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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번째 편지 - 대한민국이 윤리경영을 시작합니다.

 

2010년 4월 당시 부산지검장이 연루된 소위 스폰서 검사 사건이라는 것이 터졌습니다. 한 건설업체 대표가 20년간 검사들의 스폰서를 해주었다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대검에서 특별조사단이 부산에 파견되어 감찰 및 수사를 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부산지검장과 여러 명의 검사들이 옷을 벗었습니다. 검찰로서는 참혹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시 저는 부산고검장이었습니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여야 할지 망연자실하였습니다. 식당 주인들이 조심스럽게 "고검장님은 명단에 안 들어 계시죠." 라는 질문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몇 달을 두문불출하면서 그 원인과 해법을 찾기에 골몰하였습니다.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지난 일이 머리를 스쳐갔습니다. 80년대 초반 초임 검사 시절 선배 변호사들이 간혹 식사나 술을 사 주었습니다. 그 당시는 검사와 변호사가 만나 식사하는 것이 자연스럽던 시절이었습니다. 일상의 접대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1999년 대전 법조비리사건이 터진 후였습니다.

여럿이 식사를 하면 누군가 식사 값을 내는 것이 한국적 정서였습니다. 아무도 더치페이를 하자는 말을 못했고 간혹 누군가 더치페이를 하자고 하면 '좀스런 놈'이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돈을 내는 '통 큰 식사 문화' 속에서 우리 모두는 성장하였습니다. 공직 사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공직을 떠나 민간 사회에 나와 보니 돈이 귀한 것을 알겠고 시간이 돈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과 돈을 들여 누군가를 만나는데 자신의 이익을 개입하지 않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2010년 4월 나름대로 스폰서 검사 사건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 해법을 찾기 위해 윤리경영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GE가 지분 43%를 투자하고 있던 현대카드의 정태영 사장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는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당시의 월요편지(2010년 5월 31일 자)에 그 내용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윤리경영은 GE 경영의 핵심요소입니다. 현대카드는 GE와 세 개의 가장 중요한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윤리경영위원회입니다. 회사 일로 늘 바쁜 임원들도 다른 회의에는 사정상 불참하기도 하지만 윤리경영위원회에는 반드시 참석합니다. 불참하였다가는 윤리에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주게 됩니다. GE 측은 현대카드 사장에게 1년에 4번 윤리를 강조하는 편지를 직원들에게 쓰라고 강요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윤리 규정은 개념적인 것부터 구체적인 것까지 상세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접대는 식사의 경우 1인당 얼마까지 할 수 있고 얼마까지 받을 수 있다는 식입니다. GE와 현대카드는 윤리규정집을 만드는 데 2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규정집을 핸드북으로 만들어 전 직원들에게 주었습니다.”

“GE는 윤리 문제에 대해 강박관념을 보이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윤리규정을 어긴 경우는 당연히 징계 되고 이를 알고 신고하지 않는 경우에도 함께 징계 됩니다. 임원 승진 후보가 되었을 때 인사팀이 그의 성장 과정, 취미생활, 인간관계 등을 360도 조사하여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탈락시킵니다. 재능이 있는 사람보다 옳은 사람을 선호하는 것입니다.”

이 편지를 받고 검찰이 살 유일한 길은 [진정으로 윤리경영을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회식, 선물, 골프] 소위 접대와 관련된 세 가지에 대한 문화를 고치기 위해 의견 수렴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저항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친형이 와서 회식 값을 내주는 것도 문제가 됩니까?' '굴비 같은 상하는 선물을 받았을 때는 어떻게 돌려줍니까?' '형이 가지고 있는 골프 회원권을 이용하여 부킹을 하는 것도 잘못입니까?' 등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들이댔습니다. 그저 자기가 먹은 것과 노는 것은 자기가 돈을 내고, 남에게서 얻어먹지도 선물 받지도 말자는 것인데 이것이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더치페이]입니다.

당시 검찰에는 윤리와 관련된 규정도 조직도 교육도 있었습니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윤리 규정을 강화하여 매우 세밀한 규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검찰 구성원이 그 내용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규정은 윤리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처리기준으로만 활용될 뿐 사전예방용으로는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런 것을 일컬어 Paper Compliance(종이 윤리경영)이라고 비웃습니다.

윤리경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규정이 명확하여야 하고 실천이 엄정하여야 합니다. 당시 그 벽을 넘지 못하였습니다. 부산고검장만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제 그 윤리경영을 대한민국 전체가 하려 합니다. 김영란법이 바로 그것입니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김영란법이 화제입니다. 그런데 그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 여부와 무관하게 모두 김영란법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공부를 많이 하였는지 변호사인 저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고 구체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례도 끊임없이 제시합니다. 김영란법 대상자 중 일부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이 법을 규탄합니다. 어느 누구 하나 이번에 이 법을 잘 시행하여 대한민국의 그릇된 접대 문화를 바꾸어 보자고 하는 분은 없습니다.

물론 이 법의 시행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계십니다. 제가 다니는 한정식 집은 문을 닫을 것인 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우리 사회의 식사문화를 더치페이 문화로 만들 것이냐는 문제입니다.

저는 2010년 스폰서 검사 사건 당시 검찰이 진심으로 윤리경영을 시작하였더라면 최근 문제되는 검찰 비리의 일부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로부터 6년이 지연되었습니다. 이번에 우리 접대문화를 바꿀 기회를 놓치면 언제 이런 기회가 다시 올지 모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제가 퍽 윤리적인 사람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저도 그 문화 속에서 살았고 그 문화의 특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 문화가 너무 편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식들에게는 이런 접대 문화 사회가 아닌 다른 사회를 물려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접대는 미풍양속이 아니라 그 속에 이권이라는 비수가 숨겨져 있었음을 이번 사건에서도 보고 있습니다. 김영란법은 결국 우리와 우리의 자식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6.9.26.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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