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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번째 편지 - [學]하되 [習]하지 않는 인생

 

저는 요즘 골프에 푹 빠져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골프 생각을 합니다. 레슨도 받고 골프 유튜브도 열심히 보고 시간만 나면 골프존에 가서 혼자 연습을 합니다. 마치 금년에 골프에 입문한 사람처럼 머릿속이 온통 골프 생각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저는 1986년 속초지청에 근무할 때 골프에 입문하였습니다. 벌써 34년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수입니다. 몇 번 소위 싱글이라는 것도 해보았지만 제 나름대로의 스윙법이 몸에 배어있지 않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골프 치매'라고 일컫습니다. 전날 18홀 친 스윙 방법을 그 다음날 첫 홀에 서면 깡그리 잊어먹고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골프를 치다가 잘 안되면 이렇게 농담을 하곤 합니다. "내가 만약 34년을 떡을 썰었으면 한석봉의 어머님보다 더 떡을 잘 썰 거야." 조선 최고의 명필 한석봉의 어머니가 한석봉을 가르치기 위해 촛불을 끄고 떡을 가지런히 썰었다는 일화 기억나시죠. 34년은 녹녹지 않은 세월입니다.

저만 그럴까요. 사실 저와 같이 골프를 치는 분들은 비슷한 처지입니다. 그러니 세월이 흘러도 실력이 늘지 않고 줄어드니 타수와 무관한 "명랑 골프"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저도 그렇게 된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어떻게 내적 동기부여가 되어 열심히 하게 되었을까요? 모든 골퍼의 꿈은 싱글을 해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같이 골프를 한 분들과 식사를 하면서 정말 농담으로 "골프 클럽 챔피언에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라고 말하였더니 일제히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때 무슨 이유에서인지 불끈 오기가 생겼습니다.

오기가 내적 동기부여로 전환되었고 지금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잘 압니다. 클럽 챔피언은 언감생심이라는 것을. 그러나 이 도전의 과정을 거치면 제 골프가 한 걸음 더 나아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런 오기 덕분인지 금년 들어 두 번 싱글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다음에는 다시 헤매고 있습니다. 여전히 골프 치매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골프 레슨을 받고 골프 유튜브를 열심히 보아 '배우고', 혼자 열심히 '연습을 하면' 어느 순간 무엇인가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희열을 느낍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여보 스윙에서 무엇인가 깨달았어."라고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하면 아내는 "당신 평생 그런 소리 수백번은 더 했을 거에요." 하며 시큰둥합니다.

이 과정에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논어의 첫 문장입니다. "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면 不亦說乎(불역열호)아"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문장입니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힌다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해석도 너무 잘 압니다. 이 문장을 놓고 수많은 해석이 있어 왔습니다. 저는 그 해석을 논평할 지식은 없습니다.

그런데 문득 그 문장을 제 나름대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골프 하는 법을 배우고(學) 시간 날 때마다(時) 열심히 연습하면(習), 어느 순간 문득 깨달음이 있어 희열을 느낀다(悅)." 이렇게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학(學)과 습(習). 동양에는 이처럼 학과 습이 확실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학습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찾으니 'learn' 입니다. learn을 영영사전에 찾으니 'If you learn something, you obtain knowledge or a skill through studying or training.' 학과 습의 개념이 섞여 있습니다.

그동안 제 골프가 왜 요 모양 요 꼴이었을까요? 골프 방송도 보고 골프책도 읽고 남들이 비법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에도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학]입니다. 그런데 저는 [학]은 열심히 하면서 [습]은 귀찮아했습니다. 그래서 골프가 늘지 않은 것입니다. [학]과 [습]의 비중은 2대 8쯤 될 것입니다.

인생사가 대부분 이렇습니다. 공부를 잘한 사람이 사회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를 봅니다. 왜 그럴까요. [학]을 잘하는 사람이 [습]까지 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학]과 [습]은 능력이 다릅니다.

저는 인문학 공부를 바라볼 때 이런 생각을 합니다. "대부분 비슷비슷한 이야기인데 왜 이렇게 끝도 없이 공부하여야 할까?" 저는 인문학에서 [학]만 하고 [습]을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서양철학을 거슬러 올라가면 소크라테스를 만납니다. 저는 그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금과옥조로 새기고 매일매일 연습하고 있을까요?

기독교의 경우는 "첫째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라는 가르침이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매일 성경을 열심히 읽는 것보다 이 두 계명을 연습하고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몇 년 전 스타트업 기업 [그린램프라이브러리] 창업자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흐릿하지만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그들은 잠실에 있는 어느 학원 운영을 컨설팅하게 되었답니다. 인근 학원이 너무 많이 영업이 잘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공부를 근본에서 다시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공부는 학습이다. 학습은 학과 습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을 가르치는 학원은 넘쳐나는데 왜 학생들 성적은 오르지 않을까? 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습을 하는 공간인 독서실은 학원에 비해 너무 낙후되어 있다. 습의 공간을 리모델링하면 어떨까?" 그래서 탄생한 것이 그린램프라이브러리입니다.

공부를 [학]과 [습]으로 나눈 그들의 사고방식이 매우 참신하였습니다. 저는 골프 공부를 하면서 [학]과 [습]으로 나누어 [습]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그러나 [습]만해서는 배가 산으로 갑니다. [학]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네 인생살이에는 [학]도 없고 [습]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학]의 카테고리에 있는 독서를 하지만 인생살이가 그다지 나아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소통이 문제이고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겪고, 하는 일도 시원치 않고 건강도 점점 나빠집니다.

해답은 [습]에 있습니다. 수영하기 위해 수영에 관한 책을 수백권 보는 것보다 물에 빠지는 것이 중요함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 인생살이는 그렇게 하지 못하지요. 인류가 찾은 황금률 하나만 매일 연습하여도 인생이 바뀔 것입니다. 저도 오늘부터 다시 해보렵니다.

"자신이 원치 않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9.6.10.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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