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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번째 편지 - 여러분은 어느 행성에서 오셨나요?

여러분은 어느 행성에서 오셨나요?

  제가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꾸미다 보니 아내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입니다. 한평생 공직자로 살았고 돈과는 거리 멀게 살다가 개업 변호사를 하게 되니 과연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이 되는지 이런 저런 조언을 해줍니다. 그런데 그 조언이 저에게는 귀찮은 잔소리로 들립니다. 아내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소리라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가슴은 자꾸 그 말을 밀어냅니다. 그저 나를 믿고 응원만 해주면 될 텐데 뭘 그리 훈수를 두려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에게 필요한 것은 충고가 아니라 격려입니다. 저에게 잘 하고 있다고 칭찬만 해주면 잘 할 것 같은데 아내의 생각은 다른 모양입니다. ‘듣기 싫은 소리라도 듣는 것이 필요해요.’라며 해설을 하면서 조언합니다. 부부간의 이런 시각 차이는 결국 말다툼으로 끝이 나지요.

  이렇게 엇박자가 나는 것을 보고 있던 딸이 저와 아내에게 설문을 주면서 한번 체크해 보라고 합니다. ‘5가지 사랑의 언어’의 저자 게리 채프먼이 만든 체크 리스트입니다. 게리 채프만 박사는 결혼생활과 인간관계에 관한 세계적인 전문가입니다. 게리 채프먼은 누구에게나 주된 사랑의 언어가 있다고 전제합니다. 그가 말하는 사랑의 언어는 1. 인정하는 말-상대에 대한 칭찬 격려, 2. 함께 하는 시간-진정한 대화 취미활동, 3. 선물-가장 배우기 쉬운 사랑의 언어, 4. 봉사-배우자가 원하는 것 해주기, 5. 육체적 접촉-스킨십을 통한 교감 증대 등입니다.

  그는 ‘나의 사랑은 이해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남편은 격려의 말을 듣기를 원한다. 아내는 말없이 맛있는 저녁식사를 준비함으로써 남편을 격려하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은 우울해 하고 아내는 영문을 모른다.’

  ‘아내는 아이들 없이 남편과 단둘이 호젓한 시간을 갖기 원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꽃다발을 줌으로써 사랑을 표현한다. 그래서 아내는 시큰둥하고 남편은 당황한다.’

  ‘남편은 남편의 방식으로 아내는 아내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한 동기를 가진 부부사이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가 사용하는 사랑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

  선한 동기를 가진 부부사이에도 문제가 생긴다는 구절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아내는 저를 위해 걱정을 하고 저도 아내가 그런 의도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도 서로 고마워하지 않고 삐거덕 댑니다. 서로 원하는 사랑의 언어를 모르고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아내와 제가 설문을 다 마치고 나서 비교해 보았습니다. 저는 사랑의 언어 중 ‘인정하는 말’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은 반면 아내는 ‘봉사’에 대한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즉, 저는 아내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기를 원하고 아내는 제가 무엇인가를 도와주기를 원하고 있는데 서로 잘 모르고 사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해줌으로써 그것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착각하고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때때로 아내에게 이런 불만을 털어 놓을 때가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존경하지 않는 것 같아.”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아내는 펄쩍 뜁니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존경하는데요. 밖엔 나가면 친구들에게 당신 이야기를 많이 해서 어떤 때는 민망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지금도 저는 아내가 저를 존경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제법 있습니다. 그 원인을 생각해보니 이렇습니다. 저는 제가 이야기 할 때 아내가 저만 바라보고 미소 지으며 마치 첫 데이트하는 연인들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주기를 바라지만 아내는 산만하지 그지없습니다. 이야기를 듣다가 전화가 오면 받기도 하고 문자도 하지요. 잠깐만 하고 부엌에 다녀오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잔소리도 합니다. 제 이야기를 듣는 중에 멀티태스킹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 말만 들어주는 모노태스킹을 원하는데 말입니다.

  반대로 아내의 저에 대한 평생 불만은 가사노동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늘 이렇게 이야기 하지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해달라는 것이 아니에요. 가끔 커피 한잔이라도 타주는 당신의 따뜻함을 보고 싶어요.”

  우리 부부는 이런 평행선으로 25년을 살아왔습니다.

  몇 달 전 설교시간에 김요셉 목사님으로부터 소개받은 ‘Love & Respect’라는 책의 내용이 생각납니다. 저자 Emerson Eggrichs는 남편은 사랑보다 존경을 아내는 존경보다 사랑을 원한다고 전제하면서 이 사실을 기억하면 부부생활이 더 활력 있게 유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알았던 것 같은 내용이지만 다시 곱씹어 보아도 여전히 진리입니다. 다만 우리가 실천하기 어려울 뿐이지요. 오죽하면 부부를 서로 다른 행성에서 왔다고 비유하기까지 하였을까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 제목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더 나아가 인간 모두가 각각 자기의 행성을 가지고 있고 각자의 언어를 가지고 있어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당신은 어느 행성에서 오셨나요. 그리고 어떤 말을 쓰시나요. 혹시 통역 없이도 배우자와 의사소통이 되시나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1.10.4.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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