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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번째 편지 - 여러분의 시간은 누구에게 바쳐져 있으신가요?

여러분의 시간은 누구에게 바쳐져 있으신가요?

  드디어 이번 주에 사무실이 꾸며집니다. 정식으로 여러분들에게 사무실을 보여드리는 것은 다음 주 목요일과 금요일인 10월 6일과 7일로 정하였지만 사무실 입주는 이번 주 화요일에 할 예정입니다. 지난 8월 2일 퇴직한 후 거의 두 달 만에 사무실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은 저와 같이 일하게 될 후배 변호사 사무실에서 임시로 기거 하였습니다.

  제가 차리는 법률사무소 행복마루에는 모두 4명의 변호사가 같이 일을 합니다. 저를 비롯하여 검사로 10여년을 일을 하다가 부부장검사를 마지막으로 퇴직한 후 9년간 변호사로 일해오신 사법연수원 19기(제가 13기이니 저보다 6년 후배입니다.) 최순용 변호사님, 우리나라 최대로펌에서 근무하시다가 저희 법률사무소에 합류하신 검사 출신의 사법연수원 24기 구태언 변호사님, 그리고 중견로펌에서 송무팀장으로 사실상 대부분의 민형사 소송을 주도하시던 변호사 10년 경력의 32기 오영주 변호사님 등이 그분들이십니다.

  사실 처음에는 이렇게 사무실을 크게 꾸릴 생각이 아니었는데 하다 보니 정말 뜻하지 않게 사무실이 커졌습니다. 직원들까지 하면 현재 12명이 됩니다. 한두 분을 더 뽑을 예정이니 정말 다 먹여 살릴 생각을 하면 답답해집니다. 그러나 모두 일당백인 분들이니 잘 되리라 믿고 출발합니다.

  그리고 사무실은 강남역 부근에 자리 잡았습니다. 대부분의 선후배 변호사님들이 자리 잡고 있는 서초동을 떠나 강남역으로 진출하는 모험을 감행하였습니다. 사무실 임대료와 관리비를 따지면 엇비슷하다는 점도 고려되었지만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다소 거리상으로 떨어져야 기존의 변호사 업무에 대해 거리를 두고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건방진 생각을 하여 강남역 부근에 자리 잡았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강남역 삼성사옥 건너편의 ‘부띠크 모나코’라는 오피스텔입니다. 여러분들께서 길 다니시다 보신 적도 있으실 벌집형태의 특이한 외관을 한 건물 22층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우면산이 보이는 탁트인 전망은 더 이상 좋을 수가 없고 노을이 질 때면 환상입니다. 시간 나실 때 놀러 오십시오.

  아직 사무실을 정식 오픈하지 않은 상태이지만 아시는 분들이 소개하여 몇몇 사건을 시작해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건을 하기 시작하자 제가 상상하였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로펌을 뿌리치고 제 사무실을 연 것은 시간을 좀 자유롭게 쓰려는 개인적인 욕심이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같이 일하는 최순용 변호사님이 자신은 개인변호사를 하는 9년간 휴가 한번 가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고검장님도 변호사 업무를 시작하시면 여유가 거의 없으실 겁니다.’라고 조언하였지만 저는 그럴 리가 하고 웃어 넘겼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2주전 토요일 저녁을 먹고 집에 가는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지금 시내에 있으면 급히 만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만난 분들과 사건 설명을 듣고 상의하느라 밤 2시까지 머물렀습니다. 처음 겪는 일이라 얼떨떨하였지만 갑이 아닌 을의 숙명 쯤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 상담은 그날로 끝나지 않고 그 다음날까지 필요로 하였습니다. 상황이 매우 긴박하여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구속여부가 관건인 사건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일요일 아침 골프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밤 2시니 불참 통보도 할 수 없고 하는 수 없이 일요일 8시 약속시간에 골프장에 골프채도 가지지 않은 채 나타났습니다. 그분들과 아침을 같이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정중히 사과 말씀을 드리고 그 분들이 첫 홀을 치고 필드를 걸어 나가는 모습을 부러운 마음으로 지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놈의 날씨는 왜 그리 좋은지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괜한 투정을 부렸습니다. 그 주말은 그렇게 날아갔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사실 지인들과 일본에 놀러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정식 개업을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노는 호사를 부리기로 오래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없이 취소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와 의뢰인들과 상의를 하며 일을 하였습니다.

  물론 배부른 투덜거림이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사건이 없으면 이런 일도 없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시간을 잘 관리할 것인지 고민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굵직한 시간들은 의뢰인 차지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이사이에 있는 작은 시간들은 여전히 제 것입니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잘 거머쥐는 것 지혜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독서 메모장을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어느 묵상집에서 옮겨 쓴 한 대목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생각하는 시간을 따로 떼어두십시오. 그것은 힘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글 읽는 시간을 따로 떼어두십시오. 그것은 지혜의 샘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시간을 따로 떼어두십시오. 그것은 신이 부여한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웃는 시간을 따로 떼어두십시오. 그것은 영혼의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나누어 주는 시간을 따로 떼어두십시오. 이기적 이기에는 우리의 하루가 너무 짧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을 따로 떼어 두십시오. 그것은 지상 최대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에게 꼭 필요한 말입니다. 변호사로 출발하는 이 순간 의뢰인에게 바쳐야 하는 대부분의 시간들 사이사이에 생각하고 글 읽고 사랑하고 웃고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많이 가지기를 갈망해 봅니다. 여러분은 시간을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바치고 사시나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1.9.26.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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