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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번째 편지 - 여러분은 착륙을 준비하시나요? 이륙을 꿈꾸시나요?

여러분은 착륙을 준비하시나요?  이륙을 꿈꾸시나요?

  저는 이제 검찰을 퇴직한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한 달을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공무원 사고를 민간인 사고로 바꾸고 적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였습니다. 저는 빨리 적응하여야 한다는 생각에 이 적응과정을 ‘압축적응’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되는 과정을 일컬어 ‘압축성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비슷하지요.

  저는 적응하는 한편 제 앞날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고민하였습니다. 보통 검찰 고위직으로 퇴직하면 두 가지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됩니다. 대형 로펌에 들어가거나 개인변호사 사무실을 내는 것이 그것입니다. 분에 넘치게 많은 로펌에서 저에게 관심을 가지고 같이 일할 것을 권해주셨습니다. 무척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홀로서기를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독립을 한 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무슨 거창한 계획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학을 졸업하고 검사가 된 이래 한번도 해보지 못한 ‘My own business''를 해 보고 싶어서입니다. 그러나 말이 쉬워 독립이지, 수많은 어려움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입니다. 실패할 가능성도 많이 있지요. 그래서 훗날 그냥 로펌에 들어 갈 걸 괜히 객기를 부렸구나 하는 후회를 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생을 주어진 길로만 달리는 것은 재미없을 수 있다는 엉뚱한 생각이 저를 홀로서기로 내 몰았습니다.

  홀로서기를 하려면 이제부터 조직이 해주던 모든 일을 제 스스로 해야 합니다. 오래 전 대검차장을 역임하고 퇴직하신 선배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퇴직하고 나니 전화를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조차 모르겠더라.’ 젊은 날 누구나가 잘하던 사소한 일조차 고위직이 되어 세월이 흐르고 보니 다 잊어버렸더란 말씀입니다.

  저는 홀로서기를 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일상을 제 스스로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먼저 주민센터를 방문하였습니다.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명칭은 동사무소였는데 명칭도 바뀌었고 주민등록등본과는 별도로 가족관계증명서라는 것이 생겨있었습니다. 사실 아무 것도 아닌 일이지만 처음 주민센터를 들어가 보니 모든 것이 낯설고 어리둥절하였습니다. 더욱 놀란 것은 증명서 발급 절차였습니다. 번호표를 빼어 들고 불과 2-3분을 기다리자 제 차례가 되었고 담당자에게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으러 왔다고 하자 바로 그 자리에서 프린트를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주민센터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을 몰랐습니다. 일을 다 마치고 나오려는데 그 직원이 하는 말이 ‘앞으로는 인터넷으로 발급받으시면 편합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공공기관의 서비스가 바뀌는 속도를 모르고 검찰의 기관장을 해 온 것을 생각하니 아찔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은행을 가보았습니다. 송금 때문에 갔는데 주민센터보다 더 쾌적하고 친절하였습니다. 그리고 절차도 매우 간단하고 쉬웠습니다. 저는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발전해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강의를 하러 갔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직원이 따라와 파워포인트도 켜주고 사전 준비를 해주었을텐데 이제는 모든 것을 제 스스로 해결하여야 하였습니다. 미리 집에서 연습을 하였습니다. 노트북을 모니터에 연결하고 어떻게 하여야 노트북 화면이 모니터에 나오는지 조작해보고 소리도 점검하였습니다. 저절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새로 배우는 심정으로 직접 하여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일들이 고도의 기술을 요하거나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의 평범한 일들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젊은 날에는 당연히 잘하던 것들을 세월이 흐르며 더 이상 할 필요성이 없어 잊어버리고 퇴화된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만 고쳐먹으면 별로 어렵지 않은 일들이었습니다. 압축적응을 해나가고 있는 셈입니다.

  문제는 이런 과정을 어떻게 겪느냐에 따라 민간인으로 빨리 적응할 수도 있고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잘 아는 전 조선일보 기자이었던 함영준씨는 이런 홀로서기 경험을 책으로 펴냈습니다. ‘마흔이 내게 준 선물’이라는 신간입니다. 40대에 잘 나가던 조선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홀로서기하는 2년간의 과정에서 느낀 것들을 칼럼 형식으로 쓴 책입니다.

  그는 ‘생각을 바꾸면 여기가 출발선이다.’라는 항목에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시작을 더디게 한다. 젊다면야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시작하면 되지만, 40대에 접어들었다면 실패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상황이 아니니 주저하는 일이 많아진다. 그러나 뒤돌아보고 망설여본들 벼랑 끝에 서 있는 것과 다름없으니 생각의 전환만이 살 길이다. ‘길이 너무 실없이 끝나버린다고 허탈해 할 필요는 없어. 방향만 바꾸면 여기가 또 출발이잖아.’ 영화가을로에 나온 대사처럼 막다른 곳이야말로 출발선이라고 마음의 방향을 바꾼다면 실패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는 이렇게 비수와 같은 말을 합니다. “나이 마흔은 더 이상 후퇴하는 시기가 아니다. 앞으로 남은 40년이라는 인생을 위해 전진해야 한다. 이 시기마저 놓쳐버리면 언제 또 변화를 꿈꿀 수 있겠는가.”라고 말입니다.

  그는 안전한 ''착륙''이 아닌 또 다른 ''이륙''을 준비하라고 조언 해줍니다. 저는 그 조언을 사십대가 아닌 오십대 초반에 실천하려 합니다. 그래서 그간 잊고 지내던 작은 일상의 할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다시 배워 나가렵니다.

  여러분은 착륙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아니면 또 다른 이륙을 꿈꾸고 계신가요. 홀로서기는 이륙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1.9.5.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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