일부터 두 달째 인슐린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저는 인슐린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주위에 당뇨병을 앓고 있는 분들이 있어 당뇨병은 인슐린이 잘 안 나와 생기는 병이라는 정도의 정말 무식한 상식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금년부터 가끔 점심을 먹고 1시간 후면 너무 졸려 업무를 볼 수 없는 일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흔히 잘 아는 식곤증이려니 했지만 그 졸림의 강도가 너무 강해 도저히 정신력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정도에 이르러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당부하검사라는 공복에 포도주스를 마시고 30분, 1시간, 2시간, 3시간 간격으로 혈당과 인슐린을 측정하는 검사를 하였습니다. 결과는 인슐린에 문제가 있음이 발견되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식후에 음식을 통해 혈관에 들어간 혈당을 적절히 세포 속에 넣어주어 혈관 속 혈당량을 적절히 유지시켜주는 기능을 하는 인슐린이 제때에 나와야 하는데 1시간 뒤늦게 나오는 데다가 혈당을 세포에 넣어주는 인슐린의 기능이 매우 저하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인슐린 저항증]이라는 의학 용어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의 기능이 떨어져 세포가 혈당을 효과적으로 연소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인슐린 저항증이 오래되면 당뇨병으로 진행하고 고혈압, 고지혈증은 물론 심장병까지 초래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병원도 몇 군데 다니고 의사선생님들과 상의하였지만 식이요법과 운동을 하라는 말 이외에 뚜렷한 치료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더 답답하였습니다. 약을 먹어 인슐린 저항증을 치료하는 방법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생활 습관을 바꾸라는 것이 유일한 치료법이었습니다.

사실 당뇨 전문의들은 제 증상에 대해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은 저의 상황을 지난 당뇨 환자를 치료하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당뇨 전단계에 있는 저에 대해서는 사실상 환자로 취급하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편함은 심각하였습니다.

이 상황에서 어느 젊은 의사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제 상황을 이해하고 치료해 주기 위해 여러 가지 외국자료도 검토하고 필요한 검사도 추천해 주었습니다. 감사하게 진료 시간도 충분히 할애해 주었습니다.

몇 번 만나 친하게 되자 이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조 변호사님 병이 왜 생길까요." 너무나도 근본적인 질문이라서 저는 순간 멈 짓 하다가 "몸이 신호를 보내는 것 아닐까요." 라고 답변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조 변호사님은 몸과 대화를 시작하셔야 합니다." 이것은 또 무슨 소리람. 대한민국 최고의 의과대학을 나온 내과 의사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닌 듯 느껴졌습니다. 한의학이나 대체의학을 연구하시는 분들 입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저는 동의할 수 없다는 눈으로 그 의사분을 쳐다보았습니다. 제가 만약 정신과 질환을 앓고 있다면 그분 말씀이 지당하겠지만 지금 분명한 원인과 결과가 있는 병을 앓고 있는데 선문답 같은 대화를 하는 것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분은 결론적으로 저에게 명상을 권하였습니다.

이것은 지난주 화요일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내내 그 젊은 의사분의 이야기를 곱씹어 보았습니다. "나의 몸과의 대화" 과연 제 몸은 저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요?

저는 그 답을 찾기 위해 다이어리를 펴들었습니다. 금년 1월 1일부터 6월 중순까지 과연 제가 휴식한 날은 얼마나 되는지 세어보기로 한 것입니다. 아무 일정 없이 지낸 날이 고작 6일이었습니다. 1월에 2일, 2월에 2일, 3월에 1일, 5월에 1일씩이었습니다.

주말에도 무엇인가 일정이 꽉 차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업무를 하지 않는 것은 모두 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업무 강도가 예전 검사 시절이나 변호사 초기 시절보다 세지 않은 요즘은 쉬는 날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일종의 죄책감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몸 입장에서는 일하는 것이나 노는 것이나 움직이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제가 직원을 아침 일찍 조찬부터 저녁 늦게 만찬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휴일은 6개월 동안 6일만 주었다면 그 직원은 벌써 사표를 썼을 것입니다.

저는 지난 6개월만 이렇게 산 것이 아니라 평생을 이렇게 살아오고 있습니다. 사람은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무엇인가를 하여야 한다는 강박적 성취 문화 속에서 오랜 세월 이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 몸은 저에게 사표를 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아우성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는 계속 못 살겠다 무엇인가 바꿔달라." 이것이 제 병의 본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해답을 찾기 위해 월요편지에서 휴식에 대해 썼던 글을 찾아보았습니다. 2012년 3월 19일 자 월요편지에서 [행복의 중심 휴식]이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이런 글을 썼었습니다.

"이 책은 휴식을 그저 게으름뱅이의 빈둥거림이 아니라 '자신과의 만남'이라고 규정합니다." 그 젊은 의사가 말한 "몸과의 대화"가 바로 "자신과의 만남"인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한데 저는 그 휴식을 죄악시하였던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휴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월요편지에도 썼지만 머리는 그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선배님, 몸이 이끄는 대로 머리가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선배님은 머리로 몸을 이겨내고 있으신 것입니다. 몸은 쉬고 싶다고 하는데 머리는 이를 애써 외면하고 욕심대로 이것저것 몸에 지시를 하니 몸이 버텨낼 수 있겠습니까? 선배님 하루에 몇 시간 주무시나요?"

"12시 반이나 1시에 잠자리에 들어 6시에 일어나니 한 5시간이나 5시간 반 정도 자려나." "선배님은 만성적 수면 부족 상태입니다. 우리는 짧은 수면시간을 성공의 척도로 재는 미국식 문화에 젖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화는 미국 사회에 성공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미국인을 모두 병들게 하였다고 '매슈 워커'는 진단하고 있습니다."

"교수인 저는 대학생 아들에게 한 번도 어떤 책을 읽으라고 권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매슈 워커'의 최신작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는 꼭 읽어 보라고 강력히 추천하였습니다. 선배님도 꼭 읽어보십시오. 수면에 대한 우리의 기존 통념을 모조리 뒤집어 놓을 것입니다."

어느 분이 추천하여 읽어 보려고 얼마 전 사놓은 그 책이 생각났습니다. "나도 그 책 읽어 보려고 샀어요." "최우선으로 읽어보십시오. 선배님, 인슐린 저항증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선배님은 몸이 휴식을 요구하는데 머리가 이를 외면한 상태입니다."

지난 주말을 제주도에서 같이 보낸 후배 김주환 교수가 저에게 해 준 말입니다. "몸과의 대화" "휴식" "잠" 모두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몸이 지시하는 대로 머리가 따를 것인지, 반대로 몸은 거부하여도 머리가 생각하는 대로 몸을 이끌고 갈 것인지의 갈림길에서 전자를 택하라고 강력히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알람부터 없애시고, 2시간만 더 잠을 주무십시오. 많은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김 교수는 어제저녁 저와 헤어지며 간곡하게 충고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몸과 머리 중 어느 것이 우선이신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9.6.17.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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